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VS 만화 시즌 2 : 이충호 대 양영순] #01. 잡지부터 웹툰까지, 웜홀을 통과하는 그들만의 방법
만화 잡지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저물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지금은 웹툰의 시대다. 고작 판이 바뀐 것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 외로 판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매체가 바뀌면서 만화의 성격도 바뀌었으며, 자연히 사람 또한 바뀌었으니까. 물론 오프라인에서 시작해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웹툰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작가도 있다. 이충호와 양영순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둘은 스타일도, 다루는 주제도 전혀 다르다. 그러나 두 작가 모두 만화 잡지 황금기에 활약하다 다시금 웹툰 시장에 안착한, 우리 시대 몇 안 되는 중진 만화가이기도 하다. 판을 다지기 위해서는 무서운 신진의 등장이 계속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견 작가의 듬직한 존재일 것이다. 만화의 플랫폼과는 무관히 자신만의 화법을 만들고 다듬어 이제 다시 새로운 세대 독자들과 호흡하는 작가 이충호, 양영순. 색깔과 노선은 다르지만 두 작가 모두 90년대 한국만화의 거울이자 오늘날 우리 웹툰의 현주소다.
흔히 잡지의 ‘몰락’이라는 상투어로 지나간 종이잡지의 시대를 추억하곤 한다. 아마도 반짝이는 황금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말일 것이다. 그 말처럼 1990년대는 한국 잡지만화의 중흥기였다. 독자의 연령과 성별에 따른 수 종의 만화잡지들이 존재했고 잡지 간 경쟁 또한 치열했다. 잡지를 통해 만화가로 데뷔한다는 것 역시 지금의 웹툰작가 데뷔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또 데뷔 후에는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대작 일본만화와도 정면승부를 벌여야 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황금기라고는 하지만 작가들에게만큼은 결코 녹록한 시대가 아니었다.
이충호와 양영순은 바로 이 시기, 만화잡지에서 데뷔해 당시 스타 만화가로 자리매김한 작가들이다. 두 작가는 높은 진입장벽을 넘어선 것은 물론이고 일본만화의 무차별 공습마저 이겨내고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두 작가의 지향점은 처음부터 서로 양극단을 향했다. 이충호가 소년만화에서 시작해 현재까지도 자신의 장기 그대로 소년만화로 승부하고 있다면, 양영순은 성인만화, 그것도 당시 금기시되던 성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을 앞세운 발칙한 상상력으로 우선 주목받았다.
이충호는 1992년 『소년중앙』에 단편 『고독한 전사』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은 만화주간지 『아이큐 점프』에 연재했던 『마이 러브』. 이충호의 첫 장편작이었던 『마이 러브』는 3권 분량 이후부터 스토리작가로 엄재경이 합류하면서 장기 연재의 토대를 갖춘 후 총 11권으로 완결됐다. 『마이 러브』는 인기만 따진다면 동 잡지에 연재되던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당시 『마이 러브』의 단행본 판매부수는 무려 150만 부에 이르렀다. 이충호는 자신의 첫 번째 장편작으로 말미암아 단숨에 밀리언셀러 작가로 등극한 것이다. 차기작 『까꿍』 역시 10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게임 및 캐릭터 상품 등으로도 만들어지는 등 연이어 성공을 거두었다. 이충호는 명실 공히 90년대 출판만화 시대 황금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반면 양영순의 이름을 알린 작품은 『마이 러브』나 『까꿍』의 정반대편에 놓여있을 법한 『누들누드』였다. 『누들 누드』는 1995년 성인만화잡지를 표방하며 창간한 『미스터 블루』에 연재된 작품으로, 단순히 야한 만화가 아니라 다양한 성적 판타지를 해학과 풍자의 시선으로 접근한 보기 드문 형태의 개그 만화였다. 당시 『누들 누드』는 OVA(Original Video Animation)로도 만들어질 만큼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누들 누드』의 성공에 힘입어 성과 개그를 접목한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 또한 여럿 등장했다. 이후 『일간스포츠』에서 연재한 『아색기가』는 『누들 누드』의 색깔은 가져가되 보다 짧은 호흡으로 신문만화의 형식에 부응함으로써 대부분 극화 위주로 채워지던 스포츠신문 만화에 새로운 조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적 역량과 무관히 이들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불행히도 책을 못 사는 게 아니라 안 사는 게 시대의 흐름이 되어버리면서 출판만화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아마도 출판시장이 협소해지면서 가장 먼저 외면을 받은 것이 첫째가 잡지요, 둘째가 만화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충호는 『눈의 기사 팜팜』 『블라인드 피쉬』 등으로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며 자신의 색깔을 확고히 다져갔지만, 결국 출판만화 시장의 총체적 몰락을 이겨내기에는 중과부적이었다. 그로 인해 2005년 『황석영 이충호 만화삼국지』를 비롯해 2006년에는 『어린이 과학동아』에 『내친구 코봇』 등을 연재하며 당시 마치 출판만화시장의 대안인 듯 완만한 성장세를 누리던 학습만화 분야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양영순 역시 이렇다 할 작품 활동 없이 오랜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던 중 양영순은 스스로 반등의 기회를 마련한다. 웹툰이 점차 확장일로를 걷고 있긴 했지만 아직 확고한 터전을 다지지 못하고 있을 무렵, 『아라비안 나이트』를 모티브로 한 웹툰 『1001』로 웹이라는 새로운 캔버스에 적합한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던 것이다. 초창기 웹툰이라고 하면 대부분 에피소드 형태의 개그물, 그것도 아마추어를 겨우 벗어난 작화로 일상의 경험을 소재로 삼는 데 급급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면, 『1001』은 긴 호흡, 유려한 작화, 세로 스크롤 방식을 적극 응용한, 이국적인 분위기가 도드라지는 판타지 만화였다. 『1001』은 지금처럼 대세로 각광받기는커녕 서서히 고착화되어 가던 웹툰 장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충분한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이후 양영순은 웹툰이 대세로 자리 잡기까지 『삼반이조』 『란의 공식』 등의 웹툰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며 과거 공인 받은 프로 만화가의 면모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물론 대부분의 작품들이 흐지부지한 결말을 맞거나 심지어 몇몇 작품은 갑자기 연재를 중단하는 등 비판의 여지도 동시에 남겼지만. 그러나 이런 과도기를 넘어 마침내 SF만화 『덴마』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1001』은 2012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선정한 한국만화 명작 100선에 선정되면서 웹툰에 새로운 둥지를 튼 양영순의 행보에 다시 한 번 힘을 실었다. 현재는 카카오페이지에서 『준의 알람』을 연재하고 있다.
이충호의 웹툰 진출작은 2007년 미디어다음에 연재했던 무협만화 『무림수사대』였다. 소년만화 장르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던 이력 그대로 『무림수사대』는 현대판 무협만화이자 소년만화로 이충호 특유의 독특한 화풍과 단색 위주의 특별한 컬러링, 무협 장르 특유의 적절한 비장미를 더해 호평 받았다. 『무림수사대』는 2010 대한민국 콘텐츠어워드 우수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10부천만화대상 우수문화상 뉴미디어 부문을 수상했다. 『무림수사대』를 통해 웹툰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이충호는 이후 『이스크라』 『지킬 박사는 하이드 씨』 『제0시: 대통령을 죽여라』 등 계속해서 웹툰 연재를 성공적으로 이어갔다. 현재는 『무림수사대』의 속편 『무림수사대2: 무황재림』을 연재 중이다.
이충호, 양영순. 이들은 90년대부터 만화계에 발을 들인 중진이지만 지나간 과거의 작가들이 아니다. 잡지시대 흥망성쇠를 함께 하다 오늘날 웹툰 분야에도 성공적으로 진입한 ‘오늘의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둘러보건대 이 둘의 ‘재기(再起)’는 분명 드문 경우임에 틀림없다. 그 많던 만화가들이 사라진 것을 시대의 흐름이라 한다면 아마도 두 작가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른 작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늘 현재의 작가로 남은 특별한 도약 그대로 두 작가 모두 앞으로도 한국만화계의 또 다른 번영과 함께 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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