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트미션> 원작자 오타가키 야스오 일문일답
2013년 10월 11일 작성된 인터뷰입니다.
<프론트 미션 : 도그 라이프 앤드 도그 스타일> 원작자
오타가키 야스오太田垣康男 일문일답
포털사이트 다음 만화속 세상에서 서비스 중인 ‘스퀘어 에닉스 관’은 모바일 버전의 부재에도 순항 중이다. 스퀘어 에닉스 사의 월간만화잡지 <영간간>에 실리는 작품들을 ‘단행본’ 한 권 분량을 한 회차로 묶어 유료로 서비스 하는데, 여기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은 단연 <프론트 미션 : 도그 라이프 앤드 도그 스타일Front Mission : Dog Life And Dog Style >이다. <문라이트 마일>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 오타가키 야스오太田垣康男가 스토리를, 한국작가인 C.H. LINE(윤찬희)가 작화를 맡은 이 작품은 자사에서 제작한 게임 <프론트 미션> 시리즈에서 기본적인 설정과 세계관 등을 빌어와 화끈한 전쟁 액션, 근미래 SF 만화로 재탄생시켰다. 대범하며 관능적인 캐릭터들을 앞세운 화끈한 전투 신의 연속이라 비주얼에 현혹되기 쉬우나, 죽음으로 점철된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존재가치 등 철학적 질문으로까지 이어지는 깊이 있는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다.
(* 인터뷰는 사정상 <프론트미션> 스토리 관련 질문으로만 진행했습니다. )
인터뷰/구성 : 임지희
취재/정리 : 다케우치 슌이치(스퀘어에닉스 출판부 담당기자)
진행/정리 : 이현석(스퀘어에닉스 출판부 <영간간> 편집부 한국업무 전담)
Q. 게임 ‘프론트 미션’시리즈 설정과 세계관을 어느 정도 참고로 해서 작품을 만들었습니까? 작가도 게임의 팬일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게임에서 제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A. 기본적인 무대설정 및 적/아군의 설정을 당연히 참고 했고, 게임을 의식하면서 만들었습니다. 그 이외의 것은 새롭게 만들었죠. 특히 ‘번처(작중에 등장하는 로봇형 전투 메카닉)’에 관해서는 여러모로 재해석을 가하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실제 게임에서는 도트로 표현되는 설정그림 밖에는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세부적인 부분부터 해석을 하면서 그려야 했는데 이게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제가 게임 ‘프론트 미션’을 좋아했던 이유는 게임의 기본 내용이 “장기 말을 움직이듯 플레이하는 보드게임”이고, 전략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플레이해야만 하는 스타일 때문입니다.
게임 ‘프론트 미션’ 시리즈
게임 프론트 미션(フロントミッションシリーズ(Front Mission Series))은 1995년부터 발매된 전략 RPG(롤플레잉) 시리즈다. 21세기 초중반부터 22세기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번처라는 로봇병기를 이용해서 전쟁을 치른다. 기본적인 게임 방식 자체는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와 같은 전략형 RPG이지만, 하드한 SF설정과 근미래 배경을 도입하여 많은 팬층을 형성하였다. 스퀘어 에닉스를 대표하는 게임 시리즈 중 하나.
Q. 작품 전반에 기독교적 비전이 엿보입니다. 양치기 형제의 이야기는 ‘카인과 아벨’을 연상시키기도 하고요. ‘양치기’라는 용어 자체를 일부러 선택한 점이나, 또 신의 잔혹함이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자연스럽게 요한 계시록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사실 저는 불교를 믿습니다. 처음 이 만화를 만들 때는 불교적 세계관을 투영하고 싶었습니다. 의외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일본은 불교적인 세계관이나 관념, 용어를 사용하면 보통의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낯설고 어려운 거죠. 그런 사정도 있고 해서, 작품에 초일상적인 요소나 오컬트적인 인상을 주는 장치로 지금 일본인에게 가장 효과가 있는 게 기독교적 이미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작품에 집어넣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많이 만들어진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미국 전쟁영화들에는 기독교적 평화주의가 짙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전쟁영화와 기독교는 적어도 당시에는 뗄 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Q. <프론트 미션 : 도그 라이프 앤드 도그 스타일>에서 주인공은 끝까지 전투에 참여하는 군인들이 아닌, 전장 카메라맨인 이누즈카입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전쟁의 참상을 여과 없이 찍어 바깥세상으로 송출하고, 작품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모든 걸 초월한 존재로까지 나오는데요. 이런 변화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나요? 그리고 관찰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의도도 궁금합니다.
A. 독자 분들 사이에서 “이누즈카는 대체 어떤 사람이야?”라는 게 논쟁거리로 떠오를 거라는 것은 당초부터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의 말을 일단 대전제로 깔아두고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 건에 대해서 “바로 이것이다”하는 답은 준비해두고 있지 않습니다. 독자 분들 모두 나름의 해석을 갖는 걸로 충분하고, 해석에 대해서 “바로 그거야!” 혹은 “틀렸어”이렇게 말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작가로서 이누즈카에 대해서 말해보라면, 다음과 같이 대답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의 일본인은, 전쟁은 저 멀리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일로 생각하기 쉽죠. 전쟁을 실감하거나, 고민하게 될 때에는 주로 방관자의 입장을 견지하죠. 자신은 당사자가 아니라,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사람이다” 이런 입장 말이죠. 이것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로서 배치한 것이 이누즈카라는 캐릭터이며, “방관자 집단”이라는 의식을 작품에 구체적으로 투영시켜보니,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진짜 살아있는 개인’인지 ‘유령’인지 애매한 표현이 되더라… 이런 것입니다.
Q. 전쟁 신을 구상하고 작품을 쓸 때 모델이 된 전쟁(영화 속 특정한 장면이라도)이 있으시면 이야기해주세요.
A. 911테러 이후의 전쟁/분쟁에서 상당히 영향을 받았습니다. 의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할까요. 4권의 ‘영웅의 십자가’편에서는 베트남 전쟁 느낌을 내보려고 했는데, 그리는 도중에 역시 이건 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대, 혹은 근미래의 전쟁을 그린다면 역시 사막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 뒤로는 그런 생각으로 그렸습니다.
영향을 받은 영화라면, 이 지면에서는 다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으니 다음 기회로 미루죠. (웃음)
Q. 굉장한 밀리터리 애호가라고 들었습니다. 본인에게 전쟁, 무기/병기는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요? 왜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까?
A. 이건 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웃음) 저는 특별난 밀리터리 마니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편집부에 군사 분야를 잘 아는 분이 있어서 어드바이스를 받을 정도니까요. 일정 수준 이상의 리얼리티가 필요한 작품이라, 작품에 등장하는 군사적 요소는 그 분의 어드바이스가 반드시 필요했고요. 물론 독자 여러분은 내부 사정을 알지 못하시니, 오타가키 씨는 밀덕(밀리터리 덕후)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라 봅니다.
실제로는 아닙니다! 혹시 실망하시는 분들이 있으실지 모릅니다만. (웃음) 다만 제가 어릴 때, 즉 1970~1980년대 일본에서는 할리우드 전쟁영화나 드라마를 텔레비전 황금 시간대에 방송했고, 가족이 모여 앉아 그걸 보곤 했습니다. 지금 그런 방송이 전무한 상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젊은 세대와 비교하면 전쟁이나 병기에 관한 지식, 흥미는 아무래도 조금은 더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병기/무기에 관한 제 견해는… 오해를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말씀드립니다. “눈을 거기로 돌리게 만드는 매력과 마력이 있는 존재”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두말할 여지가 없이 병기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항상 전쟁을 통해서 역사를 만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전쟁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핏속에는 병기를 보면 “손에 넣고 싶다”혹은 “한번 사용해보고 싶다” 같은 조금은 역겨운 ‘업’ 같은 것들이 내재하게 되었고, 그것이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남자들이 그렇죠.
하지만, “그런 야만적인 물건은 세상에서 없애야 한다”같은 생각은 지나치게 단순한 사고방식이라고 봅니다. 세상에서 에로물을 전부 없애버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 처럼요. 병기나 무기도 마찬가지겠죠. 그게 인간의 업이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무기는 ‘살상 도구’니까, 당연히 위험한 물건이지요.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손을 뻗어 쥐어보고 싶은 마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험한 것을 왜 만들었을까 의문이 들지만, 이게 간단히 없앨 수 있습니까? 만일 그게 가능하면 인류가 이렇게 고생을 하진 않겠죠. 사람들의 눈길 닿는 곳에 당당하게 전시할 수 있는 것에만 ‘아름다움’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인간의 감정, 충동같은 말초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 진짜 ‘미’적인 것, 아름다운 것이라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병기는 미적인 것의 집합체가 아닐까 감히 생각합니다. 아마도요.
Q. 작품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전반부에는 하드보일드 적 면모가 엿보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츠네키 형제’를 전면에 내세워 고풍스럽다고까지 느껴지는 신파적 드라마가 부각됩니다. 스타일을 견지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는지, 따로 의도한 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원래 옴니버스 형식이었던 작품이었는데, 양치기 에피소드부터 장편이 된 경위를 물어보시는 듯한데, 이건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의도된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웃음)
원래는 짧게 끝낼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등장인물이 늘어나 버려서, 이야기 전체의 볼륨이 확 커버렸습니다. 원래 ‘개인’의 시점을 다룬 전반부와 대비되는 ‘집단’ 에피소드를 그려보자는 의도로 시작을 했는데, ‘개인’을 제대로 그릴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걸 수습하다보니) 이런 큰 볼륨의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Q. 마지막 편에서 나온 이누즈카의 대사 “인간은 아름답지만, 더럽다…”는 이번 작품에서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큰 테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테마를 명확하게 드러내고자 한 장면 등이 있다면.
A. 맞아요. “인간은 아름답지만, 더럽다…” 이것을 전하고 싶어서 잔혹한 전투 신을 일부러 많이 그려 넣었습니다. 죽은 뒤의 더러움과 추함이 삶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리면서 가슴이 아플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첫 에피소드 ‘전장의 투명인간’에서 여주인공 쿠리하라가 유탄에 맞아 죽는 신은, 실제로 그리면서 굉장히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을 그리면서 제 안에서 각오가 서더군요. 그리고 이때 가졌던 생각이 이후 등장하는 전투 신의 퀄리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누즈카에게 준 그 대사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말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아름답고 훌륭한 부분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의 처참한 죽음 위에 성립된 것이죠. 성선설과 성악설, 어느 쪽도 전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도, 사람의 마음속에는 막연하게 ‘어둠’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어떤 계기를 통해서 의외로 간단하게 표출됩니다. 저는 그것이 인간이라고 봅니다. 전쟁이야말로 그런 일들이 대규모로 벌어지는 전형적인 예이고, 전쟁 속에서야 말로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악함이 서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지는 순간이라고 봅니다. 참 얄궂은 일이지요.
Q.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됩니다. 속편의 암시?
A. 그 장면을 그린 시점, 혹은 현시점에서도 속편은 구상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 라스트 신은, (전쟁이란) 어쩌면 독자 여러분(주: 여기서는 일본의 독자들을 가리킴)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이런 현실이야말로 진짜 속편 아닐까요. 물론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게 좋겠죠.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고요.
Q.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문라이트 마일>을 읽고 나서 <프론트 미션> 시리즈를 읽으면 원안부터 메카닉디자인까지, 단순히 스토리 작가의 레벨을 넘어서 그림의 연출까지 일정부분 관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세세한 표현이나 캐릭터 연출 등 작화를 담당한 C.H. LINE씨에게 특별히 주문하신 부분이 있는지요.
A. 저는 어디까지나 뎃생(밑그림)에 가까운 콘티를 작성한 스토리 작가(일본에서는 원작자라고 부른다)입니다. 콘티를 납품한 그 순간부터는, 작화를 담당한 C.H. LINE씨와 편집자에게 맡기는 거죠. 쓸데없는 압력을 그림 작가에게 가하고 싶지 않았기도 했습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프론트 미션 : 도그 라이프 앤 도그 스타일>은 한국에서도 상당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예상하셨나요.
A. 원래 일본 독자보다 한국 독자의 마음에 더욱 다가서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한국은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이며, 당연하게도 한국에는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 ‘병역의무’라는 게 있죠. 일본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전쟁이 존재하고, 또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특히 젊은(병역의무를 이행해야할 시기의)세대는 “그런 거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자”는 풍조도 혹시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본과 비교해보면 불과 20여 년 전까지 교련 과목이 남아있었고,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을 시키는 한국에서는 “전쟁은 싫다!” 라고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추측에 지나지 않을지 모릅니다만, 그런 복잡한 한국만의 분위기가 작품이 반향을 일으키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게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에 대해서 제가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요.
필진 소개
출처 : 에이코믹스 주소 :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4970
윤태호 작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