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코] 록시티 블루서 (2016)
* 록시티 블루스(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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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최미르 작가가 코미코에서 연재를 시작해 2016년 4월 기준으로 11화까지 올라온 액션 만화.
내용은 불의가 판치는 가상의 도시 록시티에서 특수 경찰 7부 소속 반 덴 록크와 도시 내에 은밀하게 퍼져 있는 무림의 3년차 무림인 라방 드 와레가 콤비를 이루어 활극을 펼치는 이야기다.
최미르 작가는 1992년에 보물섬에서 ‘네오 에일리언 2009’로 데뷔하여 소년 챔프 시절에 ‘나이스 콤비’로 시작해 ‘테러 시티’, ‘강호패도기’, ‘검빵맨’ 등으로 잘 알려진 기성 베테랑 작가다.
본작은 최미르 작가의 웹툰 데뷔작으로 2008년에 강호패도기 완결 이후 8년만에 돌아온 것이다.
경찰/형사 콤비, 버디물, 검, 총, 무림 등등 최미르 작가가 그동안 그려 온 작품들에 나온 태그를 하나로 모은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게 단순히 짜깁기를 한 것이 아니라 완전 새로운 느낌으로 재구성했다.
본작의 배경인 록시티는 경찰이 마피아랑 결탁한 부정부패한 도시로 미국을 배경으로 한 범죄 느와르 느낌을 물씬 풍기는데, 여기에 무림 설정을 집어넣어 무협 느와르를 만들었다.
홍콩 느와르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우삼 감독의 1991년작 영웅본색에서 소마/마크 배역을 맡은 주윤발이‘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구나!’라는 대사를 치는데, 본작은 느와르 안에 진짜 강호무림을 넣은 거다.
느와르(무협)이 아니라 느와르=무협인 것이다. 그래서 흔한 것 같으면서 흔치 않은 유니크함이 있다.
먹는 걸로 비유하자면, 느와르와 무협을 각각 따로 먹으면 언제나 먹던 그 맛이지만 두 개를 동시에 먹으니 입안에서 개성 있는 맛이 톡톡 터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브래드 버드 감독의 2007년작 라따뚜이에서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쥐 레미가 치즈와 딸기를 동시에 베어 물고 느끼는 맛의 신세계랄까.
느와르의 세계에서 행해지는 정의구현을 무협물의 의(義)와 협(俠)으로 풀어내 두 장르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밑바탕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나쁜 놈이 가득한 범죄 도시에서 좋은 놈이 되기 위해 정의를 위해 투신하는 완고한 경찰 반 덴 록크, 빨래방을 운영하는 가난한 약소 문파에 속해 있지만 무림지존을 꿈꾸며 강자가 되고 싶어 하는 라방 드 와레가 투 탑 주인공으로서 각각 느와르, 무협 파트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며 해당 장르의 밀도를 높인다.
지금 현재까지 올라온 연재분에서는 반 덴 록크와 라방 드 와레의 첫만남 이후로,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게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서로 접점이 생기면서 느와르와 무협이 교차한 순간. 퓨전 장르로서의 포텐셜이 터질 것 같다.
작화는 훌륭하다.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기성 작가로서 쌓아온 내공이 있어 기본기가 탄탄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캐릭터, 배경, 연출, 컬러 등 작화 전반의 퀼리티가 높고 또 특색까지 있다.
캐릭터 얼굴은 만화체인데 액션 연출은 극화 중의 극화라서 역동적이고 박력이 넘친다. 특히 공격이 명중한 피격씬과 상대가 쳐 날려지는 씬, 일대다수의 싸움에서 한 컷 단위로 끊어서 넣는 일섬(一閃) 연출이 멋지다.
캐릭터 구도와 시점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예를 들어 캐릭터가 허공에 떠 있을 때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가 나온다거나, 두 주인공이 전철 안에서 무림의 암살자와 마주하고 있는 씬에서 등지고 서 있는 전철문 안쪽에 모여 있는 승객들의 시선이 창문 너머로 향해 있는 것 등등 구도와 시점이 다양하고 디테일해서 입체적이다.
컬러는 노을빛을 기본 컬러로 깔아 놓고 80~90년대 비디오 같은 느낌을 구현해 투박하고 거칠지만 아날로그 시대의 운치가 살아 있다.
작중에 휴대폰으로 트위터를 하는 걸 보면 문명 티어는 현대인 21세기인데 분위기는 20세기인 거다.
요즘 세대에게는 좀 낯선 느낌이겠지만 7080 세대에게는 오히려 친숙하게 다가올 것 같다.
그 때문에 누군가는 아재스럽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또 어떤가. 그러한 느낌을 심화시켜 아재 독자들을 열광시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단순히 야하고 폭력적이라서 성인 등급을 받은 성인 만화가 아니라, 잡지 만화를 보고 자란 7080 세대를 타겟팅으로 하여 어른을 대상으로 한 만화란 표어에 걸맞는 작품이다.
동시대에 활동하던 기성 베테랑 작가들의 상당수가 현재 19금 성인 만화를 연재하면서 시류에 편승하여 에로의 바다 속에 가라앉아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을 잃어버린 반면, 최미르 작가의 이번 신작은 그 바다 위에서 홀로 돛단배를 타고 비주류의 풍랑에 맞서면서도 자신이 그동안 그려 온 작품의 정수를 모아서 만든 원석(原石)을 새로운 시대에도 결코 뒤처지지 않은 비주얼을 통해서 노을빛 보석으로 재련해 내 그 어떤 고결함마저 갖췄다.
결론은 추천작. 무협과 느와르를 적절하게 믹스하여 무협 느와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해 독특한 맛이 있고, 아날로그 감성이 충만한 분위기로 7080 세대의 독자들을 끌어당기며 8년이란 공백 기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작화 전반의 퀼리티가 높아서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미스터 부로 잘 알려진 전상영 작가의 다음 웹툰 N.R 시리즈, 박민서 작가의 웨스턴 샷건도 그렇지만, 90년대 만화계를 이끌어간 70년대 태생의 베테랑 만화가들의 로망 중 하나가 락 스피릿이 깔린 배경에 검과 총이 맞부딪치며 포연탄우 속에서 피어나는 의협물 같다.
외국 영화로 치면 랜스 문기아 감독의 1998년작 ‘6현의 사무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