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에 잠겨 잊어버린 평화 - 오케이데이 [스포]
사연을 가진 주인공이 어느 농촌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치유물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클리셰로 도입부를 치고들어오는 이 작품은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벨리 댄스를 배우게 되는 지 그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다. 이 모든 순간은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여있고, 부드럽다. 주인공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나고 이 과거를 서로 끌어안는 갈등 해체 과정은 필연이라 할 수 있지만 작품은 이 순간마저 평화롭게 묘사해낸다.
주인공의 과거사와 등장인물들이 엮어가는 과정은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흥미롭다. 어떤 등장인물의 동기가 다른 사람의 결과와 연결되며 이 결과를 통해 특정한 인물의 삶이 바뀌며, 이 바뀐 삶으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등장인물들의 삶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작품 속 인물들은 개성적이란 말로 표현이 부족할 만큼 살아있다.
난 이 작품의 중반부까지의 전개를 정말 좋아한다. 농촌하면 떠오르는 그 평화로운 분위기를 완성해냈다. 정감이 넘치고 누구나 살고싶은 그런 마을을 만들어낸 것이다. 마을 바깥에선 제약 회사의 어이무 회장이 무시무시한 계획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 하고 있지만 마을의 평화는 그와 상관없다는 듯 유유자적하게 흘러가면서도, 제약 회사와 얽힌 갈등들을 찬찬히 풀어낸다. 이 갈등을 풀어내는 과정은 담담하고 싱거우면서도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등장인물들의 삶을 우리가 알고 있기에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더 비극적인 결말도 더 유쾌한 결말도 상상할 수 없을만큼 중반부까지 작품은 탄탄대로를 달려나간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 작품은 지나치게 사이다 전개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이 사이다를 위해 어이무 회장의 계획을 지나치게 허무맹랑하게 만들었는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아들딸을 불구로 만든 제약회사가 만든 신약을 신뢰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대중은 지나치게 순수해서 어이무 회장의 계획에 순순히 움직여준다. 방금전까지 욕을 하던 대중들이 관절이 재생되는 신약을 만들었다는 말에 태도를 전환하여 당장 법을 바꿔야 한다고 시위를 한다. 이런 전개는 그간 작품이 걸어온 완만한 곡선을 파버리는 당황스러운 전개였다. 작품은 주인공들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을 제외한 모든 대중의 이성을 앗아갔다. 주제로 '용기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를 제시하는 작품치곤 대중에 대한 대우가 너무 박하다.
주인공의 영웅시는 좋지만 이를 위해 대중을 관람객에 불과한 장치로 전락시켰다. 작품 후반부에 주인공들이 열심히 증거를 떠들동안 대중은 무력하다. 이를 현실적이라 보기엔 증거가 낱낱히 공개되는 와중에 거들먹거리는 어이무 회장의 모습이나 대중들의 반응은 지나치게 무리수다. 주인공들만 똑똑하고 주인공들이 모든 일을 해결하며 끝에는 자신만이 잊지 않을것이라며 주인공마저 대중을 믿지 않는다. [내부자]들에서 배우는 대중을 개돼지로 보는 인물을 연기했다. 하지만 이 인물의 개돼지 발언은 이 인물에 한해서 끝난 대사였기에 훌륭한 풍자였다.
어째서 대중은 멍청해야 하는가? 우리의 힘으로 해냈다기에 작품은 너무 무기력한 우리들을 보여줬다. 대중의 힘을 보여줄것이라면 대중의 힘을 제대로 보여줬어야 했다. 작품은 주인공들이 어이무 회장을 쳐부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너무 많은 걸 희생했다. 아름다운 시골 풍경도, 따뜻한 인심도. 작품의 말미를 장식하는 냉랭함은 작품이 잃어버린 많은 걸 보여주는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