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컬쳐로 점칠된 청춘 - 우리들은 푸르다
패러디에 지분을 의존하는 작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가 떨어진다. 특히 서브컬쳐 패러디를 자주 쓰는 작품은 떨어지는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다. 작년에 봤던 이 작품을 올해 다시 봤더니 옛날만 못하더라, 라고 느낀다면 이는 당신이 익숙해져서 그런 게 아니다. 유행이 지났기 때문이다. <진격의 거인>을 패러디한다면 이젠 철 지나다 못해 거부감이 드는 실정이다. 애니메이션은 유행에 민감하다. 어쩌면 작품의 주된 패러디로 이런 서브컬쳐를 넣은 건 실수가 아니었을까.
평범한 학교 일상을 그린다고 공언한 <우리들은 푸르다>는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캐릭터성을 동반한 서브컬쳐 개그가 주된 소재다. 학교에서 캐릭터들이 벌이는 비상식적인 일들을 기본 베이스로 깔아놓고 그 위에 패러디를 얹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에피소드들은 독특한 소재들이 꽤 많은데, 예컨대 매점에서 비밀리에 파는 비밀 조합 음료수를 두고 벌이는 쟁탈전이나 주인공이 개 분장을 하고 애견 프리스비 대회에 나가는 이야기, 주리를 틀다 보니 너무 강해진 친구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한 이야기 등이 있다. 독특한 소재에 패러디 개그를 얹으면서 작품은 자기 개성을 충실히 뽐낸다. 균형 맞게 특정 계층에게 잘 어필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작품은 패러디 개그 부분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순수한 캐릭터성으로 밀어붙여도 될 만한 부분에서도 작품은 굳이 패러디를 끼워 넣는다. 그리고 패러디는 노골적이고, 재미없다. 예컨대 등장인물 중 하나가 매우 화가 난 상태에서 다른 학생들을 선동하는 장면이 있다고 치자. 작품은 이 장면을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베인으로 패러디한다. 캐릭터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며, 비슷한 구도도 아님에도 이런 종류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려 한다.
작품의 패러디는 서브컬쳐에 한정되지 않는다. 온갖 종류의 사회 부조리와 정치적인 문제를 한마디씩 언급하고 지나간다. 국회의원들은 돈만 받고 놀기만 하는 존재지!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 대사는 개그 프로에서 박수 유도를 위해 한마디씩 던지는 추임새 역할을 한다. 특정 대상에 대한 어떤 명확한 비판점을 제시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공감대만 세우는 것이다. "이건 나빠!" "그렇지요 그건 나쁜 것 같아요. 당신은 어떤 점이 나쁘다고 생각해요?" 작품은 말한다. "철수는 다시 길을 걸었다."
대중매체가 어떤 사안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싶다면 근거나 비판점이 명확해야 한다. 단순히 나쁘다! 고 외치는 건 위험하다. 어떤 점이 어떻게 나쁜지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논문에 근거한 장문의 설명을 쓸 필요는 없다. 자신이 비판하고자 하는 점이 확실히 잘못된 것이란 것만 보여주면 된다. 한마디 지나가듯 던지는 것은 선동가의 방식이다. 우리는 지금 작품을 보고 있지 않은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자신이 있다면 그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 달라. 그럴듯한 한마디를 오늘의 명언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
<우리들은 푸르다>는 특정 계층에게 잘 먹히는 마이너한 개그 코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적절한 패러디와 캐릭터성의 조합으로 폭넓은 독자층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균형이 무너지며 재미도 같이 떨어뜨리고 말았다. 작가는 이 균형의 문제라는 숙제를 어떻게 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