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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리뷰] 비행접시 - 남자여, 비겁해지지 말자

경리단  |  2015-08-26 20:17:45
 | 2015-08-26 20: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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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구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이론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는 건 지루할뿐더러 글이 길어질 테니, 편의상 간략하게 적자면, 역시 가장 앞서는 것은 생존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인간 또한 사회적 존재, 만물의 영장, 도구를 쓰는 종족, 뭐 이런 다양한 수사 이전에 일단 생명이니 당연하다.

 

사랑은 어떨까. 물론 사랑은 몇 개의 층위로 구성된 복잡한 감정이자, 욕구이다. 부모, 자식, 형제 같은 혈육에 대한 사랑과는 다른, 그것과는 독립적인 감정의 교류와 성욕(性慾)을 동반하는 사랑 말이다.(굳이 성별을 가리진 않겠다) 이성 혹은 동성 간의 사랑은 상당히 고차원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욕구는 아닐 수 있다.

 

시대의 변화다. 감정적 교류도, 동물로서의 번식 본능도 모두 아쉬울지언정 필수적이진 않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외계에서 날아온 거대한 비행접시가 욕구의 단계를 뒤집어 버리면 어떨까. 사랑하지 않으면 죽게 된다. 그것도 가식적이거나 거짓된 사랑이 아닌 ‘진실한 사랑’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웹툰 ‘비행접시’ 는 다소 황당한 설정과 함께 시작된다. 2009년 4월 1일(웹툰 1화가 올라온 날짜이다)에 뜬금없이 지구 상공에 나타난 비행접시는, 정확히 1년 뒤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 커플을 제외하고 지구궤도상의 모든 인간들을 멸종시킬 것이라 선언한다. 분노한 지구인들은 즉각 공격에 나선다. 정확히는 공격할 만한 능력이 있는 이들이 나섰다. 지구방위대 미군이 전투기, 미사일, 항공모함을 출격시켰지만 외계인들의 테크놀로지는 지구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했다. 살상병기들은 모두 하트로 변해 무력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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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세상은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게 다 우주에서 날아온 ’사랑‘의 비행접시 덕분이었다.’

 

한편 주인공 ‘기영’은 비행접시의 침공(?)이 개시되기 바로 하루 전 별다른 설명도 듣지 못하고 여자친구 ‘세은’ 에게 차여버린, 오질 나게 재수 없는 청년이다. 당연하지만 죽고 싶은 생각이 없는 기영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다. 기묘한 형태의 애인 면접(?)을 보고 있는 ‘지역 내 퀸카’ ‘가희’와도 2차 면접 데이트를 해보지만 실패하고, 마침내 아직까지 솔로인 학우들과의 단체 미팅에서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연순’ 과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사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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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 반 타의 반, 이라는 표현, 그리고 사랑에 절박해진 지구인들의 사정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제 남아있는 젊은 남녀는 객관적으로 볼 때 연애-결혼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연순이도 예외는 아니라서 그녀는 매우 지적이고, 논리적이며, 사려 깊지만 유감스럽게도 외모 면에서는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면접 데이트’에서 기영이와 간질간질한 분위기를 연출한 가희, 그리고 前여친 ‘세은’ 이에 비하면 더더욱 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공식적으로’ 연인관계를 성립하기 무섭게 가희와 세은이 그렇고 그런 촉을 보내오기 시작한다.

 

사실 복잡한 설명이 없더라도 ‘비행접시’를 읽을 가치는 특유의 정신 나간 듯한 개그센스와 언어유희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 언어유희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잘 설명하면서도 톡톡 튀는 어휘와 신선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한 비유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대사는 작가의 유머감각을 잘 보여준다. 이런 종류의 말장난은 타고난 센스 혹은 오랜 경험이 없으면 황당하고 어색한 썰렁개그가 되기 쉽다. 평범한 혹은 평범할 수 있는 상황조차도 특유의 언어유희로 큰 웃음을 주는 웹툰은 그리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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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만화에서 독자들이 알 수 있는 건 ‘남자들의 치사함’ 이 아닐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고, 어쩌면 인간의 본질일지도 모르지만, 남녀 간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인만큼 남자들로 한정지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물론 단어 몇 개만 바꾸면 ‘여자의 치사함’ 이 될 수도 있겠다) 다시 작중에서 등장하는 표현을 빌려보자. “남자는 여자와 헤어지려고 할 때 종종 엄청 비겁해지는 경향이 있거든. 그리고 남자는 뭘 떠보거나 하는 그런 복잡한 계산 따윈 못해. 아마 그 녀석도 말이지…”

 

같은 ‘비겁한’ 남자인 기영이의 주장이니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기영이가 처한 상황이라는 것은 참으로 난감하면서도 어찌 보면 즐겁다(?). 일단은 공식적인 연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미인이라고 할 만한 다른 두 여인이 기영과 “썸”을 타거나 다시 대쉬하는 격이다. 기영을 더 큰 딜레마로 빠뜨리는 것은 공식적인 연인인 연순이 절박한 상황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귀기 시작했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연순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연순은 기영을 매우 좋아한다. 가희는 따로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남자친구의 방황(?)에 기영에게 묘한 촉을 보내고 전여자친구 세은은 대뜸 기영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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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 있는 남자라면 누구를 선택하든 교통정리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기영은 안타깝게도 최악의 선택을 해버리고, 그의 핸드폰은 세 개로 늘어난다. 막대한 통신비와 3배의 데이트 비용을 충당하느라 그의 허리도 휘어버리는 것 같다. 반쯤 잊힌 비행접시의 존재가 아니더라도, 그 결말은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세 다리 상황 속에서의 기영의 행동, 그의 고민, 죄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에서 (어디까지나 “일부”겠지만)남자들이 겪는 동물적 본능과 이성, 도덕 사이의 갈등을 코믹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잘 묘사했다. 순수한 사랑을 찾아 나선 기영이 가장 순수하지 못한 형태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역설적이다.

 

기영은 물론 처음에는 그런 의도가 추호도 없었겠지만, 상황이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사람이 상황을 바꾸는 방향이 훨씬 더 바람직하겠지만. 물론 그가 맞이하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도, 현실의 그것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교훈적이기까지 한 웹툰이라고 할까.

 

 

 

 

경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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