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직장인’이로소이다- 웹툰 '가우스전자'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커리어우먼'이었다. 당시 내게 커리어우먼을 알려 준 건 만화 <너는 펫>이었다. <너는 펫>의 주인공은 언론사에서 일하는 커리어우먼 '스미레'다. 스미레는 도쿄대와 하버드대를 졸업한 수재로, 직장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는다. 늘 깔끔한 수트 차림을 하고 꼼꼼하고 완벽하게 일을 해내는 스미레는 직장 동료들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여성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스미레는 타인을 세심하게 배려하며 함부로 다른 사람의 말을 옮기거나 험담하지 않는, 굉장히 도덕적인 캐릭터다.
▲만화 '너는 펫'
나는 막연히 스미레처럼 되기를 꿈꿨으나, 사회인이 된 후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일에 집중하고 세심하게 살피려 해도 실수하기 일쑤였고, 간혹 일을 잘 해내도 다른 불가피한 상황이 겹쳐 일을 완벽하게 끝낼 수 없는 때가 많았다. 내가 잘한다고 해서 회사 일이 모두 잘 마무리되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직장 동료의 험담을 하지 않겠다고 아무리 다짐해도 억하심정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입이 열렸다.
스미레와 업종이 달랐으니 더 그랬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회사를 둘러봐도 '스미레'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홀로 고고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엔 그 사실이 낯설고 이상하게 여겨졌으나, 회사에 적응할수록 다른 의미의 '일잘' 선배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만의 능력이 따로 있다기보다 주로 타인을 배려하며 일을 해냈다. 같이 일하는 동료의 고충에 귀 기울이고, 부당하게 권력을 남용하지 않으며, 고객이나 상사가 원하는 바를 주의 깊게 들었다. 주로 청취를 잘하는 사람이 일을 잘 해냈다.
많은 직장인이 수없이 공감하며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웹툰 <가우스전자>의 회사 상도 이와 유사하다. 작중 가우스전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회사원 캐릭터들은 <너는 펫>의 스미레 못지 않은 스펙을 갖고 있겠지만, 그들의 일과는 스미레에 비해 매우 소소하다. 짜투리 시간을 확보하여 자기계발을 하고, 팀장의 눈치를 피해 '칼퇴'를 꿈꾸는 일반 직장인의 모습과 똑같다.
▲가우스전자 시즌4 246화 '고득점'
그 중에서도 재밌는 건 <가우스전자>에 유달리 눈에 띄는 '일못'도, '일잘'도 없다는 사실이다. 실수는 누구나 하고, 임원에게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는 엘리트 사원조차 언제나 '스마트'하지는 않다.(그는 언제나 냉철한 분석과 대비되는 기발하고 엉뚱한 솔루션을 제시해 개그의 요소로 주로 활용된다.)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똑부러지게 일을 처리하는 '고득점'조차도 갑작스럽게 부실해보이는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서 독자들에게 충격과 의문을 남겼다.
<가우스전자>에도 진상 상사나 존경받는 리더 정돈 있지만 뼛속까지 악당이나 늘 영웅같기만 한 상사는 없다. 눈치 없는 후배가 있긴 해도, 악의에 가득 찬 '흑화된' 인물은 없다. 캐릭터들은 모두 제각기 나름의 장단점을 갖고 있고 회사 생활의 구성원으로서 직장 생활을 한다. 극중 가우스전자가 망하지 않고 무사히 굴러가는 건 정말 뛰어난 단 한 사람 덕택이 아니다. 오히려 있으나 없으나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나무명'처럼, 존재감은 없어도 각자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굴지의 대기업을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웹툰 '가우스전자'
늘 밝지도, 그렇다고 항상 어둡지도 않은 <가우스전자>의 에피소드들은 직장인의 희로애락을 명확하게 반영한다. <가우스전자>는 우리 스스로가 가진 각자의 입장을 벗겨내고 날것의 현실을 마주하게 하기도 하고, 때때로 회사생활을 어쨌든 '무사히' 해내고 있는 자신을 긍정하고 이해하게도 한다. 어딘가 조금씩 모자라지만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가우스전자>의 캐릭터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사회생활에서 우왕좌왕하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웹툰 <가우스전자>는 비록 내가 완벽한 커리어우먼이 아니더라도 그 나름대로 괜찮다는 말을 따뜻하게 건넨다. 아마도 이런 매력이 웹툰 <가우스전자>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