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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빌레라>,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것은

한국콘텐츠진흥원  |  2020-01-06 16:51:46
 | 2020-01-06 16: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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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빌레라>,

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것은


글 뗏목지기(곽보매)



은퇴한 우편 공무원의 꿈을 향한 도전


“자네는 죽기 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주호민 작 <무한동력>의 잘 알려진 대사다. 이 말은 꿈을 향해나아가는 과정의 소중함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히 높은 확률로 실패가 뒤따르기도 하기에, 도전하는 것 자체를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밥을 먹어야 꿈도 꿀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이를 실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굳이 힘들게 노력해 꿈을 이루기보다는 적당히 안주하고 살아가는 것이 가성비 측면에서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꿈 자체가 아닌, 조금씩 성장하는 자기 자신을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빌레라>는 일흔이라는 나이에 오랜 꿈인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는 덕출과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노력하지 못하는 발레리노 채록의 이야기다. 일흔 노인 덕출은 꿈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나아간다. 그 속에서 덕출이 채록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은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가족’을 선택한다. 발레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가족과의 관계와 갈등과 해소를 보여준다. 사실 많은 사람이 가족을 사회를 이루는 기본적인 단위이자 소중하고 지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현대에 이르러 가족이 사는 곳과 일과 생활을 공유하는 것은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언젠가는 되돌아가야 할 편안한 안식처라는 이미지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밥상을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는 가족. 그렇게 흔히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빌레라> 1화에는 앞서 말한 이상적인 가족의 장면이 나온다. 아내가 병원에서 퇴원해 덕출의 집에 온 가족이 모이는 부분이다. 한 컷 안에 거실 탁자 주변으로 모든 가족을 배치하고, 원형으로 여러 대사를 담아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표현하니 여느 주말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정도다. 덕출은 은퇴한 우편 공무원으로 아내와 함께 산다. 아들딸, 손주들도 한 동네에서 왕래하며 지낸다. 큰아들은 대기업 부장인데 자녀들은 다 자랐다. 딸도 시집가서 자녀들이 있다. 막내아들도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방송국 PD로 번듯하게 지내고 있다. 말하자면 남부러울 것 없는 가족이다.


하지만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이 장면의 먼 위치에 앉아 있는 덕출의 표정은 어둡다. 친한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오래 묻어둔 꿈인 발레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곧 가족에게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덕출의 발레 선언은 가족의 반대에 부딪힌다. 발레라는 ‘민망한’ 운동을 왜 하려고 하느냐, 다칠 수도 있어 걱정이다, 운동이라면 등산 같은 걸 하면 되지 않느냐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보통은 젊은 세대가 부모의 생각과 다른 진로를 결정하면서 가족의 갈등이 일어난다. ‘철이 없다, 네가 세상을 모른다,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다’ 등이 반대 이유인데, 이 작품은 그 모습을 뒤집어 보여준다.


우여곡절 끝에 덕출은 가족이 반대하는데도 결국 문경국 발레단을 찾아가 발레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23세의 발레리노 채록을 만난다. 채록은 여러모로 덕출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발레리나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축구 등 여러 운동을 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버지와 떨어져 살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고, 발레에서는 어느 정도 재능을 인정받고 있지만, 스스로한테 자신감이 없다. 덕출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가족이 발레 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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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가족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듯 덕출과 채록은 전통적인 가족 관계 속에서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은 발레를 매개로 사제로서의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흥미로운 것은 덕출의 발레 선언에 나타난 가족의 반응처럼, 여기에서도 관계의 역전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어린 경험자가 나이든 초심자를 이끈다. 이렇듯 이야기는 역전된 사제 관계에서 시작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덕출의 모습은 채록한테도 서서히 재능을 뒷받침할 의지를 갖추게 한다.


둘의 공연 연습 장면을 지켜보던 러시아 발레리노 미하엘은 이렇게 말한다. “채록, 저 아이… 우리의 과거야. 덕출 저 어른…우리의 미래고. 과거와 미래가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이 대사는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 사제에서 시작해 같은 꿈으로 엮인 동료가 되었음을 상징한다. 이는 세대가 대립과 반목이 아닌, 서로 앞서 나가고 뒤따르며 이어지는 관계라는 걸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런 관계는 각각의 가족에도 영향을 끼친다. 덕출의 가족은 덕출이 발레 하는 것을 인정하고, 채록 또한 아버지한테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고 인정받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심하게 반대했던 덕출의 큰아들 성산이는 맏이로서,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자신의 삶과 덕출의 삶을 비춰보며 결국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 장면과 채록이 자신의 의지를 아버지에게 밝히고 담담하게 인정받는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무엇이 가족을 가족답게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점은 이 작품의 큰 성취 중 하나다.


사실 가족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대표적인 인간관계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 선택의 여지 없이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가 늙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생이다.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거저 따뜻하고 그냥 소중하게 될 수만은 없다. 즉, 혈연임에도 남보다 못한 지옥(<단지>)이 되거나, 부당하고 불편한 상황(<며느라기>)에 놓여, 대립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야후>)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가족을 가족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덕출한테 있다. 단지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나이와 권위가 아닌, 진심 어린 배려와 존중으로 사람을 대할 때 주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막내아들의 어린 시절, 덕출은 “넘어질 수 있어. 괜찮아. 아파서 잠깐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던 아버지였고, 발레리노 승아한테 실수를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며 “(너는) 매일매일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격려하는 사람이다. 덕출은 어른이어서가 아니 라 사람으로서 훌륭한 존재인 것이다. 이런 덕출의 모습은, <나빌레라>의 대표적인 악역이자 채록의 축구부 동료였던 성철이 다시 축구를 시작하는 후반부, 덕출이 이를 격려하는 에피소드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나빌레라>는 꿈을 이루어 나가는 것과 가족(전통적인 가족과 유사 가족을 포함한)의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임을 강조한다. 즉, 꼰대와 ‘개저씨’ 로 일컬어지는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어떻 게 나이 들 것인가?’라는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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