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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하게 전형적인 - [스포] 뱀피르

므르므즈 | 2016-08-02 13:54

 

 

                                 뱀피르_카인_12B_1.jpg

 

 

 

 

더 이상 ‘흉물스럽다’는 이미지는 흡혈귀를 대표하지 않는다. 관능적인 분위기를 더한 잘생긴 꽃미남 흡혈귀들이 창궐한 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 각양각색의 흡혈귀들이 개성을 뽐내며 자기 자리를 잡을 때 즈음, 잘생겼지만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지고

인간을 잡아먹는 흡혈귀 모임 말석에 조심스레 발을 올린 작품이 있으니 오늘 이야기할 [뱀피르] 되겠다.
 
노예가 된 주인공이 체제반란을 일으켜 자유와 평등을 성취하는 드라마는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환영받는다는 것의 전제는

혁명의 리더로 나선 주인공이 명석하고 논리적이어야 할 것, 혁명의 과정이 납득 가능하고 흡입력 있어야 할 것,

우연적인 이벤트에 전개의 실마리를 기대지 말 것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아쉽게도 [뱀피르]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런 전제를

모두 수행해내지는 못한 작품이다.

 

뱀파이어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주인공은 겁 없이 정의감 넘치는 성격 탓에

뱀파이어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때문에 성격 더러운 귀족에게 억지로 끌려가 죽을 위기에 처하는 데,

위기의 순간 우연히도 뱀파이어의 피를 몸에 받아들여 그들과 같이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귀족을 죽이고 탈출한다.

듣기만 해도 살 떨리는 건 물론이요 당장 다음 화를 위해 내 지갑을 열어도 모자람이 없을 초반 전개지만,

이 후부터 작품은 다소 아쉬운 행보를 걷기 시작한다. 


뱀파이어라는 지배계층에 대항하기 위해 주인공은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인간 출신임에도 뱀파이어 체제에 속해 고위직의 비서를 수행하는 자와 뜻이 맞아 뱀파이어를 쓰러뜨리고 인간의 세상을

만들 계획을 세우는데 계획의 초석부터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이 벌어진다.

인간 노예들에게 일일이 큰 소리로 ‘저 뱀파이어들 재수 없지 않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무려 [뱀피르]에서 두뇌파 캐릭터를 맡은 빨간 머리 비서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아이디어다.

“우리 우선 큰소리로 뱀파이어가 싫어요, 외치면서 이목을 끌도록 하죠! 그렇게 하면 들킬 일도 없이 대항할 사람들을 모을 수 있겠어요!” 말하자면,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


체제에 선택받은 탓에 순응하며 살지만 스스로 의문과 불만을 가졌고, 행동하려는 캐릭터는 응당 명석해야 한다.

주어진 환경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스스로 깨닫는 캐릭터는 적어도 그래야만 한다. 작품은 열심히 혁명의 참모 격이 된

빨간 머리 비서의 명석함이 빛을 발하는 쪽으로 에피소드를 만들었지만, 주효하지 않았다. 
주인공 역시 아쉽다. 내내 무작정 돌격하고 마구잡이로 뱀파이어를 죽이고 다닌 주인공에게서 어떤 카리스마나 리더십,

혹은 혁명의 명분을 찾기 어렵다. 설득력 없이, 자연스럽게 리더가 된 주인공의 모습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웠다.
 
'부자연스럽다'에 굳이 한 가지 요소를 더 얹자면 액션 신을 꼽겠다. 뱀파이어로 변신하여 싸운다는 비주얼, 설정 상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친 선을 살리는 작화 스타일이 장점을 퇴색시켰다. 주인공이 누군가를 찔렀는지 맞았는지,

어떤 능력을 가진 적과 싸우는 지 알아보기 어렵다. 의도한 것일 수도 있으나,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건 몇몇 컷에서

피가 많이 난다는 것과 지금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오랜 시간 수많은 문화콘텐츠의 소재로 쓰이며 검증된 ‘뱀파이어’를 작품 중앙에 끌어왔다면 서사나 연출,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결이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어야 할 부담까지 함께 끌어온 셈이다. 흔한 소재인 만큼 비슷해 보이는 작품이 부지기수다.

[뱀피르]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전형적이다 싶을 정도로 설정과 스토리의 탑을 쌓았지만, 세부적인 설득력이 부족했다.

선을 거칠게 쓰는 개성적인 작화는 대체로 아름답지만 액션 신에서는 완벽히 어울리지 않았다.

좋은 점보다 아쉬운 점이 더 많았던 시즌 1이었다. 시즌 2는 조금 더 좋은 작품이 되길 빌어본다.

이대로 흘려보내기는 아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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