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지구 전세냈냐(2013)
* 지구 전세냈냐(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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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강산 작가가 다음 만화속 세상에서 연재를 시작해 1부 전 20화. 2부 전 20화로 프롤로그/에필로그 포함해 총 42화로 완결된 코믹 SF 만화.
내용은 지구에서 인간으로 모습을 위장해 살아가는 1세대 외계인과 그들의 자손으로 본인이 외계인인 줄도 모르고 인간으로 살던 2세대 외계인이 지구의 공기 중에 살포한 유전자 억제 물질 ‘홀더’의 도움을 받아 본 모습을 숨긴 채 잘 살던 중, 홀더를 만들던 회사가 부도가 나 자원이 동이 나는 바람에 숨겨져 있던 모습이 드러나 외계인들이 하나 둘 씩 자기 정체를 밝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2011년에 강산 작가가 그린 ‘마지막 5일’ 이후로 다시 코믹 외계인 SF 만화다. 여전히 캐리커처 느낌이 나는 작화지만 작화의 밀도 자체는 마지막 5일 때보다 더 높아졌다.
마지막 5일 때는 얼굴은 캐리처커 같은데 몸은 8등신이라 캐리커처와 실사체 사이에 고민하는 것 같아 뭔가 어색한 느낌을 준 반면, 본작은 아예 캐리커처 쪽으로 방향을 확실히 잡고 깊이 파고 든 느낌을 준다. 그래서 대중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개성적인 작화가 돋보인다.
연재분에 나온 컷 중 일부는 애니메이션 효과를 집어넣어 조금씩 움직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마지막 5일처럼 학교가 주요 무대로 메인 인물들이 전부 학생이다 보니 일진과 빵셔틀 등 학교 폭력 구도는 어김없이 나온다. 빵셔틀 문제뿐만이 아니라 외모지상주의나 획일화와 다양성의 논쟁 등 사회비판 메시지를 던지는 씬이 몇 개 나오긴 하지만 항상 끝에 가서 개그로 마무리하기 때문에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머러스하게 잘 풀어냈다.
외계인이 인간 사회에 정체를 숨기고 살다가 커밍아웃한 세계관인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외계인에 대한 큰 편견이나 차별을 하지는 않는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바보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
장난이 심한 주인공 동수, 팬더로 변하며 쾌변 능력을 가진 오태호. 벌렁 까진 이마에서 빛이 나는 능력을 가진 박호창. 치와와 외계인 희백, 놀라면 렛서 팬더로 변하는 김본자, 슬램덩크 안선생님 닮은 안세현, 돈까스 매니아 고만식, 40살 먹은 1세대 외계인 고딩 조온만, 똥머리 추녀 히로인인 경화, 고릴라 외계인 등등 인간, 외계인 할 것 없이 전부 다 바보에 괴짜들이다.
캐릭터 진용이 바보 대행진이고, 스토리도 바보들이 활약할 판도 미리 짜 놓았기에 어떤 개그가 나오든 간에 이 작품의 스타일이라고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됐다. (아, 이 만화 본래 이렇지. 라는 납득)
1부가 외계인과 인간 괴짜들이 번갈아 나오며 개그 치는 옴니버스툰이었다면, 2부는 주인공 동수을 둘러 싼 조마난 로마, 베레모 행성, 제 5교구의 대립과 갈등을 다룬 스토리툰으로 변모한다.
장르 이탈 현상이 발생해 갑작스럽게 변한 건 아니다. 1부 때부터 던져 둔 떡밥을 2부 처음부터 착실히 회수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뀐 변화다.
2부 초반부는 병맛 개그물 분위기를 유지하고 경화의 추녀 개그가 웃음을 하드캐리하는데, 2부 중반부부터 선우가 마각을 드러내면서 분위기가 꽤 심각해지지만 그래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한국 개그 만화는 처음에 개그 잘 치다가 갑자기 내용이 심각해져 진지병에 시달리다가 폭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부분의 조율을 매우 잘했다.
동수와 경화의 로맨스, 조온만의 아버지 조마난 로마와의 갈등, 악역인 선우의 고민 등등 3개 세력의 주요 인물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캐릭터 묘사의 밀도도 높아졌다.
대주교의 음모가 드러나면서 지구에 사는 외계인과 지구 자체가 멸망의 위기에 봉착한 클라이막스 부분도 하이 텐션으로 진행되는데 본작의 타이틀인 ‘지구 전세냈냐’는 대사가 하이라이트를 장식해서 강렬한 인상을 준다. (지구의 운명을 결정지을 투표란 점에 있어 작가의 이전 작인 마지막 5일을 떠올리게 한다)
1부당 20화로 연재 분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최소한 급마무리로 끝난 건 아니다. 작중에 던진 떡밥은 하나도 빠짐없이 회수했고 모든 갈등이 다 해결됐기 때문이다.
다만, 작중 인물의 후일담과 작가 후기가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 정도는 남는다.
결론은 추천작. 캐리커쳐에 특화된 개성적인 작화가 돋보이고, 스토리 초반부 때는 바보 캐릭터들이 활약할 분위기를 조성해 놔서 어떤 개그를 해서 부담 없이 볼 수 있으며, 스토리 후반부에 가서는 개그와 진지함의 조율을 잘해 스토리 강화에 성공했고 이야기의 결말도 깔끔하게 잘 끝낸 작품이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마지막 5일 때보다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