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맛과 착각의 그 절묘함 - 첩보의 별
병맛은 마약과 같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어떠한 다짐도 없이 순간순간의 자극적인 쾌락에 집중한다. 이 때문에 병맛에는 약속된 미래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개연성을 신경쓰며 보는 사람들에게 병맛은 전혀 좋은 친구가 아니다. 내가 헬멧을 거꾸로 쓴 이야기를 하다가 단순히 재밌을 것 같단 이유로 거기서 도레미 송을 불렀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를 꺼내든다면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적응은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재밌을 것 같아서 넣은 개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흐린다면 그건 본말 전도다.
병맛이 유쾌해질 때는 실 스토리와 연관성이 전무하거나 스토리 라인 전체가 병맛으로 채워질 때뿐이다. 어중간하게 넣어선 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만화는 생각하고 보면 손해라고 대차게 경고해야 한다. <첩보의 별>은 이 룰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비밀요원이 헬리콥터 소리를 입으로 내면서 날아오고, 비밀 스파이란 사실이 세계에 퍼져 있고, CIA 인물들은 하나같이 나사 빠져 있다. 여기에 누가 감히 이 만화가 이상하다고 태클을 걸 수 있으랴. 작품은 철저하게 개그 노선으로 가면서 진지한 사람들을 패퇴시킨다.
이건 상당히 어려운 방식의 개그다. 조금만 엇나가도 작품의 전개도 재미도 모조리 잃어버린다. 태클을 걸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 모든 게 헛소리라는 걸 인지하게 만들어줄 캐릭터가 없으면 작품은 언젠가 과해진다. 하지만 <첩보의 별>은 그동안 쌓아온 내공으로 이 어려운 작업을 멋지게 해내 보였다. 특히 허언증 캐릭터인 ‘설전설’의 등장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대놓고 허언과 허세로 무장한 캐릭터기 때문이다. 이 캐릭터 덕분에 작품은 태클 없이도 헛소리를 자연스럽게 헛소리라 인지하게 만들 수 있었다. 나사 빠진 캐릭터들과 한층 더 맛이 간 허언증 캐릭터의 조합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개그 만화라 할 수 있었다.
패러디가 없다는 것에도 크게 호평하고 싶다. 다른 작품의 아이디어가 아닌 순수한 자기 색으로 독자를 웃기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다른 개그 만화들도 참고해야 할 특색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색의 개그를 자기 방식의 스타일로 굳건하게 연재해 나갔다. 그러면서 스토리 노선도 나름대로 분명하게 잡고 있다. 개그 만화의 단점이라 볼 수 있는 망가진 스토리와 계산된 오류를 이 작품에서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전개의 진실성 앞에서 작품은 굳건히 선 채 우리에게 말한다. 재밌으면 그런 건 상관없어진다고.
작품은 충실하면서도 여러모로 어긋‘낸’ 전개를 보여준다. 사이사이 등장하는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요소들은, 어느새 작품 속 세계관을 지탱하는 개그 요소가 되어, 도리어 독자들을 설득한다. 생각하지 말라고. 설득당한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분명 재밌는 작품일 것이다. 아주 훌륭하다고 극찬을 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설득 당한 듯하다. 훌륭한 개그 만화에 박수갈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