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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정원 - 우리가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에 관하여

위성 | 2015-09-03 23:28

 

 

 

처음에는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왜 제목이 눈 먼 정원일까 하는 점이 궁금한 정도. 쉬이 읽히지도 않았다. 뭔가 어렵고 진부한 느낌. 게다가 이야기의 배경년도가 왔다 갔다 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 시대물을 좋아하지 않기도 해서 그림체나 분위기 자체에서 독자인 내가 겉도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국인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니 내 취향과는 아주, 아주 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선입견으로 ‘눈 먼 정원’을 보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을까. 물론 내 인생에 별 다른 일이야 없었겠지만 정말 훌륭한 음악가의 앨범 한 장을 모르고 사는 만큼, 숨겨진 명화 한 편을 놓치고 사는 것만큼 내 인생이 지루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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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한 마을에 격추된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군인 한 명이 구조된다. 마을 주민이 돌봐주는 집에서 한참동안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그는 사고로 기억을 잃어 이름도, 고향도,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그 남자를 토미(영국 군인을 칭하는 말)라 부르며 돌봐 주는데....... 기억을 잃어버린 채 그곳에 머무르게 된 토미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카메오 속의 그 여인은 누구를 떠올리는 것일까. 도입부의 마가렛과는 어떻게 얽힌 인연일까. 도대체 어떤 과거 속에 살아 왔기에 여러 나라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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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웹툰이라기보다는 소설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데, 그만큼 서사와 묘사가 치밀하고 배경에 대한 조사가 탄탄하다. 작가가 얼마나 애써 준비한 작품인지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 그러다 기억의 파편이 한 조각씩 되살아나면서 토미의 과거가 중간 중간 개입한다. 그 때문에 나처럼 집중력이 약한 독자들은 비선형적인 스토리 진행이 조금은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또한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씩 모이기 위한 작가의 의도이니, 모든 조각의 끝에 어떤 그림이 나오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눈 먼 정원은 요즘 트렌드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사한다. 그림 또한 서정적이면서 덤덤한 느낌. 제목 또한 시적이다. 자극적이고 톡톡 튀는 맛은 없지만, 분명히 그만의 깊은 맛이 존재한다.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재료를 오랫동안 우려내야 하지 않나. 3분짜리 인스턴트와는 격이 다른 그런 맛 말이다. 그러니 진득하지 못한 요즘 독자들로서는 참을성을 필요로 하겠지만 한 번 몰입하게 되면 누구나 그들의 러브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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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소설을 좋아한다고 믿었는데, 그래서 나는 요즘 사람들에 비해 조금은 느린 속도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싶다. 나 역시 자극적이고 빠른 이야기들에 이미 익숙해져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처음에는 무언가 불편하고, 장을 넘기는 손이 더디고, 눈에 쉽게 읽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렉 걸린 프로그램마냥 버벅거리며 몇 화를 읽다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아 며칠 뒤 다시 처음부터 정주행을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보았을 때의 느낌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각자의 삶을 알게 되니 초반에 나쁘게 보였던 것들이 새롭게 보였고, 어린 시절 너무 많은 일들을 감당하면서 한꺼번에 어른이 되었어야 했던 그가 안쓰러웠다. 정작 어른이 된 그는 체격만 커버렸지 속은 제대로 여물지 못한 채 가을을 맞이한 어린 사과 같아 슬펐고.

 

 눈 먼 정원은 어쩌면 마가렛이 돌보는 정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꾸면 아름다워질 안뜰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잡초로 무성한 풀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각자의 삶은 아닐까. 눈 앞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당신과 나의 삶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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