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박물관 3.1운동 100주년 벽화' 남기영 작가 인터뷰
▲한국만화박물관 3.1운동 100주년 기념 벽화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며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지 딱 100년이 흘렀다. 올해에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전국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한국만화박물관에는 조금은 특별한 그림이 한 쪽 벽면에 등장했다. 독립운동가, 일반 시민들, 그 외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등장해 다 같이 만세를 부르는 그림. 한국만화박물관 3.1운동 100주년 기념벽화를 그린 만화가 남기영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만화가 남기영에 관하여]
▲남기영 만화가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폐간됐지만, 서울문화사 잡지 <영점프>의 만화공모전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만화계로 들어오게 됐어요. 그전에는 2년 넘게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인을 좀 했었고, 'IQ점프'랑 '영점프' 쪽에 주로 단편 만화를 게재했어요. 그 후에는 스포츠 신문 쪽에 한 6개월 정도 일간 만화를 그리다가 스토리 부재로 멈추게 됐죠. 재정적으로 힘들던 차에 마침 여기저기서 학습만화를 하자고 제의가 와서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학습만화를 좀 오래 그리게 된 거 같아요. 지학사, 동아사이언스 같은 곳에서 연재하고 김영사, 살림출판사 등 여러 군데에서 책도 많이 내고. 거의 한 10년도 그렇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지금에서야 웹툰을 오랫동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직 플랫폼과 계약이 되어 있지는 않고, 이제 좀 해보려고 하는 상황이거든요.
Q. 웹툰을 연재한 경험은 있으신가요?
사실 웹툰은 한 게 거의 없어요. '그녀와의 MMA'라고 북큐브에서 연재한 작품이 있는데 준 성인물이에요. 이름을 안 쓰고 ‘쏘군’이라는 작가명을 썼었죠.
Q. 웹툰을 해보셨을 때 소감이 어떠셨는지?
정작 그 작품은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거 같아요. 당시 추세가 일반 물은 구매를 안 한다고 하고, 성인물이 구매를 많이 한다면서 먼저 연재 제안이 들어온 거예요. 제안이 왔으니 일단 해봤는데 저랑은 좀 성격이 많이 안 맞더라고요. 하면서도 막 부끄러운 부분들도 있고. 그리고 주간 연재라는 게 정말 쉽지 않구나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윤태호 작가님이나 다른 분들처럼 준비 기간을 길게 잡더라도 탄탄하고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더라고요.
Q. 현재 작가님이 준비하고 계신 차기작에 대해서 간단히 들려주신다면?
제가 계약이 안 되어 있는 상태라 모호하지만, 그래도 얘기하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요.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같은 분위기인데 소재는 조금 무거운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요. 우리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게 삶이잖아요. 가장 빛날수록 그 옆은 가장 어두운 법인데, 삶이 중요하다면 그 옆에 있는 죽음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삶에 대한 이야기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죽음이란 것은 무섭지만 회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랫동안 작품을 준비했어요. 그래도 소재가 무겁다 보니 표현할 때는 최대한 밝게 하고 유머러스한 걸 많이 넣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카우보이 비밥' 같이 어두운 느낌과 밝은 느낌이 공존하는 그런 느낌으로 계획 중이에요. 물론 스토리는 전혀 다르고요.
Q. 어린이만화, 그 중에서도 역사만화를 많이 그려오셨는데 어린이만화, 역사물을 다루게 된 계기는?
원래 제가 아이들 만화를 하려는 생각은 없었던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옛날에 애니메이션 감독 한 분이 제 캐릭터를 보고서 픽업을 하셨어요. 그게 아동물 애니메이션이었던 거예요. 그게 극장판도 되고, TV 시리즈물도 되고 그러면서 제가 일거리가 좀 많아진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생각지 않았던 아동 물이란 걸 처음 접해봤는데 그것도 또 나름 재미가 있는 거예요.
나중에는 아이큐 점프 쪽 팀장 분이 다른 곳으로 가면서 저를 부르더라고요. '그림이 귀여우니까 한 번 아동물 쪽으로 해봐라' 그렇게 제안을 해주셔서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게 됐던 거 같아요. 주로 김영사에 나오는 역사물 책을 맡아서 작업했어요. 하다 보니까 또 제가 전혀 생각지 않았던 철학물이나 역사물 등 그런 인문고전들을 하게 됐고, 그런 걸 그리다 보니까 좀 그런 깊이에 대해서 알게 되는 계기도 되고, 만화로 바꿔보는데 공부도 많이 됐던 거 같아요.
▲남기영 작가가 그린 만화 '아인슈타인'과 '나폴레옹'
Q. 역사물을 많이 그리신 만큼 역사관도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한국 역사보단 외국 역사 만화 작업을 많이 했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이상하게 나폴레옹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유명 위인들 작품이 많이 오더라고요. 저는 사실 그분들에 대해서 깊게 알진 못했는데 만화를 그리려고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사실은 나폴레옹이나 아인슈타인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좋은 사람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오히려 하게 됐어요.
'아이들이 다 위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정말 과연 어떤 관점에서 위인일까?' 그런 거죠. 예를 들어 나폴레옹은 잘 하는 게 오로지 싸움밖에 없는데, 인격적으로는 사실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전쟁 미치광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렇게 좀 다른 시각으로 많이 접근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제 작품을 보면은 그런 반감적인 부분들이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어요. 그냥 선생님들이, 그리고 나라에서 '이건 이거야'라고 했을 때 그걸 그냥 받아들이는 거보다는 아이들이라고 해도 조금 다른 쪽으로 한번 생각해보고, 다각화시켜서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옳고 그름이라는 것도 관점에 따라 바뀌잖아요. 그래서 저는 서두에도, 머리말에도 그런 걸 쓰거든요. 그걸 기획자나 출판사에서 조금 싫어할 수도 있는데, 저는 아이들이 좀 객관화시켜서 보는 눈을 좀 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만화박물관 3.1운동 100주년 기념 벽화]
Q. 만화박물관 벽화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참여는 공고를 지원했어요. 사실 저는 처음에 공고를 봤을 때는 저 정도 퀄리티는 생각을 안 했어요. 그냥 편하게 시민들 그려주고 그걸 모아서 벽화를 만드는 줄 알았죠. 웬만하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는데 3.1운동 100주년이라는데 의미를 많이 둔 거 같아요. 그분들의 항일운동에 나도 동참한다는 생각? 저도 독립운동가분들을 존경하고 있거든요. '내가 그 상황이라면 목숨을 내바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했는데 전 자신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벽화 작업을 할 때 '그분들을 기리는데 발 하나 걸칠 수 있다면 스스로 자긍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했어요.
Q. 이번 벽화도 시민 캐리커처를 활용해 작업하셨다고 하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시민분이 있으신지?
아이들이 다들 귀엽고 예뻤죠. 아이들에게 만세 하라 그러니까 표정이 만세가 뭔지 모르는데 손들고 하는 그런 모습이 귀여워서 기억에 남아요.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 분들은 첫날 오신 남녀 분이 계신데, 손잡고서 만세 하는 그런 게 처음이시라 그런지 그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그 두 분을 중앙 부분에 세웠어요.
▲남기영 작가의 '시민 캐리커처'
Q. 캐리커처를 보면 인물 특징을 굉장히 잘 잡아내시는데, 작가님 평소 그림체와 다른 것 같아요. 별도로 훈련하신 건가요?
학교 다닐 때 공주대 실기시험이 캐리커처였어요. 그걸 준비하면서 많이 그려보게 되고, 시일이 쌓이면서 실력이 늘게 된 거 같아요. 이상하게 유명한 분들을 많이 그리기도 했죠.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도 티셔츠를 만드는데 그림을 그려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직접적으로 연락이 온 건 아니고 우리 만화연대를 통해서 오긴 했는데 그런 기회를 통해서 유명인들을 많이 그리게 됐죠.
Q. 그렇다면 이번 벽화를 그리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제일 힘들었던 건 사실 시간적인 부분입니다. 제가 거의 22일 동안 하루 종일, 잠자는 시간 빼고 계속 그림만 그렸거든요. 2월 초에 작업을 시작해서 한 달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완성해야 돼서 그 부분이 좀 힘들었던 거 같아요.
Q. 반대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보람 있을 때라고 하면 독립운동가분들을 내 손으로 직접 그릴 때였어요. 유관순 열사 그릴 때도 그렇고, 하다 보니까 어차피 시작한 거 잘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일운동에 참여한다는 느낌으로 원래 이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사실 일반 시민을 그릴 때는 그런 생각이 많이 안 들었는데 독립운동가분들을 그리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이야기도 읽어보면서 계속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분들을 그릴 때는 '나도 여기에 동참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Q. 독립운동가 중 가장 존경하는 분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윤봉길 의사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유관순 열사님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왜 울컥했냐면 자료를 찾으며 이분들의 어록을 찾아봤는데 한 분 한 분이 철학자 같을 정도로 어록이 대단하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게 아니라, 그분들이 그 정도의 철학적인 깊이가 없다면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없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감명이 컸어요.
제가 결혼을 일찍 해서 애가 큰데, 유관순 열사가 우리 아이 또래에요. 그 나이에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한 거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했던 말씀이 ‘내가 목숨이 하나 더 없는 게 한이다, 하나 더 있으면 그것도 바칠 텐데’ 하는 말을 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으면서 좀 끓어올랐죠.
이번 벽화는 제 나름대로도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어요. 다른 작업은 시간과 액수를 생각하면서 하는데 이 작업은 그런 생각 없이 제 나름대로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남기영 작가의 '유관순 열사'
Q. 일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저는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에요. 그래서 신티크를 쓰는 것 자체도 기분이 안 좋아요. 대체할 수 있다면 일본 것을 안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뭐라고 말하고 싶냐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순수 악이다'라는 뉘앙스로 말하고 싶어요. 어느 나라건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무리 나쁜 짓이라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있잖아요. 우리나라를 위한 거니까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악한 것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거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그냥 악이다. 너희 이득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순수 악이라는 것을 인정해라. 근데 그것조차 하나도 인정을 안 하잖아요 얼마나 잘못했는지 모두가 알아야 하고 그걸 왜곡하는 게 악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Q. 이제 갓 역사를 배울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진실을 알고 싶다면 한 사람 얘기만 들어보면 안 된다. 예를 들면 피해자, 가해자가 있으면 최소한 둘의 이야기는 들어봐야 하는 거고 그다음에 제3자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자신의 판단력이 생길 수 있는 거잖아요.
역사라는 건 어떻게 보면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쓴 이야기를 가지고 받아들이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저는 그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제3자인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런 필터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조선에서 고려에 대해 쓴 것은 상당히 폄하하면서 안 좋게 쓰였잖아요. 그런 것들은 역사를 공부하는 자신이 고증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것을 일방적인 습득하는 것은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일본에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죠. 일본은 스스로 프레임을 먼저 짜놓고 그걸 주입하잖아요, 그렇게 하면 안 되고 객관적인 시각을 오픈하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각화된 관점으로 항상 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지 제대로 된 역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Q. 추가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다면?
100주년이라는 건 시기적으로 나름 의미가 있잖아요. 많은 분들이 제 그림을 좋아하시건 안 좋아하시건, 이 그림을 통해서 한 번이라도 태극기나 항일운동을 하신 분이나 만세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이 나라가 있기까지 그분들의 피와 헌신은 꼭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저 사람이 내 부모를 해쳤다 하면 그 복수심은 꼭 가져야 하는 것처럼 우리 선조가 우리를 위해 희생했다면 그 감사하는 마음은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정도만 해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