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보름달식당' 김보통 작가 인터뷰
임하빈 기자
| 2020-02-26 10:10
화제의 작가를 만나다
vol. 90
[보름달 식당]
김보통 작가 | 레진코믹스
Q. 보름달 식당은 조선 중기의 문인 요리연구가 장계향 여중군자님이 쓰신 요리서 『음식디미방』을 토대로 각색한 웹툰입니다. 여중군자 장계향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경북콘텐츠 진흥원에서 지역 인물인 장계향을 활용한 웹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여 전통음식을 소개하면서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과거 인물인 장계향이 음식으로 현대인들을 위로한다는 이야기를 생각해 내게 되었습니다.
Q. 『음식디미방』은 어떤 책인가요?
1670년경 조선 시대에 정부인 장계향이 쓴 동아시아 최초의 여성이 쓴 요리책입니다. 노년에 며느리와 딸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조리법을 전수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요리책으로 한글로 쓰여 있습니다.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
Q. 역사에 실존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보니 자료조사가 필수적이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자료를 주로 참고하셨나요?
영양군에 있는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에서 자료를 주셔서 많은 참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도서를 참고하였는데, 그중 『여중군자 장계향』, 『안동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 : 여성군자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이야기』, 『장계향 - 깨달은 조선여인', '음식디미방 : 한글로 쓴 조선의 요리책』, 『우리나라 전통음식 디미방 : 수백년 이어온 음식의 비전』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Q. 보름달식당은 방장님과 덕선이가 지친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음식을 나눠주는 이야기입니다. 여중군자 장계향을 소재로 이러한 이야기 구조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실존했던 위인을 다룬 만화에서 흔히 취하는 방식은 위인전 방식일텐데, 컨텐츠를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즐기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쉽고 빠르게 볼 수 있는 에피소드식 만화로 형식을 정했고, 처음부터 실존 위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들어가는 것보다 마지막에 정체를 밝히는 것이 좀 더 흥미를 끌고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택한 방법입니다.
Q. 덕선이가 장계향 군자님을 ‘방장님’이라고 부르는데요, 방장님은 무슨 뜻인가요?
음식디미방의 ‘방’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때의 ‘방’은 ‘방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방장’이라는 명칭은 ‘방법을 아는 대장’의 느낌으로 사용했습니다. 굳이 구구절절 만화 중에 설명하지는 않았는데, ‘방장’이라는 명칭 자체가 의미를 몰라도 친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Q. 방장님의 캐릭터는 어디에 가장 초점을 두고 디자인하셨나요?
얼핏보면 몸빼 바지를 입은 익숙한 할머니의 외관이나, 조선 시대 궁중이나 양반집의 여성들이 예장할 때 하는 어여머리를 특징으로 주어 친근하면서도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도록 디자인 했습니다.
Q. 덕선이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 도깨비입니다. 설정이 독특한데요, 어떻게 떠올리게 된 설정인가요?
인간과 신의 사이 중간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귀여운 캐릭터가 필요했는데, 마침 제가 요즘 도깨비 관련된 이야기를 준비 중에 있어 끼워넣게 되었습니다. 장계향과 속세의 인간 사이에서 말을 이어주고 장계향의 의도를 독자 대신 물어주는 역할을 하기에도 적절한 캐릭터 였던 것 같습니다.
Q. 소방관, 미화원, 취준생, 다이어트, 무명작가, 혼혈아, 탈북가족 등, 현대사회에서 소외되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각 화의 등장인물은 어떻게 정해졌나요?
'만약 장계향이 현대 사회에 온다면 과연 누구에게 다가갈 것인가?'하는 상상이 시작이었습니다. 실제로 장계향은 당시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속에 고통받던 민초들을 도와주고 음식물을 나눠주던 사회운동가였습니다. 그렇기에 현대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외롭고 고된 시간을 보낸 사람을 먼저 돌볼 것 같았습니다.
Q. 가장 여운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개인적으로는 탈북민 모자를 도와주는 에피소드입니다. 실제로 목숨을 걸고 탈북해 남한에서 살아가다 결국 아사한 탈북민 모자의 뉴스를 접하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만화에서나마 그들에게 죽 한그릇 먹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렸고, 아마 장계향이 살아있었다면 같은 일을 했을거라 확신합니다.
Q. <보름달 식당> 그리시면서 어떤 요리가 제일 먹어보고 싶으셨나요?
다른 많은 음식도 다 궁금하지만 도토리죽이 가장 먹고 싶었습니다.
Q. 요즘 먹툰이나 먹방이 대세인데 별도로 음식 관련 웹툰을 그려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허락만 해주신다면 장계향을 연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Q. 확실히 작품에 도토리 죽이 자주 등장합니다. 프롤로그에서 탈북민에게 대접한 ‘도토리 죽’, 11화 기근이 든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규휼식 ‘도토리 죽’, 그리고 인간이 되기를 앞에 누고 덕선이의 마음을 돌리게 한 ‘도토리’까지요. 방장님에게 ‘도토리’는 어떤 의미일까요?
장계향 선생은 전란과 흉년으로 배고파하던 민초들을 위해 매일 집앞에 솥을 걸어놓고 도토리 죽을 쑤어 마을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영양군 석보면 원리 두들마을에는 300년이 넘은 도토리 나무 50여그루가 남아있어 그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비단 보름달식당의 방장님 뿐이 아닌, 실제의 장계향 선생에게 도토리는 민초를 살릴 수 있는 기적의 열매 내지는 희망의 열매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Q. 장계향은 기존에는 신사임당과 같이 현모양처 중 하나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여중군자’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현모양처라는 단어로는 한정할 수 없는 다양한 각도에서 장계향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여중군자 장계향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어머니이자 여성으로서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으나, 시대가 좀 더 진보되어 여성도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면 지금의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은 모습이었지 않을까 싶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선구적 사회운동가였다고 생각합니다. 구세군의 창립자 중 하나인 캐서린 부스처럼 훌륭한 분이었으나 그 업적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보름달 식당>은 경상북도·영양군과 경북콘텐츠진흥원이 함께한 "2019 웹툰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을 통해 제작되었습니다.
매주 화요일·목요일에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