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 - 한숨처럼 뱉어내는 한자락의 숨
우울증에 걸린 엄마와 웃픈 여자 경복이의 웃고 웃는 하루를 그린 웹툰, 숨비소리. 이쯤해서 드는 생각 하나. 숨비소리란 뭘까.
숨비소리란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물 밖으로 올라와 가쁘게 내는 숨소리다. 깊고 깊은 물속에 들어가 먹고 살기 위해 파는 생물들을 잡아다가 다시 살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와 뿜어 내는 숨 말이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제목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서글픈 느낌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서글픈 느낌을 프롤로그에서 더욱 극대화 시킨 뒤 이야기를 시작한다.
- 꿈속에서 엄마는 해녀다. 나는 엄마를 따라간다.
엄마가 숨 쉴 때를 놓쳐 영영 물 속에 가라앉을 것만 같다.
나도 같이 숨을 참았다가 엄마가 올라오면 숨을 쉬었다.
우리는 숨 쉬는 것조차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가끔 웃어야 할이지 울어야 할이지 모를 때가 있다. -
심지어 본명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엄마의 이름은 수심이다. 어쩐지 우리가 자주 쓰는 ‘얼굴에 수심이 깊다.’라고 할 때의 그 수심인 것만 같은 느낌. 엄마는 마음의 심해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숨비 소리 한 번 뿜어내지 않는 고독 속에 갇혀 버렸다는 의미인 것일까.
이 웹툰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일종의 다이어리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가출에 자살소동까지 벌인 엄마와 함께 살며, 하루하루를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딸 경복은 그런 집안 환경에도 불구하고 웃는다. 분명 웃지라도 않으면 엄마가 빠져 버린 그 마음속의 바다에 자신도 빠져들 것만 같기 때문인 걸까. 경복의 숨비 소리는 겨우 겨우 웃는 한 자락의 웃음이다.
경복의 모습에서 어딘가 나의 이십 대, 삼십 대 사이의 얼굴들이 보였다. 우울했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우울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웠던 나의 십대. 그 시절에도 나의 얼굴은 가면이나 다름 없었다. 속으로 곪아 들어가고 있었지만 아프다고 어디에도 말하지 않았고, 가끔씩 스스로를 아프게 하며 부모님과 친구들 앞에서는 웃어 보였다. 그렇게 웃으면, 착한 척이라도 하면 누군가 나를 좋아해 줄 것 같아서 말이다. 이런 고백을 이런 곳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그 때의 나는 그토록 마음이 가난한 아이였었다. 심지어 생활도 비슷해서 좀 놀랐달까. 그나마 경복은 남자친구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어깨를 토닥거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날들이 있다. 분명 나는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달려가다 보면 내 삶의 풍경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더 늪으로 내려갈 때.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시절 속, 아무리 몸부림쳐도 나올 수 없는 그런 시간 말이다. 작중에서 경복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달라지는 건 없다. 여전히 엄마는 자신의 행동이 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보다 자신의 고통을 표출하기에 바쁘고, 아빠는 가족들을 품어주지 못한 채 방관한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히는 그 세계를 경복은 겨우 겨우 살아내고 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이 웹툰은 보라고 추천하기에도, 보지 말라고 말하기에도 좀 어려운 점이 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내가 이 웹툰을 보며 했던 생각은 그녀에 대한 위로도, 나에 대한 위로도 아니었다. 다만 각자의 사연을 뒤로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한 기록. 삶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