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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같이 - 영원을 좇다 보면

경리단 | 2015-08-30 23:44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 상위(上位)의 사랑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부모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순수한, 비슷한 사랑은 여럿 있을지도 모른다. 연인에 대한, 형제자매에 대한, 그리고 자식에 대한 사랑까지. 그러나 그보다 ‘높은’ 사랑이라면? 단 한 가지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 것 이상의 은혜를 베푸는 것, 세상을 만들어낸 대상에 대한 사랑이다. 곧 신(神)을 향한 사랑이다.

 

‘새와 같이’에서 신은 ‘새’ 의 형상을 빌어 표현된다. 그녀는 오롯이 살아가며 그림을 그려 세상을 만들었지만, 외로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명들을 태어나게 했다. 새가 그려낸 세상에 그녀의 흔적은 매우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림을 사랑했던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인간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었는데, 이들은 도인이라 불리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기적을 행한다. 상처를 고치고, 공간을 이동하고, 세상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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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 여을, 나인, 구준, 그리고 ‘뱀’ 에 이르기까지 ‘새와 같이’ 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신, ‘새’를 사랑하고 그녀를 애타게 갈구하던 인물들이다.

 

주인공 이비는 갑작스럽게 여을의 일상에 끼어든다. 그녀는 건널 수 없는 강, 뱀의 강, 죽음의 강을 살아서 건넜다. 여을은 그런 이비를 거두고 삶을 제공한다. 아무것도 없었던 이비에게 행복했던 시간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나고 그녀는 도인들이 모여 있는 산으로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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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다소 모호하게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인물들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도 무엇하나 확실한 게 없이 흐릿하기만 하다. 수묵담채화로 그려낸 듯한 - 그리고 설정에 따르면 실제로 ‘새’ 의 그림인 - 세계는 따스해 보이지만 결코 친절하지만은 않다.

 

이비, 여을, 나인, 구준, 그리고 과거 속의 인물인 ‘낙연’ 까지 사람들의 격한 감정은 불친절한 이야기 속에서 처음에는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 자체가 순수한 재앙과 같은 ‘뱀’ 의 존재와 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그리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겪는 위기는 더욱 당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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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천천히 나아간다. 인물들의 감정은 폭포처럼 강렬하지만 감정이 촉발되는 사건은 그저 흐르는 물처럼 잔잔하다. 신의 붓 아래에서 탄생한, 그렇기에 붓을 들면 신에게 사랑받아 권능을 행사하는 세계는, 그녀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피조물들을 붙들고 있는 세계는 잘 어울리게도 지극히 운명론적이다.

 

마찬가지로 이비는 그리고 여을은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신의 흔적이 드리운 그림자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 비록 괴로워하지만 벗어나지는 못한다. 어쩌면 자신들이 벗어날 생각이 없는지도 모른다. 미래를 보는 나인이 지적했듯, 흐르는 강이 깊어지고 굽이치는 곳을 알아도 그 흐름을 바꿀 수는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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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론적인 종말을 차분히 맞이했을 때, 비로소 변화는 일어났다. 신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갈구하던 이들의 선택이 갈렸을 때 변화가 일어났다. 원인이 무엇이든 확고히 실존하는 신에 대한 사랑처럼 지고지순한 사랑도 영원할 수는 없다. 감정이 소모되어서, 신이 그들의 사랑을 몰라주어서, 신에게 사랑을 전할 방법이 없어서, 그런 건 상관이 없다. 영원할 수 없는 사랑에 집착하면 모두에게 운명적인 불행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그것을 포기했고, 누군가는 다른 이를 사랑하기로 했다. 새의 찌꺼기에서 태어난 소녀도 그제야 진정한 자신을 되찾는다.

 

흐릿한 그림 같은 배경과 낯선 세상, 그리고 별안간 몰아치는 감정의 격랑 속에서 처음 이 작품에 발을 들인 독자들은 어쩌면 당혹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중 인물들이 그랬듯 하나하나, 조용히 다가오는 사건들을 맞이하고 있으면 그리 어려운 내용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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