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웹툰 추천] 도리어 열정적이다, '권태'
작가 : 인혜린 / 레진코믹스
2013년 12월 17일 프롤로그로 시작, 2015년 8월 7일 61화를 마지막으로 완결을 맞은 작품. 배경은 현대의 서울로, 무려 ‘리맨물’이다.
주인공 태흔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는 곱상한 외모를 가진데다 제법 능력도 있어 회사 내에서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심장질환을 앓고 있어 주기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고, 종종 발작을 겪기도 한다. 물론 몸이 아프다고 정신력까지 유약하진 않다. 오히려 위태로운 만큼 더욱 강하게 의지를 다지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곁에는 한연호 실장이 있다. 눈치 빠르고 능력 좋은 한 실장은 태흔을 많이 도와준다. 그는 무력하던 태흔을 변화하게끔 이끌어준 인물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두 사람은 상사와 부하 직원이라는 평범한 관계보다, 약간 미묘한 선을 가지게 된다.
초반부에 제대로 등장하는 건 이 둘뿐이라 태흔과 연호의 로맨스가 주된 이야기일 거란 생각을 했다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야기를 세심하게 살펴보면 곳곳에 실마리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건 프롤로그에서부터 은근한 듯 노골적이게 드러나있다.
이야기의 진짜 중심이 되는 인물은 바로 이 메시지를 보낸 남자다.
영은, 그가 바로 태흔의 진짜 연인이다. 그는 태흔의 회상을 통해 이야기에 드러나고 그때마다 태흔은 아픈 추억에 몸부림을 친다. 이 내용이 초반부에 은근슬쩍 드러나며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영은과 태흔은 둘 다 가족에게 버림을 받은 상처를 안은 채 살고 있었다. 그러다 대학 시절, 우연하게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된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만을 의지했다. 자기들만의 세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게 저들을 더더욱 고립되게 만드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영은은 태흔을 극진히 살핀다. 저에게 하나뿐인 희망인 그를 보살피는 게 어느새 그의 삶의 이유가 되었다. 영은은 태흔의 존재 말고는 살아가는 의미조차 느끼질 못했다. 회사에서 늘 치이면서도 버틸 수 있는 건 태흔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집착으로 번지기 시작한 건, 태흔이 영은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직업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태흔이 회사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일에 몰두할수록. 영은은 그가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진다고 느껴 불안해한다. 그 초조한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나고 둘의 관계는 위태롭게 흔들린다.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바람에 마음이 어긋나게 되는 그 과정이 정말 섬세하게 그려진다.
태흔은 저를 붙들어두려고 한 아픈 사랑을 지킬까, 아니면 저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작품의 프롤로그에서부터 압도당했다.
섬세한 작화에 먼저 시선이 확 끌려 들어가면 그 다음에는 무심한 듯 잔잔히 이어지는 대사 속에 숨은 깊은 속내들이 보인다. 특히 태흔이 병 때문에 아파하면서 회상에 잠기고 그때 되씹는 독백이며 회상이 정말 아련하다. 주인공과 아픔을 공유하게 한달까. 이런 세련된 연출이 사람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에 한 번쯤은 빠져보시길 바라는 마음에 추천을 하기로 했다. 탄탄한 스토리, 뼈아프게 공감이 되는 대사들,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작화까지. 모든 게 어우러진 매력적인 작품이다. 정말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