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기쁨에게 - 혼자를 기르는 법
외로움은 혼자서 느끼지만 보편적인 정서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은 많아지고, 놀거리도 많아지고, 이야깃거리도 쌓이지만 우리는 외롭다. 어쩌면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실상 내 방 밖의 번화가에선 여전히 청춘을 부르짖는 젊은이들이 밤을 불태우는 데 그걸 모르기에 외로운걸지도 모르겠다. 당신과 나의 외로움이 같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말장난이 있지 않던가.' 당신과 내가 보는 빨간색은 과연 같은 빨간색인가. 우리가 보는 색은 다르지만 우연히도 그 색을 부르는 명칭이 같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런 사소한 것을 의심하고 따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외로워졌다.
외로움을 호소한 작품은 많다. 심심하면 한 번씩 아마추어 만화란에 올라오는 단골 주제 중 하나 역시 외로움이다. 대학교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 만화 주인공은 쓸쓸하게 독백한다. "왜 이리 외롭지?" 이런 직설적인 화법으로 공감을 던지는 작품은 우리를 울컥하게 만들지만 그 이상을 나가지 못한다. 외로움을 불러 일으키지만 위로해주진 못한다. 겨울 새벽녘의 한숨과도 같은 그런 쓸쓸함만이 끝에 맴돈다. 이를 떠올리기 싫어서 사람들은 외로운 작품을 기피한다. 현실에서도 사무친 감정을 다시 불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외로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슬픔으로 타인을 위로하는 법을 아는 작품이다. 흔히 지나치는 일상 속의 소소함을 잡아내어 새로운 의미로 뽑아낼 줄 아는 작가다. 매 화마다 이런 사소한 포착으로 독자를 놀라게 하고, 그 놀라움이 공감으로 이어져 다시 독자를 위로한다. 외로움을 직설하지만, 어째서 외로운지 당신을 이해하기에 작품은 우울하게 끝나지 않는다.
이런 이해와 위로는 작가의 문장력에서 기반한다. 작가의 담담한 문체로 표현하는 내용은 사소한 일상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작 중 등장인물인 '해수'가 사랑했던 사람은 해외에 살고 있다. 두 사람은 거리가 먼 장거리 연애를 했다. 하지만 이는 어려운 일이라 나중엔 연락만 하는 사이로 남게 됐다. 작가는 이 간단한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한다.
해수 언니가 좋아했던 사람은 아주 먼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건 누군가 기상하면 누구는 취침하는 만큼의 거리라고 했습니다. 밤낮이 다른 사람들의 연락은 생각보다 어려워서, 두 사람은 언제부턴가 핑퐁을 하는 사이로 남았다고 합니다. 그건 저쪽에서 해를 -핑 하고 치면 이쪽에서도 퐁하고 쳐주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해를 주고 받는 사이라고 생각한 다음부터는, 언니는 아침 해만 떠도 편지가 온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21화 혼자들
사소한 것에서도 글감을 찾아내는 작가의 능력이 놀라운 작품이다.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작가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내어 정확히 비유하고 이를 통해 독자를 위로한다. 이런 능력은 작가가 외로움과 슬픔에 정면으로 마주볼 때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특유의 덤덤한 문체와 컷에서 읽히는 정서가 오히려 위로의 매개체로 변한다. 작가의 이해가 밑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에 슬픔을 직면하는 상황이 위로가 되는 것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위로를 전하고 독자는 작가에게 위로를 건낼 수 있다. 작품은 이 매개체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작가의 외로움에 독자가 공감하고 슬픔을 가감없이 나눌 수 있다. 이 작품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소중한 존재다. 슬픔이 얼마나 소중한건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이다. 날씨를 말하자니, 이제 겨울이다. 눈이 내린 다음 날은 유독 쓸쓸하다. 작품은 당신에게 슬픔을 주려한다. 기쁨보다 더 소중한 슬픔을 주려한다. 눈 그친 황량한 길을 같이 걸을 수 있는 슬픔을 주려한다. 그리고 슬픔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며 작품은 차분히 당신을 이끌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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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 마지막과 부제는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에서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