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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인가 <땅 보고 걷는 아이>

나예빈 | 2020-07-15 10:35
여러분들은 가정폭력을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과거에는 집안 문제라고 치부하고 아무도 도와주려고하지 않았던 일들이 수면 위로 많이 올라와 뉴스나 기사로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른도 이겨낼 수 없을 폭행들이 아이들에게 일어나 모두 놀라고 분노를 참지 못하죠. 하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가정폭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멀리 있는 일도 아닌, 바로 우리 옆에서 일어나는 일일인지도 모릅니다. 사회에서는 웃고 있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인다고 해서 아무런 일이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위력을 가하지 않아도 폭력이니까요. 때로는 몸을 다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치료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상처를 입고 있는 존재 자신도 자신이 다쳐가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스스로가 망가지게 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굴레를 멈추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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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환영받지 못한 아이로 설명한 '겨울'이는 어렸을 적부터 부부싸움을 목격하고 자라왔습니다. 엄마는 아빠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겨울이에게 말리라며 싸움에 아이를 끌어들이기까지 했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너무나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어른도 해결하지 못한 일을 아이한테 해결하라니. 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 일인가요. 당연히 엄마의 절규 섞인 부탁에도 겨울이는 도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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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는 당연히 하지 못할 일, 그리고 자신한테까지 밀려와서는 안 되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 죄책감이라는 것은 상당히 무서운 것이죠. 여러분은 주말 농장 같은 것을 운영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농장에서 가장 키우기 쉬운 것이 상추라고 합니다. 씨를 뿌리면 금세 자라난다고 해요. 이 죄책감은 상추보다 더 쉽게 그리고 빠르게 많이 자라납니다. 엄마가 겨울이에게 죄책감이라는 씨앗을 심으니 어린아이의 내면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로 엉키고 설킨 채로 자라난 죄책감들이 겨울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많아져 겨울이의 장점이나 꿈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죄책감이 속삭이는 것처럼 겨울이는 나쁜 아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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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땅 보고 걷는 아이>를 본다면 겨울이가 결코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늘 사과를 하게 되는 사람은 겨울입니다. 엄마는 겨울이에게 사과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빠와 엄마가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탓하게 되니 그사이에 끼인 겨울이가 양쪽의 원망을 다 듣고 마는것입니다. 날카로운 끝이 겨울이를 난도질하는 것이죠. 결국 겨울이는 죄인이 된 것처럼 빌 게 됩니다. 겨울이 자신도 모릅니다. 자신이 사과하고 빌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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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모른다는 것은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겨울이는 계속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거든요. 하지만 매번 헛수고로 돌아갑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이것저것 기억을 다 들쑤신 후에도 답을 찾을 수 없으니 이유는 겨울이 스스로에게 오게 됩니다. ‘아, 결국 모든 것들이 괜찮은데 나만 그러는 것이구나.’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하게 되니 남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없고, 힘든 티를 낼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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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사회에서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아가고, 위험이생기면 경찰을 찾는 것처럼….
하지만 가정폭력에 있어서는 모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 합니다. 너무나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명확히 누구가 가해자이며, 누가 피해자인지가 분간 가지 않습니다. 타고타고 올라가다 보면 수많은 사연이 나오니 사람들은 신경 쓰기를 원치 않아 합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부모님도 힘드실 거야.’ 이렇게 마법 주문을 걸면 아무것도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면서도 행복한 가정에 대한 열망은 강해서 가정사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또다시 겨울이를 불안에빠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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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는 계속해서 상처와 아픔을 숨깁니다. 자신 속 깊은 곳에 담아 넣어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가끔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 표현하기도 했지만, 죄책감이 배로 들어 해소는커녕 마음만 더 힘들어지는 결과와 마주하게 됩니다. 결국, 겨울이의 선택은 스스로가 감당하기. 혼자 아프고 말기 위해 애를 씁니다.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았던 어둠들은 겨울이안에 차곡차곡 쌓여서 악마를 만들어 내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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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가 친구라고 믿었던 아이들조차 겨울이를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친구들이 조금 사려 깊게 겨울이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면 좋았겠지만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애초에 겨울이가 겪는 일들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 가뜩이나 어린 친구들은 그 일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친구라고 생각해서 나름 노력하여 던지는 말은 ‘이해할 수 없음.’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겨울이에게 생채기를 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겨울이를 이해하는 것은 사회에서 ‘노는 아이’로 부르는 아이들입니다. 겨울이는 그 아이들이 너무나도 좋고, 같이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그 아이들을 집 없이 떠돌아다니며 나쁜 짓을 한다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정작 왜 떠돌아다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으면서요. 흑백으로 가득 찼던 겨울이의 삶에서 유일하게 알록달록한 색을 볼 수 있는 때는 ‘노는 아이’들과 함께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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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는 계속해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엉엉 울고, 화를 내며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하면서도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생이 되었으며 다행히도 대학교에 가서 원하던 미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일입니다. 누구든 시간이 흐르고 그에 따라 나이를 먹어가니까요. 하지만 겨울이는 이러한 과정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에게 당연한 일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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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겨울이에게 이 웹툰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혼자가 아니라고, 너희의 잘 못도 아니라고. 그리고 가벼운 말뿐이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마음 깊숙이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네이버 웹툰 <땅 보고 걷는 아이>에서 여러분도 힘을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