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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학원물 속 10대 묘사의 변천사가 말해주는 것들

한국콘텐츠진흥원  |  2020-01-08 10:38:59
 | 2020-01-08 10: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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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학원물 속 10대 묘사의 변천사가 말해주는 것들


아무리 도피적 오락이 재미있고 그만큼 늘 가장 큰 인기를 누린다고 해도, 

자신들이 살아가는 한심한 현실 자체를 제대로 후벼 파는 작품을 마다할 세대는 없다. 


글 김낙호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 그러니까 1990년대 말 한국에서는, 전사회적으로 퍼진 여론에서 무려 학교 폭력의 주범으로 만화가 꼽혔던 바 있었다. 굳이 여기에서 폭력 관계 발생의 구조적 원리 같은 거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풀거나, 편의적 희생양을 지정하고 도덕 놀음에 빠졌던 우매한 군중에 관해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만화라는 매체가 그만큼 10대 학생들한테 중요한 주류 문화라고 여겨졌던 것에 주목하고 싶다.


사실 10대가 주요 시장 층으로 주목받는 것이라면 대중음악이든 텔레비전 오락 방송이든 영화든 보편적인 현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학교라는 사회 공간과 그 안에서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10대를 보낸다는 조건에 천착하는 작품들이 지속적 인기를 끌며 아예 ‘학원물’이라는 느슨한 장르로 통용될 만큼, 만화 분야에는 10대에 대한 좀 더 특별한 친밀감이 엿보인다. 그 친밀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살피려면 역시 첫 단추는 바로 그 학원물 만화에 묘사된 10대의 모습이 변화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학원물, 10대의 태동

굳이 학원물의 원류를 찾아서 1950년대의 <얄개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내내 인기 장르로 자리매김했던 중고등학교 스포츠물의 경우도, 주인공들의 연령대를 공략 독자층에 맞추기 위해 학교 운동부를 배경으로 할 뿐이고 스포츠 드라마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니 대체로 제외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교사의 지도과정이 꽤 중추적 뼈대가 되는 1985년 작 <달려라 하니>만 하더라도, 그냥 코치와 선수의 이야기로 바꿔도 거의 바뀔 것이 없다.


학교를 매개로 하는 10대 생활이 핵심이 되는 작품이라면, 일정한 일상성이 필요하다. 당대 청소년들이 학생이라는 종족 분류 아래에서 향유하는 문화적 코드, 사회적 갈등, 향후에 대한 고민이 현실적 배경으로 깔려 있어야 하고, 그 위에 비로소 더 심도 있는 현실 성찰이든 일탈적 판타지의 쾌감이든 펼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원물 만화의 분기점으로 꼽을 만한 작품 중 하나는 김수정의 1981년 작 <오달자의 봄>이다. 연재 지면이었던 <월간 여고시대>의 독자층에 걸맞게, 일상적 학교생활을 유머러스한 일화로 풀어내며 그 안에서 특히 캐릭터들의 사춘기 감수성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당대의 일반적 명랑만화 장르 작품들과 달리 환상 모험 요소를 배제한, 현대적 시트콤에 가까운 접근이었다. 이런 문법은 이후에 주연 캐릭터들의 대중문화 향유 요소를 강화한 1988년 작 <열네 살 영심이>의 히트를 통해 더욱 널리 확대되었다. 다만 아직은 보편적 드라마의 한도 안에서 10대들의 생활을 묘사해내는, 좀 더 세밀한 관찰자의 위치에 머무를 뿐인 한계가 있었다.


10대들의 취향과 세계관이 아예 작품의 핵심으로 투영되는 학원물은 1990년대 초중반의 만화 잡지 붐 속에서 탄생했는데, 특히 아동용 만화와 성인만화의 경계 사이에서 재빠르게 거대한 영역을 일구어내던 소년만화 주간지들이 밀리언셀러를 배출하며 판을 키웠다. 1992년부터 연재된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이 당대 남자 청소년들에게 큰 화제를 모았던 것은, 적당히 착했던 기존 학원물과 다른 과격한 트렌디함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인물들은 다소 정신 나가게 호쾌하고, 그림은 삐죽거리고, 메탈 음악과 게임에 대한 애정이 넘치며, 의성어와 의태어마저 바른 말 고운 말과 거리가 멀었다. 불량아 고등학교에서 최고의 싸움꾼이었다는 주인공의 사연은 더는 반성과 훈계의 대상이 아니라 숨겨진 강함의 코드였다.

같은 시기에 경쟁 잡지에서 나온 <진짜 사나이> 또한 다른 방향에서 트렌디함을 선보였는데, 싸움 실력 강한 전학생이 다른 학원 폭력배들을 물리치는 전개 속에서, 기성 사회 질서에 대한 비판을 읊어 나갔다.



학교, 폭력의 조직

폭력을 조직화하여 승리하는 이야기의 재미는, <삼국지>에서 조폭 만화까지 꽤 보편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여기에 10대 특유의 정서로 기성 질서를 돌파하는 것에 대한 동경을 더하고자 할 때, 학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출발점이다. 학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계급 서열, 교사라는 지배층, 같은 학년 안에서도 무력으로 갈라지는 차별 같은 학교 내적인 측면부터, 각 학교가 하나의 영토가 되어 정복 전쟁을 벌이는 외적인 측면까지 말이다. 어차피 질서는 썩었고 무력이 현실적 진리 같아 보인다면, 악하지 않은 주인공 팀의 무력이 득세하는 쪽이 좋다.


이런 코드를 정확하게 충족하며 장기 히트에 성공한 대표작으로, 1996년부터 2014년까지 연재한 <짱>을 손쉽게 꼽을 수 있다. 인천연합 같은 명칭에서부터 이미 영역 다툼이란 소재가 드러나지만, 주인공은 명성이 쌓일 뿐 딱히 권력으로 무언가를 누리진 않는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히트작 <니나 잘해> 역시, 좀 더 본격적 조폭 코드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진영의 권력 놀음은 대체로 자신들의 폭력 서클 내부로만 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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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폭력의 호쾌함이 탁월해질수록, 학원물로서의 현실감은 잠식된다. 게다가 실제 세계의 학교 폭력 또한 점점 악랄해져서, 일부의 주먹질 영역 다툼이 아니라 학교 사회 전반이 엮이는 권력 행사와 따돌림의 공간이 되어갔다. 학생들의 폭력 대결을 그리는 만화 부류가 학원물의 일상성보다는 <갓 오브 하이스쿨> 같이 그냥 판타지 격투에 가까워지던 흐름 속에서, 훤히 드러나는 현실이 되어버린 학교 폭력을 학원물에서 어떻게 수용해야 10대들의 욕망을 제대로 반영하고 호응을 얻을 것인가.


한 가지 방식은 더욱 세련된 학원 폭력물이다. 2013년에 등장한 <독고>는 현실감 있는 스릴러의 문법을 접목했다. 학교를 관료제에 가까운 권력 구조로 장악한 학생은 체계적으로 수익을 뽑아낸다. 그 악덕 구조를 깨려는 고발자가 폭력으로 살해당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그저 주먹질만이 아니라, 체계적 수사까지 해야 한다. 혹은 그런 학원 폭력을 정면에서 비판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진의 크기>는 큰 체구로 학교 폭력 권력 구조에서 상위에 있던 주인공이 병으로 체구가 작아지자 위치가 바뀌면서, 문제를 직시하게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 해결 과정 역시 거의 폭력을 통해 이뤄진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학교 폭력으로 권력 행사를 하는 이들이 그냥 평범한 일상의 일부 또는 아예 주인공인 만화로 가는 것이다. 정의의 주먹패 주인공이 권력을 타파하는 낭만적 상상이 더 이상 먹히기 어려운 세상이기에, ‘좀 놀 줄 아는’ 10대 캐릭터의 현실감을 그냥 그가 지닌 권력을 좀 누려가며 재밌게 사는 것에서 찾게 되는 셈이다. 흔히 일진 미화 비판을 받는 인기작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만화가 지망생 시트콤을 표방하며 2013년에 연재를 시작한 <프리드로우>, 나름대로 연애 로맨스여야 했을 <연놈> 등이 대표적 인기작이다.



성장드라마는 성장한다

남성 학원물이 호쾌한 폭력의 정의감에 열광할 무렵, 여성 만화는 사상적 고민을 강화하고 있었다. 1990년대의 순정만화는 장대한 스케일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서사극이 유난히 돋보였지만, 학원물 분야 역시 혁신을 이루고 있었다. 당대의 히트작이었던 1991년 작 에서 잘 드러나듯, 대단히 자주 등장하는 독백을 통해서 문학적 허세와 강력한 자의식으로 자기 주변 세상에 대한 통찰을 던지는 것이 하나의 관행처럼 굳었다. 삶의 의미든, 자신과 타인의 경계든, 불합리한 관계 맺음에 대한 비판이든 말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학원물은 아닐 수 있지만, 1996년 작 <언플러그드 보이>도 발달하는 사상적 고민의 좋은 예다. 온갖 틀 안에서 살아가는 학생 주인공이, 사회의 아무 틀에도 얽매이지 않은 소년과 교류하며 보통

근대적 개인주의라고 할 만한 사고에 눈을 떠가는 것이다.


물론 소년만화라고 해서 모두 폭력에만 열광한 것은 아니기에, 주인공이 담임선생님을 짝사랑하고 진로 고민을 하는 1995년 작 <굿모닝! 티처>처럼 일상성 강한 작품도 있었다. 다만 성장드라마의 문법을 아무래도 순정만화가 더 뚜렷하게 계승했기에, 학교생활 디테일이 강한 권교정의 2001년 작 <어색해도 괜찮아>나 독설 개그와 독특하게 꼬인 인간관계를 학교 공간에서 풀어내는 <그들도 사랑을 한다> 등의 작품이 이어졌다.


웹툰이 만화의 주류 공간으로 자리 잡은 후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학교를 현실적 고민과 명랑함이 일상적으로 교차했다. 학생 캐릭터들을 성장시키는 공간과 시기로 그려내며 인기를 끌었다. 개성 강한 이들의 군상극인 <연민의 굴레>, 청춘 스포츠 로맨스에 가까운 <두근두근두근거려>, 그리고 현실감 넘치게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청소년 말투를 적극 채용한 일종의 로맨스물 <연애혁명> 등이 대표적이다.



현실 같은 풍자, 풍자 같은 현실
200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며 만화의 주류적 경로는 종이 잡지가 아닌 웹툰으로 넘어갔고, 반대급부로 출판계에서는 작가주의적인 접근의 단행본이 작지만 뚜렷한 영역을 지켰다. 산업적 이해로 인하여 기존 인기 장르의 틀을 엄격하게만 적용했던 종이 잡지의 상황에서 벗어나자 학원물에서 꽃을 피운 것은, 바로 한층 직접적이고 날카로운 현실 반영이었다. 아무리 도피적 오락이 재미있고 그만큼 늘 가장 큰 인기를 누린다고 해도, 자신들이 살아가는 한심한 현실 자체를 제대로 후벼 파는 작품을 마다할 세대는 없다. 특히 젊은 세대의 온라인 하위문화의 중요한 요소인 노골적 방식의 유머와 합쳐지면 더욱 더 그렇다. 그렇게 해서 교육기관의 도덕적 체면을 완전히 집어던지고 노골적인 수탈과 경쟁만 있는 학교 지옥도를 유머로 풀어낸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가 2006년부터 연재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풍자라고 해서 반드시 해학으로 펼쳐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서, <방과 후 전쟁활동> 같이 학교생활과 병영 생활을 아예 같이하는 기발한 은유도 등장했다.

하지만 풍자가 그 자체의 재미에 빠져서 정작 현실 진단의 칼날이 무디어지면, 오히려 문제적 현상을 반쯤 찬양하게 되는 기묘한 모습이 될 수도 있다. 2011년 작 <패션왕>은 10대들의 꾸밈과 인정 갈구의 문화를 적나라하게 바라보며 풍자적 과장을 섞어서 크게 히트를 쳤다. 하지만 연재가 진행되며 멋의 과장 자체에만 몰두하며 무슨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게 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외모지상주의>는 못생긴 고등학생 남자가 갑자기 일시적으로 잘생겨지는 방법이 생기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외모가 재산인 세태를 꼬집는 듯 시작했다가 조금 지나니 외모 만능주의를 그냥 당연시하다시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극적 학교 폭력의 전시장이 되었다.

한편, 풍자로 에두르지 않고 현실적 묘사를 그대로 집요하게 밀어붙여서 10대에게도 부여된 삶의 무게와 사회적 고난을 섬세하게 전달하는 학원물도 주목받았다. 2015년 작 <여중생A>는 게임에 심취한 여중생의 생활 속 단면을 조금씩 던지면서 집단 괴롭힘 문제, 사회적 현실과 연결된 가정환경 문제 등을 그려나갔다. 앙꼬의 <나쁜 친구>는 크게 불량할 것도 없었던 비행 청소년 여고생들의 우정을 묘사했다. <엑스>는 일본 록그룹 엑스재팬을 대상으로 한, 주인공들의 팬덤을 그려내며 그런 숭배를 통해서 풀고 싶었던 당대 10대들의 고민과 현실을 반추한다.

간략하게 살펴보았듯, 학원물에서 10대는 처음에는 애정 어린 관찰의 대상이었다가 점차 실제 10대들이 바라는 욕망과 동경하는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1990년대를 열었다. 그렇게 한쪽으로는 호쾌한 정의 구현 판타지로, 다른 쪽으로는 성장드라마의 틀을 10대의 복잡한 고민 방식을 보다 더 정교하게 수용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학교와 또래 권력의 점차 폭력적인 양상은, 다양한 방향성의 작품에서 그런 폭력을 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일상 요소로 정착시키기도 했다. 한편 일군의 작품들은 풍자와 리얼리즘으로 10대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던져내는 쪽으로 발달했다. 이토록 다양한 방향을 동시에 거치며, 이렇게 학원물은 10대의 모습을, 욕망을, 목소리를 담아내는 무언가가 되었다.

김낙호 | 만화연구가. 만화를 계속 읽다가 어쩌다 보니, 제법 여러 가지를 진지하게 논 했다. 
별별 다양한 만화들이 지속되고, 다들 잘 골라 읽는 환경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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