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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플라워 - 붉은 꽃이 내리는 도시

박성원 | 2016-08-3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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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좀 촌스러운 제목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티 오브 플라워’라니. 그나마 영어로 적어놓으면 모르겠는데, 이걸 한글로 표기해 놓으니 없어 보이잖아요. 하지만 작품을 모두 읽고 나니 과연 잘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1930년대의 시카고는, 적어도 이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있어서는 ‘꽃의 도시’였거든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꽃과는 많이 다른 종류입니다만.

 

국가에서 술을 법으로 금지하지만, 동시에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합법적으로 마약이 판매되고, 마약단속반 경찰들이 압수한 마약을 공공연하게 복용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과거를 들여다보는 후손들의 시선이 다 그렇겠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불의가 넘치는 시절이죠. 아마 실제 현실 속 1930년의 시카고도 비슷했겠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시티 오브 플라워’ 속 시카고에는 ‘천사증후군’이라는 기이한 병이 존재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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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클리블랜드에서 첫 발병 사례가 확인되었다는 이 병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아주 기이한 질병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깨뼈가 비정상적으로 확장되고 그 위에 피부 대신 하얀 깃털이 돋아나는 증상인데, 때문에 ‘천사증후군’이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날개 크기도 5-90cm나 되고요.

 

특별히 신체에 이상을 주지는 않지만, 단 한 가지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천사증후군’에 걸린 환자들의 피가 8ml 이상 체외로 배출, 공기와 노출되면 마치 붉은 꽃과 같은 형태로 응결되는데, 이렇게 굳어진 피의 꽃은 강력한 마약으로서 기능합니다. 문자 그대로 걸어 다니는 마약 제조기라고 할 수 있는데, 국가에서는 당연히 이들을 관리하려고 하지만 20세기의 행정 능력은 그리 믿을 만한 게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제도적 사각지대 역시 심각하고요. 결국 도시에는 자신의 피를 팔고 다니는 마약상, 피를 탐하고자 살인을 저지르는 마피아들이 판을 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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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위선자 목사에게 ‘사육’당하던 모리슨이 우연한 기회에 목사의 우리에서 해방되면서 시작됩니다. ‘윌터 헤일리’는 겉으로는 청면한 성직자의 표본과도 같은 인물이었지만, 정작 뒷구멍으로는 마약 중독자에 골초였고, 그것도 모자라서 안정적인 마약 공급을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모리슨을 납치해 골방에 가둬놓고 사육하며 끝없이 마약을 뽑아내던 악한입니다. 물론 그는 만화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잘 어울리는 병신 같은 죽음을 당해요.

 

목사의 죽음은 살인 사건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모습이었고 당연히 경찰들이 나서게 됩니다. 용의자는 물론 금방 좁혀지죠. 한편 다 자라서 청년이 된 육체와는 달리 정신은 미성숙한 모리슨은 밖을 헤매던 도중, 전직 형사이자 과거에 모리슨 가(家)와 인연으로 얽혀있는 ‘패트릭’을 만나게 됩니다. 목사의 어처구니없는 죽음과 세상으로 나온 모리슨, 그리고 모리슨을 마주한 패트릭에 의해 이 불온한 도시의 적나라한 민낯은 천천히 밝혀집니다. 추악하지만, 동시에 제3자의 입장에서는 시시한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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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늘어놓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분량이 많지 않아 보이는데, 그 안에 정말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정도로 밀도 있는 작품은 오랜만이에요. 반갑기도 하고요. 간단한 소개 정도는 했으니까, 그냥 읽어보시는 편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놀라운 흡입력과 재미를 자랑하니까, 꼭 한 번 시도해 보시길.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언급하고 싶어요. 앞서 언급한 인물들 외에도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감상에서 창작물의 인물을 칭찬할 때는 개성 있다, 독특하다, 이런 표현들을 즐겨 사용하는데, ‘시티 오브 플라워’에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은 개성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라는 맥락은 아니에요. 현실에 사는,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모두 아주 조금씩이라도 개성 있을 테니까.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지금보다 훨씬 불온한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시대적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순수한 피해자의 위치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모리슨을 제외하면 모두가 그렇죠. 아마 그렇기 때문에 ‘하얀 까마귀’를 찾으려던 노먼의 연구가 쉽게 끝나지 않았을 테고요.

 

하지만 이들이 단지 검정 일색의 까마귀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봐요. 노먼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을 추구했기 때문에 결국 원하는 결론을 얻지 못했죠. 그들은 부분적으로, 혹은 일시적으로 검은색이지만 동시에 또 부분적으로, 다른 시기에는 하얀색 깃털을 내보입니다. 물론 끝까지 기회가 없었거나 놓친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분명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온했던 과거를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보상했고, 제 생각에 까마귀들에게 바라는 건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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