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에 대하여 - 감각의 전제
만화를 보는 것을 작가와의 대화라고 치자. 이 때 미술과 성을 한 묶음으로 묶는 작품들을 보면 다른 나라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내가 공감할 수도 없고, 앞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영역에 대해 그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별한 사고방식으로 이해하여 풀어놓는 그런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매우 친절하게 자신의 공감대를 풀어놓기에 이에 대해 뭐라 딴죽을 놓기도 힘들지만 분명한 건, 난 그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단 사실 뿐이다.
작품의 주제에 대한 공감대는 중요한 것이지만, 역으로 철저한 비공감을 노린다면 이 또한 좋은 수라 할 수 있다. 예컨데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천재 캐릭터를 그리려고 한다면 역으로 이 캐릭터에 공감할 수 없게 만드는 게 꽤 중요한 일일 것이다. 작품의 여주인공은 이런 비공감적 요소의 집합체다. 재색을 겸비한 재벌가 딸에, 미술과 남자 주인공에 대해 기묘한 열망과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일반인과는 유리되어 있다는 묘사가 작중에 자주 나오고, 현실의 독자들에게도 이 캐릭터는 신비스런 존재다.
감각의 전제 2화 中
하지만 현재까지 나온 이 캐릭터가 신비한만큼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존재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이 캐릭터의 미학과 이해할 수 없는 천재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지, 남자 주인공과 미술을 담론하며 벌어지는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 작품은 애매한 위치에서 둘을 조율하려 한다. 여기에 더해 복잡한 과거사까지 끼어드니 작품 속 캐릭터의 매력을 읽기 전에 작품이 매력을 잃는다.
일본의 만화 [엿보기 구멍]은 상당히 저질스런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만화다. 우연히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옆집 사람을 훔쳐보게된 남자 주인공이 옆집 여자와 얽히며 벌어지는 심리 드라마다. 남의 집을 엿볼 수 있다는 관음증을 다루면서도 극단적으로 스릴이 넘치는 심리 묘사를 통해 몰입도가 진국인 작품이라는 찬사를 들었었다. 아직 이 [감각의 전제]가 어떤 내용으로 흘러갈 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의 몰입이 전제되기 위해선 작품의 매력을 조금 더 드러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