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코믹스] 그런 만화가가 있었다 (2014)
* 그런 만화가가 있었다 (2014) *
http://www.lezhin.com/comic/cartoonisdead
2014년에 떱 작가가 레진 코믹스에서 연재를 시작해 전 57화로 완결한 미스테리 스릴러 만화.
내용은 살인, 마약 등의 강력 범죄가 발발하고 그로 인한 경제 대공항에 폭동, 기근까지 생겨 어둠에 휩싸인 도시에서 그 모든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인물로 지목되어 재판에 넘겨진 게 한 만화가로, 그가 사형당한 뒤 만화책이 금기시되어 대부분 불에 태워져 후대에 이르러 실존했다는 것조차 잊혀 질 무렵.. 젊은 경관 서머셋이 만화가와 만화책에 얽힌 사람들이 연쇄 살인 당하는 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런 만화가가 있었다’라는 타이틀이 꽤 의미심장하게 들리는데 실제 본편 내용도 만화가, 만화책이 중요한 키워드로 존재한다.
만화책이 금기시되었다고는 해도 무대 자체는 현대라서 배경이 새롭게 다가오는 건 아니지만, 모든 사건의 원흉이자 동시에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게 만화책의 존재고 거기서 미스테리가 시작되는 전개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알렉산드로의 도서관과 관련된 과거의 인물들이 하나 둘씩 죽음을 맞이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사건의 흑막으로서 양극단에 서 있다. 현실에서 진작 사망해 퇴장한 사람조차 과거의 일이 밝혀지는 과정에 현실에 살아남아 흑막이 된 사람들과 얽혀있다.
사건의 흑막이 하나가 아닌 둘. 그래서 두 세력의 대립과 갈등이 본편의 핵심적인 내용이 된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과거 회상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전 57화 분량에서 24화부터 시작해 42화까지. 무려 18화 분량을 과거 회상에 할애하고 있다.
현실에서 주인공이 미스테리를 풀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하기도 전에 주요 인물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로 사건의 발단과 인물의 동기가 다 밝혀진다. 찰스의 만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만 안 나온다.
그 때문에 본편의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운 것과 또 별개로 스토리의 구성상 너무 많은 것을 회상씬에서 밝히는 바람에 현실에서 주인공이 할 일이 거의 없어진다.
과거 회상에서 현실로 넘어와 스토리가 이어져 최종화에 이르는 분량은 달랑 15화에 불과하다. 그 안에 과거에서 풀지 못해 현실로 넘어 온 갈등을 해결해야 하니, 회상이 끝나기 무섭게 리처드 국장/헤븐즈(얌살자) VS 포우/집행자의 양대 세력 구도로 최종 결전을 향해 나아간다.
리헤이 VS 집행자, 리헤이 VS 리안홍 등 초반에도 전투가 나와서 액션물로서의 떡밥을 미리 던져 놓았기에 장르 이탈 현상이 발생한 것 까지는 아니지만.. 싸움을 전혀 못하던 주인공이 외팔이 신세까지 됐는데 갑자기 독비도왕이 된 것 마냥 한 손으로 암살자를 상대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걸 보면 장르가 갑자기 본격 액션 판타지로 변해서 좀 당황스럽다. (작중 주인공이 1년 동안 수련을 했다고는 하는데, 43화에서 44화. 단 1화만에 1년이란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 시간 경과 과정이 전혀 나오지 않고 나중에 대사로만 ‘1년이 지났어’라고 언급돼서 생뚱맞았다)
근데 이 작품이 집행자 VS 헤븐즈 대결 구도 때문에 액션의 비중이 큰 것에 비해 액션의 밀도가 낮아서 액션씬 자체가 상당히 짧은 관계로 모처럼 외팔이 도왕으로 각성한 서머셋이 제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이야기가 끝을 향해 나아간다.
찰스의 만화에 대한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최종보스인 리처드 국장이 서머셋을 잔챙이 취급하면서 자신의 동기를 술술 털어 놓으며, 결국 최종 보스 킬도 서머셋이 찍은 게 아니라 포우가 찍고 슈퍼 로봇물로 귀결시켰기 때문에 주인공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마저 생긴다.
아예 대놓고 서머셋이 처음부터 한 일이 없고, 할 일도 없다라는 대사가 나오며, 후일담에서 서머셋 본인도 그걸 인정하지만 거기에 대체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사만다, 그레이스, 존, 비비안, 리헤이 등 다른 등장인물도 별 다른 활약을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애네들이 하는 일은 그냥 도망치는 것, 과거 회상 듣는 것. 현실에서 마무리되는 상황 보고 받는 게 전부다. 최종 보스와의 대담도 서머셋 혼자 하는 거고 다른 애들은 전부 따로 떨어져 있어 스토리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으니 머릿수만 많지 캐릭터 운용에는 실패했다.
유일하게 밥값을 하는 건 레귤러 멤버도 아닌 FBI 그렉 하나 뿐이다.
거기다 찰스의 만화 내용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아서 가장 중요한 떡밥이 회수되지 않았으니, 이 작품 테마가 뭔지, 뭘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타이틀인 ‘그런 만화가가 있었다’는 사실상 과거 회상이 끝나는 42화까지만 해당되고, 43화부터 최종화까지는 만화가. 만화책 키워드가 완전 사라지니 흥미로운 소재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작화는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 인물 그림은 한국 웹툰 그림체인데 컬러가 어둡고 진한 색감에 명암대비가 강해서 하드보일드 장르의 미국 만화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작중 인물이 밝은 곳에 서 있을 때 구도에 따라 몸에 베인 그림자가 컷 바깥의 검은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그린 게 기억에 남는다.
작화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 건 액션 연출의 부재다. 액션 씬에서 움직이는 순간의 컷을 흐릿하게 그려서 내용 전달이 잘 안 된다.
나름대로 역동적인 액션을 노린 것 같지만 결과물은 의도한 것과 반대로 경직되어 있다. 비디오 되감기를 하다가 일시정지를 누른 것과 같은 느낌이다. 노이즈가 생긴 상태에서 멈춘 거다.
액션씬의 의성어 같은 경우도 그냥 일반 대사 쓸 때의 글자 폰트 크기만 키워서 박아 넣었고, 액션씬의 대사가 들어간 말풍선도 일반 대화의 것과 같아서 박력이 없다.
결론은 평작. 한국 웹툰 그림체를 미국 하드보일드 만화 느낌 나게 분위기 잡고 컬러를 입힌 게 개성적이고, 만화가 금기가 된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소재가 흥미롭지만.. 미스테리 스릴러로 시작해 액션 히어로물로 바뀌었다가 슈퍼 로봇물로 마무리 되어 장르 이탈 현상이 심하고, 지나친 과거 회상 의존에 의한 미스테리 셀프 스포일러와 현실의 소드마스터 야마토급 전개, 주인공을 포함해 주조연을 막론한 캐릭터 운용에 실패, 끝까지 회수되지 못한 떡밥(금기가 된 만화 내용)이 남아 있는 것 등등 스토리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떨어지고 액션 연출력이 바닥을 기기 때문에 개성적인 작화가 빛을 발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