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SF만화를 고려하는 작가들에게 추천하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리들리 스코트
얼마 전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개봉했고, 흥행에서 참패했다. 엄청난 화제작이었지만 대중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예정된 운명이기도 하다. 오리지널인 리들리 스코트의 <블레이드 러너> 역시 1982년에 개봉했을 때 폭망했다. 평론가와 영화광의 찬사를 받으면서 영화사의 걸작이 된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후의 일이다.
이후 리들리 스코트는 <글래디에이터>로 블록버스터 감독이 되었고, 자신의 영화사인 ‘스코트 프리‘를 만들어 영화는 물론 드라마까지 만들며 엄청난 거물이 되었다. <블레이드 러너>는 영화 자체의 명성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영화감독과 작품에게 영향을 끼쳤다. 영화에서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는 <블레이드 러너>를 빼놓고 말할 수 없으며,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공각기동대>는 다시 서양의 크리에이터에게 충격을 주며 워쇼스키 자매가 <매트릭스>를 만들게 했다. SF영화를 말할 때 <블레이드 러너>를 빠트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과 로봇 혹은 A.I.의 관계를 다루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경우가 되었지만 여전히 <블레이드 러너>는 어려운 영화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연출을 드니 빌뇌브에게 맡겼을 때 든 생각은, 흥행이 아니라 완성도였다. 리들리 스코트가 흥행을 생각했다면 더욱 대중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골랐을 것이다. <시카리오> <콘택트>의 드니 빌뇌브는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주지만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리들리 스코트가 직접 제작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대표작으로 남은 <블레이드 러너>를 오락영화로 이어갈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블레이드 러너>는 자신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봐야할 영화다. 캐릭터와 영상이라는 면에서 <블레이드 러너>는 탁월하다. 지금 <블레이드 러너>를 봐도,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LA의 미래 풍경은 감탄하게 된다. 저걸 어떻게 구상하고 재현했을까. 레플리컨트를 쫓는 데커드는 하드보일드 탐정의 미래형인 동시에 인간인지 레플리컨트인지 마지막까지 모호하게 그려낸다. 자신과 동류일지도 모르는 자들을 쫓는 탐정의 고독 그리고 위험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캐릭터는 전형적이면서도 강렬하다.
리들리 스코트는 원래 문학도였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는 지극히 영화적이었다. 초기작들은 ‘빛과 그림자의 마술사’라고 불릴 정도로 빛과 그림자를 탁월하게 잘 잡아냈다. 일본에서 SF 만화를 그린 작가들이 반한 이유도 세계관만이 아니라 그 점이 있었다. 웹툰과 달리 주로 흑백만화인 일본의 망가에서는 빛과 그림자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의 만화는 영화의 영상 표현에서 많은 것을 가지고 왔고, 다시 영화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리들리 스코트의 영화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리들리 스코트의 초기작들인 <결투자들> <에이리언> <위험한 연인> <블랙 레인> 등은 특히 빛과 그림자의 연출이 뛰어나다. 톰 크루즈가 출연했던 판타지 <레전드>와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의 <델마와 루이스>는 리들리 스코트가 단지 누아르의 사실적 재현에만 능한 감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델마와 루이스>는 쨍한 미국 서부의 풍광 아래에서 두 여인의 우정과 의지를 강렬하게 보여주어 인기를 끌었다.
<1492 콜럼버스>
이후 리들리 스코트의 행보는 대중이 좋아할 <한니발> <매치스틱맨> <어느 멋진 순간> <아메리칸 갱스터> <로빈 후드> <엑소더스> <마션> 등의 영화를 만들면서도 <블랙 호크 다운> <킹덤 오브 해븐> <프로메테우스> <카운슬러> <에이리언:커버넌트> 등 소수 취향의 날카로운 영화를 함께 만들고 있다. 창작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성공을 거둔 동시에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도 가지고 있는 리들리 스코트의 초기작들을 찾아보면 새로운 감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