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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넘은 우울한 공감 - [스포]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

므르므즈 | 2016-10-06 04:31


[웹툰 리뷰]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 - 박흥용


  


  청춘이 우울의 대명사가 된 시기가 언제쯤이었던가. 어느새 혈기 넘치는 소년의 모습보단 방구석에서 담배 피며 삶을 고찰하는 사색이 청춘의 단면이 되었다. 다른 일면을 둘러보자니 허세와 찌질함이 가득하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게 대중문화라지만, 해도 너무 우울하다. 이 일면을 직접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도 우울하다. 그러니 돌려서 이야기하자. 조금 옛날이야기다. <이방인> 처럼, 지금과는 다른 옛날이야기다. 과거는 외국일지라, 거기 사는 사람들 역시 지금 우리네 인생과는 다를 게 분명하다.



  지금처럼 sns가 활성화되지 않던 시절.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로 무전기로 대화하는 씨비어에 대해 알게 된다. 씨비어인 탱고의 도움으로 집에 무전기를 설치하고 여러 사람들과 무전으로 대화를 나누던 그는 언젠가부터 씨비어들의 무전 대화를 방해하는 방해 전파를 접하게 된다. 특정 시간에, 특정 전파를 내보내며 무전 송신을 막아버리는 그의 모습은 많은 씨비어들의 공분을 사게 되고, 주인공은 이 방해꾼을 '여우'라 부르며 여우사냥에 나선다.

  여우는 작품 내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키워드다. 시작부터 여우 고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서울로 꿈을 안고 떠난 이들을 빈털털이로 만드는 방해꾼을 변명삼아 여우라고 불렀다고. 상경하던 이들에게 환락가와 사기꾼이 여우였지만 만화 속 등장인물들에게 여우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전파를 방해하는 방해꾼 역시 여우라고 불린다. 대학에서 떨어지고 실연당한 뒤 삶이 허무해진 주인공이 매달린 무선을 방해하는 방해꾼의 모습은 정말이지 악독한 여우나 다름없다.



  여우는 여러 모습으로 변모해 등장인물들 앞에 선다. 작가 후기를 인용하자면 '빠삐용이나 맥가이버에겐 경제 행위를 위협하는 요소가, 거북이는 어려운 가족사가, 탱고투에겐 삶을 뒤흔드는 장애가' 여우인 셈이다. 전파 방해꾼만을 여우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 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여우를 찾아내는 과정은 주인공이 자신의 여우가 무엇인지 자각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주인공은 자신을 괴롭히던 '여우'가 자신의 현실 그 차제라는 것을 깨닫고 도망치고 만다.

  자신의 현실을 피해오던 젊은이가 성장하는 과정. 작품은 여우를 찾는 주인공들의 여정을 통해 이걸 비춰준다. 반영된 복잡하고 어두운 시대상과 더불어 점차 자신의 위치와 현실을 자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칙칙한 작품의 색에 무거움을 더한다. 씨비어들이 대화하는 무선 통신의 공간은 중요하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공간이기도 하다. 요즘 시대로 말하자면 트위터 페이스북 등등의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매달릴수록 옆에 있는 또 다른 여우를 잊을 수 있기에, 등장인물들은 통신에 매달린다. 전파 방해꾼과 사냥꾼들의 대치는 이런 정신적 도피를 방해하는 이에 대한 분노다. 여기에 여우가 있다. 우리를 방해하는 여우가 여기도 있다.



  어두운 이야기다. 사색적인 대화가 오고가며 칙칙한 색채로 칠해진 배경과 건조한 연출은 출판 만화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이건 옛날이야기다. 그렇지 않던가. 요즘 우리네는 다르지 않던가. 마치 <이방인>의 첫 구절처럼 말이다. 과거는 외국이요, 그곳에선 사람들이 다르게 산다. 아마 그럴 것이다. 우린 지금 조금 더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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