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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가축이 된 세상, <도롱이>

김예인 | 2021-07-12 09:12
동양판타지 좋아하는 분들 계신가요? 저는 용, 사방신, 신선, 선녀 등, 이러한 소재들에 사족을 못 씁니다. 그 중에서도 이 웹툰은 용과 이무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용과 이무기는 사실 이미 많이 다뤄진 소재입니다. 인간들이 용을 숭배하여, 이무기를 승천시키려고 하죠? 여기서도 이무기를 용으로 승천시키려고는 하는데 조금 다릅니다. 인간들이 용의 존재를 한낱 신화로 치부하고, 용이 될 수 있는 이무기를 가축으로 취급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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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주인공 '삼복'의 집은 이무기를 전문으로 사육하고 도살하는 데에 앞장서는 집안입니다. 이무기 유통업을 대대로 이어온 그들은, 나라 하나에 버금가는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삼복의 집안은 배신자입니다. 먼 옛날, 신선들은 인간들을 보살필 용을 탄생시키고자 그들에게 이무기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삼복의 조상이 이무기를 잡아다가 팔기 시작하면서 이무기 도축이 일반화되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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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 도축을 태어날 때부터 질리도록 봐온 삼복은,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몰랐습니다. 마치 우리가 소나 닭, 돼지를 사육하고 도살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을 거예요. 그러나 어느날, 인간과 말이 통하는 자연산 이무기 '도롱이'를 마주하며 처음으로 죄의식이라는 기분을 느낍니다. 삼복은 도롱이를 반드시 용으로 승천시켜주겠다고 약속하고, 몇 천년의 세월 동안 답습해온 이무기 도살을 뿌리 뽑으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작품의 줄거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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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이>는 단순한 용 중심 동양판타지물이 아닙니다.
완벽한 허구의 판타지 세계관인데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현대의 동물권, 환경파괴와 같은 사회적 문제로 연결지어 생각하게 되거든요.

엄밀히 말해서 인간은 동물들을 아예 이용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고, 동물권을 어디까지 지켜야하는지에 대한 기준 또한 모호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도축업이 곧 가업이자 생계수단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기가 힘듭니다. 환경파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작중에서 삼복이의 집안은 대대로 이무기를 도살하여 용의 탄생을 막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비를 내려야하는 용의 오랜 부재는 곧 다른 지역의 가뭄을 일으켰죠. 삼복이는 사람들이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것이 자신들 때문이라며 오빠 삼오에게 바로잡아야한다고 말하지만, 삼오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무기를 잡는 것은 대대로 이어온 가업이기 때문에 이어온 것인데, 왜 하필 자신들의 세대에 와서야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만두어야하는지 묻죠. 저는 이것을 보며 지구온난화가 생각났어요. 우리가 아니라 우리 윗세대들부터 먼저 환경파괴에 가담해온 것인데, 왜 하필 우리 세대가 그 책임을 물어야하냐고 반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한순간에 쉽사리 멈출 수가 없죠. 작품 속 인물들 또한 그러한 모순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들은 지켜보는 독자들 또한 덩달아 생각이 많아지고, 자신의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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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명작은 선악 구분이 명백히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딱 이 작품입니다. 크게 보면 인간 대 이무기의 대립구도를 가졌으나, 작품을 더 파고들어가보면, 캐릭터들간의 가치관에도 다양한 대립구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을 지키는 법에 대한 삼복-삼오의 대립. 가족의 성립요건에 대한 난-결의 대립. 인간의 죄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대한 도롱-강철의 대립. 이것을 기반으로 한 사건과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며 조성되는 긴장감 속에서 독자들의 마음은 점점 복잡해집니다.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가치관들로 인해 작품이 한층 깊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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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신념대로 행동합니다. 하지만 그 신념의 기반에는 모두 자신만의 타당한 배경과 이유가 있어요. 삼복은 이무기 도살의 잘못됨을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의 가업이고 가족들의 생계수단이기에 저버리지는 못합니다. 도롱이는 보호하지만, 다른 이무기들은 계속해서 도축하며 손에 피를 묻힙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보고 위선이라고 비난할 수 있지만, 삼복이의 입장에서 그녀는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중에서 결코 그녀의 잘못을 합리화시키거나 미화시키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잘못한 점은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이 작품의 훌륭한 점 중 하나입니다.

입체적인 캐릭터들로 인해 독자들은 그들 모두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누구 하나 쉽게 비난하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되면서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지게 되죠.
'무엇이 옳은가? 내가 생계에 위협을 받더라도, 내 가족들이 불행해지더라도 선을 추구하는 것이 맞는가?'
분명 이무기들의 입장에서 먼저 악행을 저지른 것은 인간인데, 보면서 저도 모르게 인간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마다 저는 묘한 죄의식과 역겨움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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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웹툰의 제목이 <도롱이>인 이유는, 이무기 도롱이의 승천이 작품의 소재이기 때문도 있지만, 도롱이가 가진 '이상적인 가치관'이 이 작품을 꿰뚫는 주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롱이는 잘못을 저지른 인간들을 무작정 벌하고 복수하기보다는, 인간들의 마음 한켠에 존재하는 죄의식과 반성을 믿고 그들이 스스로 깨달아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작중에서도 누군가가 도롱이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도롱이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 그들이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여 더 나은 미래로 함께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 저도 도롱이처럼, 그런 올곧은 희망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오기를 꿈꿔봅니다.

이 작품은 반드시 시간을 들여 천천히 감상해보시기를 권합니다. 다 읽고 나면, 마음이 한층 무거워진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죄의식 때문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시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