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야 할 웹툰 작가의 부덕: 워커홀릭의 합리화
최근 모 웹툰의 계약 해지 이슈에서, 같은 플랫폼 소속의 작가가 휴재 없이 일하는 것에 대한 글을 올렸다가 파문이 일어난 바 있다.
현재 해당 글은 내려갔고, 해당 작가가 트위터는 못 보고 다른 업체와 전화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라며, 해명 및 사과의 글을 올렸다.
문제의 글은, 작가로서 자신이 명절이나 휴가도 없이 일을 하지만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억울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언뜻 보면 프로다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허나, 상식적으로 볼 때 작가에게도 명절, 휴가 등의 휴일이 보장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지금 현재의 웹툰은 휴일 없는 365일 주간 연재를 하는 게 일반화되어 있다고는 하나, 만화가에게 휴일이 없는 것 자체를 당연시 여기면 안 된다는 말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걸 작가 개인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걸 합리화시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면 휴일을 보장하는 직장으로 이직하라는 냉소적인 말은 환경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쉬고, 안 쉬는 건 작가의 선택이고 쉼으로서 생기는 휴재의 리스크(랭킹 하락, 원고료 감소 등등), 작가가 짊어지는 게 현실이긴 하나. 쉬지 않고 일하는 걸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자화자찬하면 안 될 일이다. 자랑해야 할 일을 자랑해야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만인의 모범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작가들이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게 하는 안 좋은 관행을 권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가 입장에선 프로 작가로서 자기 PR의 일환으로 근면성실함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업계의 관점에선 웹툰 작가의 작업 환경 악화에 일조하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말이다.
더구나 작품의 성공으로 업계에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선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만약, 어떤 누군가 휴재를 요청할 때 플랫폼에서 뭐뭐 작가는 쉬지 않고 일하더라. 그 작가를 본받아라.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필자도 장르 소설을 출간하던 시절, 편집장과의 식사 자리에서 모 작가가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열심히 글을 쓴 걸 보니 다른 작가들도 그거 보고 본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메이저 작가의 발언이나 행동의 업계에 영향력은 쉽게 간과할 수 없다.
과거 방송계에서 모 연예인이 부친상을 당했지만 장례식장에 가지 않고 방송 녹화를 했다는 일화가 프로의 자세를 지킨 것이라면서 미담이 됐는데.. 그건 모범적인 일이 아니라 비극적인 일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을 해도, ‘넌 네가 좋아하는 일 하잖아.’로 귀결되는 말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작가가 고통을 받아 왔는지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문제의 발언이 개인의 의견이자, 성향이겠지만 SNS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어떤 말을 하는 이상은 타인의 공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거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면 최소한 타이밍이란 걸 맞춰야 한다.
종양이 발견됐는데 플랫폼에서 별거 아니란 식으로 휴재 쓰지 말라고 눈치를 줘서 무리하게 일하다가 갑상선 암 진단 받은 작가의 계약 해지 이슈가 터진 현 시국에,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휴일 없이 일한다는 글을 올리는 건 최악 중의 최악의 타이밍이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 끈을 고쳐 쓰지 마라’라는 옛말을 써서 단순한 헤프닝으로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어렵다. 그 글로 인해 쏟아지는 비난의 목소리는 작가로서 감수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