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열무와 알타리> 유영 작가 인터뷰
탁정은 기자
| 2020-09-12 14:00
화제의 작가를 만나다
vol. 117
[열무와 알타리]
유영 작가 | 다음

아이들의 이름을 '열무'와 '알타리'로 만든 이유는?
평범한듯 특별한 가족 웹툰!
<열무와 알타리>의 슈퍼맘이자 웹툰작가인 유영 작가님을
웹툰가이드에서 만나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유영 작가님! 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다음 웹툰에서 <열무와 알타리> 육아 웹툰을 연재중인 “유영”입니다.
Q.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시기 시작하셨나요?
A. 중2때 만난 제 단짝 친구가 정말 만화 덕후였어요!
매일매일 가방에 만화책을 몇 권씩 들고 다니면서 보여줬는데, 그 친구 덕에 아주 만화책에 푹 빠져버렸죠. 그 친구 꿈이 만화가였어요. 그 친구를 따라서 만화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저의 그림인생이 시작된 거 같아요.
Q. 웹툰을 그리시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시나요?
A. 열무와 알타리를 출산하기 전에 저는 게임 컨셉 원화가였어요. 앞으로도 계속 게임 디자이너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렇게 웹툰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갈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재활병동 생활을 하면서 언니들과 육아예능을 본 적이 있거든요. 그때 같이 보던 언니가 그러더라구요. 저런 육아예능이 다른 나라 이야기 같다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막연히 '우리의 삶도 저런 육아예능처럼 공감하고 웃고 함께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한번 웹툰으로 그려볼까?'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거 같아요.
쌍둥이 엄마와 웹툰 작가
Q. 아이를 낳기 전후의 일상은 어마어마하게 달라지겠죠. 얼마나, 어떻게 변했나요?
A. 사실 저는 바뀐 일상이 아니라 그냥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간 느낌이었어요.
아이를 낳기 전 저는 나름 긍정적이고 당당한 편이였어요. 일 욕심도 많았고요. 하지만 출산을 하고 나니 정말 자존감은 바닥 치고 제 인생이 바닥에 눌러 붙은 껌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대인기피증도 생기고, 공황장애도 생기고… 출산 전 살던 제 인생은 다른 사람의 인생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아마 대부분의 많은 엄마들이 그럴 거 같아요. 출산 전과 후의 인생은 정말 바뀌죠. 단지, 전 그 강도가 조금 더… 살짝 아주 많이?(ㅎㅎ;;) 바뀐 거 같아요.
내가 먹고 싶은 거 보다는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거, 나의 컨디션보다는 아이의 컨디션이 우선이 되죠. 아이의 스케줄이 곧 제 일상이 되고요. 모든 게 아이중심으로 돌아가요. 그 속에 내 삶을 찾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아이를 낳는 순간 오롯이 자기의 이름만으로 살기는 힘드니깐요. 결국 그 삶이 내 삶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과정이 참 힘들었던 거 같아요. 아 저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한 거 같네요 ㅠㅠ

Q. 임신 중에는 대부분이 설렘과 동시에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으신 때는 언제이신가요?
A. 첫 심장소리를 들었던 날일까요? 심장소리를 듣고 토토도 저도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내 아이의 심장소리구나!’하는… 아마 첫 아이의 심장소리 그 감동은 모든 부모가 잊지 못 할거 같아요. 그리고 바로 “쌍태아네요!” 라는 의사 선생님 말에 정말 눈물이 쏙 들어갔어요. 그리고 분만하던 날이요… 정말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Q. 작품 안에서는 ‘소소’라는 이름을 사용하시는 데, 필명은 ‘유영’입니다. 다르게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A. 원래는 리그 때 쓰던 필명도 소소였어요. 정식연재를 들어가며 다른 작가분의 필명이 비슷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죠. 그래서 급하게 필명을 바꿔야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성을 뺀 본명으로 사용하게 되었어요.

Q. 육아와 작업을 병행 하시면서 마감 하시기에 힘드시죠. 작가님의 작업 스케줄과 작업 방식은 어떻게 되시나요?
A. 연재 초반에는 '열무와 알타리 어린이집 등원 → 작업 → 열무 재활 → 알타리 하원 그리고 토토가 퇴근 하면 바로 작업시작…' 이렇게 6개월정도 작업 했는데 정말 극한 체험이었어요;;
당시 열무도 매일매일 재활치료를 2~3타임씩 다녔을 때라서 오후에 제 시간을 가지는 것도 불가능 했어요. 콘티는 열무 재활치료 기다리면서 짬짬히 쓰고 작업은 주로 밤에 했어요. 덕분에 수면시간이 하루에 2~3시간 정도였어요. 토토도 퇴근과 동시에 독박 육아였고요. 둘 다 너무 힘들었죠. 작업 시간은 따로 정해놓기보다는 그냥 시간 나면 무조건 했어요.
연재 당시 개인 세이브 원고를 3화정도 들고 시작했는데 두 달 만에 세이브 원고도 다 써버렸어요. 일주일에 한편씩 작업이 불가능했죠.
고민하다가 열무 재활 병원을 한 군데 정리했는데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터지더라구요.(아마 재활 하시는 엄마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재활 줄이는게 얼마나 큰 결심인지..ㅎㅎ;;)
시터 이모님도 구하고 가정 보육하면서 작업과 병행했지만 코로나 장기화로 정말 답이 없더라고요. 결국 토토가 다시 한번 육아휴직을 냈어요. 덕분에 토토도 저도 아이들도 요즘은 하루가 많이 여유로운 편(?)이예요.
Q. 열무와 알타리가 올해 6살이 되었어요! 아주 씩씩하고 예쁘게 자라고 있는 거 같아요. 랜선 이모로서 건강하게만 자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커서 그림 육아일기이자 작품인 <열무와 알타리>를 본다면 어떨 거 같으세요?
A. "내가 정말 이랬어!?"하면서 몹시 신기해 할 것 같긴해요ㅎ 자식이 부모를 이해하기에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잖아요? 이 작품을 통해서 그 시간이 좀 단축되길 바라는 건 제 욕심일까요 ㅎㅎ
Q. 미래에 작품을 볼 열무와 알타리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사실 열무와 알타리의 어린시절 기록들이 거의 없어요. 백일 사진, 돌잔치 이런 사진도 없고요. 그 당시 그 시간들을 사진으로라도 남기고 싶지도 않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참 못난 엄마구나 싶어요. 나중에 열무와 알타리가 “우리는 왜 애기 때 사진이 없지?” 라고 물으면 그때 짠! 하고 열무와 알타리를 보여주고 싶어요. 사진은 없지만, 엄마는 그 순간 우리의 시간들을 이렇게 남겨 놨다고요. 그리고 이렇게 많은 랜선 이모들이 너희들을 응원한다고…절대 삐뚤어지면 안된다고 해야죠!!ㅎㅎ

Q. 육아휴직까지 내며 소소와 함께 육아를 했던 토토. 현재 토토는 육아에 얼마나 힘을 쓰고 있나요?
A. 저는 주로 외부 일(?)을 담당해요. 어린이집 행사나 상담, 열무 재활, 병원 스케줄, 학원, 학습지 등… 토토는 그 외 육아를 담당해요. 그래서 순수 육아로만 따지면 저보다는 토토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은 거 같아요.
아이들도 저보다는 아빠랑 놀고, 목욕하고, 간식 먹고, 자고 싶어 해요! 저는 좀 엄한편이고 훈육담당인 반면, 아빠는 항상 자상하고 친구 같거든요. 그래서 열무와 알타리에게 토토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요! 알타리 말로는 엄마는 헐크 같대요. 저는 항상 화가 나 있으니까요!? 하하하!!
Q. 소소와 토토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합니다!
A. 20살 때 동아리 모임으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처음 갔었거든요. 모임 카페를 찾고 있는데 멀리서 키 큰 남자가 파란 티를 입고 걸어오는 거예요. 정말 무슨 마법처럼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 남자만 딱 보이는 거죠.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정신 차리고 동아리 회원분께 전화를 했는데!! …. 뒷 이야기는 <열무와 알타리> 웹툰에서 준비해보겠습니다!
Q. 본인이 직접 겪지 못해 작가님께 상처가 되는 말도 많이 들으셨죠. 웹툰을 그리고 나서는 주변 반응이 달라졌을까요?
A. 그냥 막연히 힘든 줄 알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미안해 하는 지인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혹은 저의 상황을 몰랐던 지인분들이 웹툰을 보고 연락을 주시기도 했어요.
사실 이런 일들을 디테일하게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보통은 대충 얼무버리잖아요. 대부분은 이야기를 해도 모르시죠. 공감되는 일들도 아니고… 그런데 <열무와 알타리>라는 작품으로 제가 모든 걸 오픈해버리니, 오히려 진심으로 응원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진 거 같아요. 저의 근황을 말하지 않아도 전부 알고 계셔서 저도 더 편한 거 같아요 ㅎㅎ ..
Q. 과거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A. 영끌해서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매매하겠습니다…
* 영끌 : 영혼을 끌어모으다
Q. 작가님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혹은 겪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제가 정말 너무 힘들 때는 그 어떤 위로나 말도 들리지 않았어요. 아마 지금도 그렇게 힘든 분들이 계실텐데요. 제가 감히 말씀드리면, 시간은 흐르더라구요. 절대로 가지 않을 거 같은 그 힘듦도 결국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돼요. 상황이 정리되거나 혹은 내 스스로가 단단해져 그런 모든 일들을 받아들이던가…
그런 일들에 가장 미워지고 자책하게 되고, 결국 학대하게 되는 건 내 자신이더라고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자책하지 마시고 소중한 당신을 꼭 보살펴주셨으면 좋겠어요.

<열무와 알타리>
Q. 자신이 직접 경험한 육아라는 소재로 웹툰을 그리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사실 시작은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막상 펜을 들고 작업을 하려고 하니 쉽고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아니더라고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만 2년넘게 걸린 거 같아요. 연재를 시작하면서 ‘아이의 장애를 굳이 꺼내서 웹툰을 그리고 싶을까?’라고 생각을 하시는 독자분들의 반응이 사실 걱정이 많이 되었어요.
저 역시 '이런 이야기로 웹툰을 그리는게 과연 맞는 걸까'라는 고민도 많았고 지금도 그런 생각이 종종 들 때도 있어요. 이런 이야기들이 어떻게 보면 우리의 불행을 전시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 과정들은 불행하고 힘들었지만, 저는 지금 너무 잘 지내고 있거든요.
열무를 키우는 5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장애는 불행이라는 많은 편견과 장애가정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들에 힘든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런 우리의 일상을 통해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또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분들과 공감가는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기도 했고요.
Q. 아이들 이름을 ‘열무’, ‘알타리’로 짓게 된 이유는?
A. 토토씨와 웹툰을 시작하기로 하고 함께 이름 고민을 하다가 토토씨의 아이디어로 바로 결정했어요.
후보군으로 배추와 무우 (이건 무도사 배추도사 같아 바로 패스 …) 신생아때 쓰던 애칭 콩떡이와 빵떡이 등등이 있었지만,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귀엽고 어감이 좋아서(?) 열무와 알타리가 되었습니다.
Q. 알타리는 캣타워에 도대체 어떻게 올라갔을까요..?
A. 올해 19살 된 냥이가 퇴행성관절염이 와서 점프가 전혀 안돼요. 그래서 계단을 만들어 줬는데, 그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냥이를 따라서 똑같이 올라간 거 같아요ㅎㅎ
Q. 작품을 보고 많은 독자들이 공감과 더불어 따뜻한 말을 건네주시는데요, 보실 때 많은 위로가 되시겠어요. 댓글을 읽으시면 어떠세요?
A. 너무 감사하죠. 하루에도 몇 번씩 제 웹툰 댓글 쳐다보고 그래요. 그 모습을 보고 토토가 그만 좀 보라고 ㅎㅎ ;;
그리고 쉽게 꺼낼 수 없는 본인들의 이야기를 남겨주시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정말 울컥하고 막 전화드리고 싶어요. 항상 대댓글을 남겨드릴까 하고 글을 쓰다 지우다 반복하기도 하고…. 또 더 열심히 작업해야겠다 그런 약간의 사명감도 생기고 막 그래요.
Q. 매 화 고생 많으셨을 열무, 알타리 가족들을 생각하니 직접 경험하지는 못 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도 자주 눈물이 나더라고요. 작가님은 작업 도중 옛 생각에 울컥한 적 있으신가요?
A. 네. 많아요…. 제가 ‘열무와 알타리를 그려야겠다’라고 마음먹고 2년이나 지난 시점에서야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였음에도 막상 다시 그때 기억을 떠 올려 작업을 한다는 게 너무 힘들더라구요.
초반에는 작업 하면서 울다가 진이 빠져서 작업을 못 한적도 많아요. 지금도 가끔씩 콘티 짜면서 울기도 해요. 가장 최근으로는 알타리 에피소드를 그리면서 또 울컥 했던 거 같아요.
Q.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라진다면 <열무와 알타리>를 애정하는 독자들과 키즈카페에서 팬미팅을 해도 좋을 거 같아요. 팬들과 만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원할한 대화는 불가능할 것 같지만!! 너무 좋을 거 같아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지면 꼭 준비해보겠습니다!! 근처 사시는 분들이라도, 시간 되시면 꼭 나와주세요!!!
Q. 작품 속 아이들은 아직 4살입니다. 몇 살까지의 이야기를 담아 내실 계획인가요?
A. 글쎄요…. '몇 살까지 그려야지!'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제가 그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는만큼 일까요?
열무의 장애전담 어린이집 이야기부터 앞으로 열무가 가야 할 특수학교, 장애아이와 비장애아이의 육아 등등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재활하면서 만난 선배 엄마분들의 인생 이야기들이 정말 큰 도움과 위로가 되었거든요. 제 웹툰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도움과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만일 연재가 종료 되더라도 인스타에 가끔씩 올리기는 할 것 같아요.

마치며
Q. <열무와 알타리>의 연재가 종료 된 후 차기작으로 생각하시는 장르가 있나요?
A. 소아 물리치료사를 주인공으로 재활치료를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일상툰처럼 써볼까 싶기도 하고, 30~40대 세 자매의 이야기를 19금으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볼까 싶기도 하고…. ㅎ..글쎄요! 차기작에 대한 고민이 많기는 하지만 우선은 열무와 알타리에게 집중! 하겠습니다!
Q. 아주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셋 째 계획이 있으실까요?
A. 이번생에는 열무와 알타리의 엄마로만 남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열무와 알타리>를 사랑하는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응원을 해주셔서 토토도 저도 너무 놀랐어요. 열무와 알타리로 인해서 또 다른 제 삶이 열렸고 독자분들께서 그런 제 삶을 밝혀 주시는 거 같아요.항상 너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