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원작자 뱅자맹 르그랑, 장마르크 로셰트 인터뷰 : 더럽혀진, 노아의 방주
by 관리자   ( 2018-01-23 14:04:34 )
2018-01-23 14: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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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0일 게재된 인터뷰입니다.




*Bicof 2013에 초청된 <설국열차>의 두 작가, 뱅자맹 르그랑과 장마르크 로셰트를 에이코믹스가 단독 인터뷰했다.

 

의 두 원작자. 왼쪽부터 그림작가인 장마르크 로셰트, 스토리작가인 뱅자맹 르그랑.

<설국열차>의 두 원작자. 왼쪽부터 그림작가인 장마르크 로셰트, 스토리작가인 뱅자맹 르그랑

 

 

뱅자맹 르그랑(글)

1950년 생. 소설가, 번역가, 방송작가, 영화 시나리오작가 및 만화 스토리작가로서 활약하고 있다. SF소설 <달의 잃어버린 면>을 썼으며, 여러 편의 범죄소설을 썼다. 만화 작품은 자크 타르디와 <바퀴벌레 죽이는 사람>을, 장마르크 로셰트와 <백색 진혼곡> <트리뷴> <설국열차: 선발대> <설국열차: 횡단>을 작업했다.

 

장마르크 로셰트(그림)

1956년 생. 회화, 조각, 만화, 그림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 자크 로브와 함께 <설국열차: 탈주자>를, <백색 진혼곡>을 협업했던 뱅자맹 르그랑과 1999년 <설국열차: 선발대>, 2000년 <설국열차: 횡단>을 작업했다. 오랫동안 회화작업에 몰두하다 코믹만화 <나폴레옹과 보나파르트>로 만화계에 복귀한 이후 더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8년 서울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 초청된 이후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역시 <설국열차> 때문이다. 출간된 지 10년도 넘게 지난 작품인데 또다시 <설국열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웃음)

괜찮다.(웃음) 2008년 방한 당시에는 영화가 나오지도 않은 기획단계에서 컨퍼런스를 진행했는데 그때도 꽤 뜨거웠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은 <설국열차>에 대한 관심이 그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최고로 뜨거운 것 같다.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1부가 출간된 게 1984년, 2부는 그로부터 15년 후인 1999년에 출간됐다. 오랜 공백 이후 2부와 3부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장마르크 로셰트(이하 로셰트) | 83년도에 스토리작가 자크 로브가 공동 작업한 <설국열차>는 당시 프랑스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작품으로 85년도 앙굴렘국제만화제에서 수상했으며(Prix témoignage chrétien[Christian Testimony Award] 수상), 86년도에 자크 로브가 앙굴렘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후에는 다시 한 번 주목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점점 잊히기 시작했다. 99년까지 완전히 묻힌 채로 지내다가 이렇게 잊히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주제라는 생각에 다시 꺼내들기로 마음먹었다. 같이 작업했던 자크 로브는 이미 1990년에 세상을 떠났고 새로운 시나리오 작가를 찾던 중 뱅자맹 르그랑과 의기투합했다. 전에 같이 작업한 적도 있었고 SF나 누아르, 범죄물을 많이 한 작가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리라 봤다. 결국 1부만이 아니라 2부와 3부까지 완성했기에 오늘날 이렇게 큰 현상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스토리작가가 바뀐 2부와 3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로셰트 | 2부, 3부에서도 여전히 두 번째, 세 번째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1부에 등장하는 주인공 프롤로프를 2부에 다시금 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어느 정도 1부와 2부의 가교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다른 작가에게 스토리가 승계되긴 했지만 1부에 등장하는 캐릭터 아델린의 귀고리가 2부에서 발견되는 등 무엇보다 연결고리만은 가져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스토리작가인 뱅자맹 르그랑이 요리했다. 어떤 것을 추가하고, 무엇을 조합할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바람대로 1부에서 비롯된 리듬감과 밸런스를 유지하며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뱅자맹 르그랑(이하 르그랑) | 2부와 3부에서 부각시키고 싶었던 점은 거짓말을 통한 협박, 두려움이었다. 1부에서 세계관이 성립됐다면, 2부는 그걸 바탕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압박하는지, 열차 안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새롭게 출간된 표지.

새롭게 출간된 <설국열차>표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봤나?

아직 못 봤다.(인터뷰 일시는 8월 14일로 영화 상영회와 봉준호 감독과의 대담이 있기 전) 하지만 시나리오는 봤다.

 

사실 영화 <설국열차>는 원작만화의 극히 일부의 설정과 1부의 골자 약간을 가져왔을 뿐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영화가 체제 전복에 힘을 주고 있다면 만화는 오히려 그 반대인 ‘체제 유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로셰트 | 영화에는 1부와 2부, 3부 이야기가 다 담겨 있는데, 봉준호 감독이 영향 받은 건 아무래도 1부인 것 같고 2부와 3부에서는 시스템의 유지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므로 이미 궤를 달리한다. 만화의 1부와 영화를 비교한다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주인공이 현존하는 시스템을 바꾸고자 하는 데서 시작한다. 반대로 만화의 주인공은 시스템을 바꾼다기보다는 그저 왜 이렇게 된 건지 알고 싶어 하는 데서 출발한다. 애초에 목적이 다르다. 영화는 시스템을 없애버리려는 것이고, 만화는 시스템의 근원과 이유를 알려는 것이니 철학적으로도 완전히 반대다. 처음 시나리오를 썼던 자크 로브는 프롤로프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주인공이 이 일을 하긴 하는데 왜 하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계속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줬으면 한다고. 왜 그런지는 알고 싶으나 어떤 게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지점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작품의 선전 문구나 수식어로 흔히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노아의 방주와는 전혀 다르다. 직접적으로 노아의 방주를 의도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보면 보다 확실해지는데, 사실 만화는 처음부터 오히려 노아의 방주라는 의미를 전복한 데서 시작한 것 같다.

방주에는 인간 외에 동물들도 함께 타고 있고 그 덕분에 여기엔 어떤 ‘조화’라고 부를만한 것이 분명히 담겨 있다. 이 점이 완전히 다르다. 열차 밖은 이미 모든 게 다 얼어붙은 지옥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옥을 피해서 또 다른 지옥을 만들고 있다. 시스템이 온전했을 때 저질렀던 오류를 기차 안에서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다. 계급을 나누고, ‘조화’와는 무관한 상황을 반복한다. 그 부분에서 많이 다르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물론 현대판 노아의 방주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악화되고 더 더럽혀진 것이어야 했다.

 

만일 그렇다면 작가 입장에서 이 작품을 가리켜 ‘노아의 방주’라고 하는 건 썩 좋은 비유로만 들리진 않을 것 같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는 표현에 어느 정도 수긍은 간다. 그 말이 맞는 말이긴 하다. 다만 그것만이라고 말하긴 좀 어렵다. 중요한 건 여기에 추가된 다른 요소들이다. 여기에 더해진 다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표현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봉준호 감독의 . 원작의 재해석으로 결이 다른 영화를 만들어 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원작의 재해석으로 결이 다른 영화를 만들어 냈다.

 

출간된 해를 보면 1부는 1984년, 즉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시키는 해이고, 2부는 세기말인 1999년이다. 2부와 3부 출간 시에는 명백히 종말이나 세기말을 염두에 두던 당시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는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부천국제만화축제에도 방문한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아시아담당 디렉터인 니콜라 피네(Nicolas Finet)가 <설국열차>에 관해 쓴 <설국열차의 역사(Histoires du transperceneige)>라는 책이 있다. 책의 서두에는 그때 당시의 세기말적인 현상, 즉 지구 종말이라든가 멸망 이후의 세계에 대해 다룬 책이나 영화, 만화 목록과 함께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분명 어느 정도는 영향권 내에 있었을 것이다.

 

열차라는 측면 때문에 TV애니메이션 시리즈로도 만들어졌던 마츠모토 레이지의 만화 <은하철도 999>(1977~81)와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1984)이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설국열차> 1부가 등장했던 80년대 작품이다. 또한 작품의 종착지도 비슷하다. <은하철도 999>에서 주인공 데쓰로는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도착한 기계행성에서 행성의 부품이 되는 위기를 맞고,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의 결말 역시 새로운 후계자를 마련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혹시 아는 작품인가?

둘 다 모르는 작품인 것 같다. (작품 내용설명을 들은 후)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한데 젊은 친구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엔 관심이 없고, 더더군다나 일본 작품이라면 더 모른다. 봤으면 참 좋았을 텐데. 문화권이 달라 공유했던 작품이 다른 것 같다. <설국열차>를 작업할 때는 물론 지금도 전혀 알지 못하는 작품들이다.

 

디스토피아 작품에서는 과거의 문명이 남긴 예술작품, 즉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실존 작품들이 으레 긍정적인 상징으로 사용된다. 이에 반해 <설국열차>에서는 기존에 있던 예술작품들이 부정적인 의미를 띈다. 미술품 같은 경우는 딕슨 신부의 개인 소장품으로 등장해 개인의 쓸데없는 이기심을 채우는 도구로 나타난다. 열차로 하여금 바다를 횡단하도록 종용한 노래 역시 결국 열차를 절망으로 안내했다.

로셰트 | 한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경우 현대미술은 특권층만을 위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비싼 값을 매기면 그만한 가치를 갖는다. 만약 (앞에 있는 선풍기를 가리키며) 이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이유로 돈 많은 사람한테 팔리기 시작하면 그 즉시 엄청난 값어치를 갖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술은 1퍼센트를 위한 예술이다. 그 1퍼센트를 위한 예술에 99퍼센트의 사람들에게 의미 있을 돈이 쓰인다. 그런 부정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르그랑 | 예를 들어, 미디어를 언제나 옳게만 바라볼 순 없다. 미디어에는 누군가의 해석이 들어간다.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때문에 미디어가 특권층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을 조종하거나 그릇된 세계관을 심는 데 아주 유용한 장치가 된다.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좋은 역할을 수행하지만 폐쇄적인 사회 안에서도 올곧게만 사용될까? 그래서 나는 반대로 그런 악용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싶었다. 그런 의미로 그림을 넣었다.

 

현대미술은 1퍼센트를 위한 예술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3부에 등장하는 대중음악에도 현대미술과 같은 의미를 부여한 것은 왜인가? 이를 미디어처럼 어느 분야에나 내재된 ‘악용 가능성’이라는 기준으로 보기엔 어려울 것 같은데.

르그랑 | 조금 다르지만 비슷하다. 3부에서 열차는 그 음악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그곳이 구원의 장소인양 여기고 찾아간다. 하지만 그 음악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과 같은 음악일까? 같은 의미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로셰트 | 부연하자면, 그런 경우의 음악은 살아있는 음악이 아니라 죽어있는 음악, 즉 세뇌를 위한 음악에 가깝다. 음악이라기보다는 ‘녹음된 소리’에 불과하다. 우리가 듣고 있는 살아있는 음악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스토리작가 뱅자맹 르그랑.

스토리작가 뱅자맹 르그랑

 

시간차 때문인지, 2부에서는 그림도 변했다. 펜선이 돋보이는 그림이 아니라 수채화를 의도한 듯한 느낌이다.

로셰트 | 1부를 처음 그렸을 때가 25살이었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그만큼 긴 호흡을 가지고 만화를 작업해본 적이 없었다. 연습을 많이 해야 했다. 펜터치는 물론이고 컴퓨터도 없을 때라 일일이 스크린톤 붙이는 것도 연습했던 시기다. 2부를 작업했을 때는 그로부터 무려 15년 가까이 지났을 때다. 그동안 많은 일을 했다. 그림책과 만화도 작업했고, 신문, 잡지 등에 연재도 했다. 물론 모든 과정은 어떻게 하면 만화가 잘 읽힐까 하는 ‘호흡’에 대한 고민과 맞닿는다. 덕분에 나는 15년 사이 너무 다른 사람이 됐다. 이후 <설국열차>를 재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예전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25살의 내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아예 다르게 가기로 결정했다. 작품의 시점 역시 이미 몇 년이나 흐른 후로 설정됐기 때문에 다른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충분히 적용될 수 있었다.

 

영화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기록화를 직접 그렸다. 그 그림이 만화 <설국열차>의 2부와 3부의 느낌과 가장 흡사한 것 같다.

로셰트 | 동의한다. 영화에 나왔던 두 아이의 초상화가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그 그림은 목적이 없는 그림이다. 갤러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 그린 그림도 아니고, 미술관에 들어갈 것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것도 아니다. 에디터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리지도 않았다. 그냥 그렸다. 영화에서처럼 기차 안에서 필요에 의해 마음이 동해 그린 그림. 학창 시절 선생님 몰래 책상 밑에 종이를 놓고 그림을 그리다 들키면 얼른 꾸겨 버리던 그런 모양새에 가깝다. 기차 안의 화가도 아마 나와 비슷한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았을까.

 

화구는 어떤 걸 사용했나?

로셰트 |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의 초상화 두 편 모두 물이 들어갔다. 흑인아이를 그릴 땐 잉크를 사용했고 물로 농담을 조절했다. 그림이 사용된 과정이 재미있다. 호텔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중 깨끗한 종이도 아니고 주변에 돌아다니는 종이를 주워 그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그림을 봉준호 감독에게 보여줬는데 그걸 영화에 사용하는데 동의하더라. 하지만 내 생각에 영화에 등장하기엔 덜 더러워보였다. 그래서 일부러 꾸기고 지저분한 걸 묻혔는데, 봉 감독이 이제 됐다고 충분하다고 만류하며 가져갔다.(웃음) 백인아이의 초상화는 집에서 작업했다. 역시 수채화인데 세피아톤으로 작업했다.

 

만화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작업하나?

로셰트 | 동일한 테크닉이다. 물로 농담을 조절하는 방식.

 

<설국열차>의 작화나 디자인에 특별한 콘셉트가 있었다면? SF 장르인데 그다지 미래적인 디자인은 아니다.

로셰트 | 원래 모형 만드는 작업을 한다. <설국열차>를 위해 기차 모형은 직접 만들었다. 그걸 어떤 앵글로 보여야 할지, 어떤 디자인을 갖고 와야 할지를 고민하기 위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현대적이기보다는 구시대적인 느낌이 묻어나오도록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스타일이나 디자인 역시 동굴벽화나 오래된 그림, 구시대 유물 같은 느낌을 자아내려 했다. <설국열차>에서 디자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차와 사람들의 의상인데 둘 다 미래적인 디자인이라기보다는 모두 옛날 것에서 따오고 싶었다.

 

3부가 갑작스럽게 끝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3부 이후의 계획은 없나?

르그랑 | 원래 3부로 끝날 이야기는 아니었다. 뒤에 더 하고픈 이야기가 많았다. 사람들은 완전히 미쳐가고 반면 세상은 정화되는 이중적인 모습을 담고 싶었다. 사람들이 미쳐가면서 세대가 교체되는 느낌을 보여주고 싶어서 4부, 5부의 이야기를 구상했는데, 안타깝게도 실현되진 못했다. 그래서 프랑스판 같은 경우 3부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를 굉장히 크게 넣었다. 다 읽은 독자에게 마치 그 이미지 안으로 빨려 들어가 그 안의 이야기와 동화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한국판은 그림이 작게 들어가서 좀 아쉽다. 프랑스판이나 독일판 같은 경우는 3부 마지막 장면이 크게 나와서 갑작스럽게 끝난다는 느낌과는 다를 것이다.

 

2부와 3부에 이르며 열차가 생존을 위해 달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절망을 향해 박차를 가한 것에 비하면 예상 외로 희망적이다.(웃음)

하하하. 그래서 더 얘기하고 싶었던 게 많았다. 신나게 갈등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는 좀 멈춰줘야 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엉망이 된 사회가 어떻게 안정과 조화를 찾아가는가도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에 대한 구상도 많았고. 너무 아쉽다. 실제로 4부와 5부에서는 더 이상 중요인물들이 죽지 않는다는 설정으로 구상했다.

 

그림작가 장마르크 로셰트.

그림작가 장마르크 로셰트

 

 

프랑스 만화계 환경은 대략 어떤가? 가령 한국은 웹 중심으로 완전히 자리를 옮겼다. 웹툰은 어느 정도 대중화됐지만, 여전히 영화 같은 장르에 비하면 만화는 특정한 사람들만 향유하는 비주류 문화다.

그 주제에 관해서 아침부터 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말한 대로 한국만화는 웹툰으로 가고 있고, 밖에는 보다시피 서점이 없고, 한국에선 대부분 스크롤을 내리며 만화를 ‘소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들었다. 프랑스는 한국보다는 발걸음이 느리다. 아직도 종이책 만화가 우세하다. 만화는 읽어야 하는 하나의 살아있는 물건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라는 느낌은 덜하다. 만약 한국에서 만화가 그렇게 어렵다면 만화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책으로 만화를 즐기는 독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려면 만화의 가치를 좀 더 올리는 수밖에 없다. 그림을 더 멋있게 그리는 등 작품을 정말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하나의 걸작처럼 만들어야 그걸 구매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돌리려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처음엔 물론 힘들겠지만 너무 한 길로 가는 것 역시 우려스럽다.

 

프랑스 만화독자들의 소비 패턴은 어떤가? 한국에서 만화가 크게 주목받는 경우는 영화 같은 다른 문화산업에 의할 때가 많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설국열차>일 것이다. 한국에서 프랑스 만화가 이렇게 많이 팔린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인데, 이렇듯 한국의 만화 소비는 다분히 편향적이다.

한국에 비해 프랑스 출판업계가 좀 나을지는 몰라도 그 역시 불황이다. 안 팔리는 걸 어떻게 팔리게 만들까 하는 게 출판업의 현실이다. 정말 훌륭한 만화들도 대부분 묻혀 있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작품들은 몇 없다. 어린이용 만화나 유명한 시리즈물, 아니면 뻔한 장르물들이 독자들의 눈길을 받고 어느 정도의 판매고를 올리는 실정이다. 그밖에는 운 좋은 작품 몇 개가 튀어나오는 정도다.

 

그 운 좋은 작품들은 보통 어떻게 튀어나오나?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같은 큰 행사에서 상을 받든가, 아니면 그 작가와 공동 작업한 작가가 유명한 작가라든가. 또 TV에 방영됐다든가. 아마 한국과 비슷할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만화라도 그것보다 중요한 건, 좋든 나쁘든 수면 위로 끌어내는 또 다른 원동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이슈가 되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어쨌든 팔릴 수 있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작가 혹은 작품이 있다면?

로셰트 | 블러치(Blutch). 크리스토프 블랭(Christophe Blain) 등.

르그랑 | 자크 타르디 (Jacques Tardi), 엔키 빌랄(Enki Bilal). 아마 세대와 연관될 것 같다. 좀 더 젊은 평론가라면 우리가 모르는 신인작가 얘기를 하겠지만, 우리는 잘 모른다. 세대가 바뀌면서 좋아하는 작가나 눈 여겨 보는 작가들이 변하는 것 같다. 언급한 작가들은 전부 중견 작가들이다. 최전선에서는 한 걸음 물러난 사람들. 그러나 역시 중요한 작가들이다.

 

두 작가가 주목하는 프랑스의 만화가들. 왼쪽부터 블러치(Blutch), 크리스토프 블랭(Christophe Blain), 자크 타르디 (Jacques Tardi), 엔키 빌랄(Enki Bilal)의 작품들.

두 작가가 주목하는 프랑스의 만화가들.
왼쪽부터 블러치(Blutch), 크리스토프 블랭(Christophe Blain), 자크 타르디 (Jacques Tardi), 엔키 빌랄(Enki Bilal)의 작품들

 

앞으로 둘이 함께 하고자 예정된 작품이 있나?

<설국열차> 전에는 세 작품을 같이 작업했다. <백색 진혼곡>과 <트리뷴>을 함께 했고 세 번째 작품이 <트리뷴>의 속편이었는데 이 작품은 출판이 안 됐다. 당시 출판사가 어려웠고 그냥 묻어버리기엔 아까워서 자가 출판 형식으로 출간했다. 지금 둘이 함께 진행하는 작품은 없다. 하지만 사람일이란 건 모르는 거니까.

 

스토리작가로서 만화 분야에서도 다른 작화가와 여러 번 작업했다. 장마르크 로셰트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르그랑 | 이런 질문은 아직까지 받아본 적이 없는데.(웃음) 어떤 점이 있을까……. 음, 로셰트의 그림엔 다듬어지지 않은 맛이 있다. 가공되지 않은, 결코 인공적이지 않은 매력이 있다. 이를 늘 충분히 느끼고 있다. 다른 그림작가에게선 찾을 수 없는 매력이다.

 

마찬가지로, 뱅자맹 르그랑과 다른 스토리작가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말해 달라.

로셰트 | 뱅자맹 르그랑은 콘티도 스스로 짜는데, 덕분에 어떤 경우에 보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도록 재촉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글로는 굉장히 좋더라도 이게 영화나 만화로 만들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는 그것을 가능하도록 종용하는 데 능숙하다. 서로 안지는 오래 됐지만 그래서 여전히 특별하게 다가온다.

 

둘 다 만화 외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만화 장르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로셰트 | 화가로서 그림을 대하는 느낌은 절대적인 미의 추구에 가깝다. 그래서 그림을 벗어나 만화로 들어오면 한없이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자유로운 표현, 정치적인 자유로움이 모두 허락되는.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자유로워지기를 염원하고 그러한 메시지를 주려고 전달했던 게 만화가로서의 기저가 아니었나 싶다.

르그랑 | 비슷하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장 쉽게 얘기할 수 있어서다. 우리 세계에는 안 좋은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알리고 고발한다. 속박하고 있는 많은 것들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기반이 된다. 말하자면, 소설을 쓰거나 방송작가로 활동하거나 영화 시나리오도 썼지만 언제나 좋은 결과만 나왔던 건 아니다. 또 제작 요청 때문에 했던 것이지 정말 우러나서 진실한 메시지를 담았던 건 아니었다. 만화의 강점은 이런 메시지를 온전히 담을 수 있었던 데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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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소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신문방송학과 졸업. DVD2.0, FILM2.0, iMBC, BRUT 등의 매체에서 줄곧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며 먹고 살았다. 『위대한 망가』를 썼고, 『매거진 컬처』『젊은 목수들』을 공저했으며,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을 번역했고, 『좀비사전』『탐정사전』을 기획, 편집했다. 현재는 프리랜스 라이터 겸 프리랜스 편집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출처 : 에이코믹스 주소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1805
윤태호 작가님 감사합니다.
관리자
웹툰가이드 툰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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