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담의 만화화 - 203호 저승사자
제가 믿지 않는 걸 세가지 정도 뽑아본다면, 첫째는 종교고 둘째는 제 할아버지가 가끔 하시는 옛 시절 무용담이고 셋째가 병맛 만화가 웹툰계를 이끌 것이란 말입니다. 앞의 두가지는 목에 칼이 들어온다면 믿을만 하겠지만, 세번째 경우 때문에 목에 칼이 들어올 일은 없을테니 제가 믿을 일은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이유엔 제 개인적인 취향도 들어있지만, 병맛 개그 코드는 파급력은 있을지 몰라도 컨텐츠의 파워를 이끌어낼만한 내실이 부족한 장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존 클리셰에 대한 반전, 기존의 독자들이 예측할 만한 상황에 대한 반전, 개연성의 파괴가 바로 병맛이 독자들을 웃기는 방식인데, 이는 독자들의 기반을 지탱해줄 작품이 문화계를 견인하고 있을 때만 이루어질 수 있는 유머코드 입니다.
[203호 저승사자]는 개연성의 파괴, 독자들이 예측할만한 상황에 대한 반전, 기존 클리셰에 대한 비꼬기를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개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작품의 모든 설정은 오로지 뒤에 있을 딴죽을 위해 존재하는 허위가 됩니다. 예컨데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주인공의 문 밖에 쓰러져 있다 칩니다. 보통 여기서 쓰러진 인물은 일어나면 "여기가 어디죠?" 혹은 "당신은?"으로 시작하는 대사를 내뱉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쓰러진 인물은 일어나자마자 주인공을 보고 "엄마?"라고 외칩니다.
그럼 주인공이 취할 태도는 한가지입니다. "이럴 땐 다른 말이 나와야 되는 거 아니야?" 이렇듯 멍청한 행동이나 언행을 하는 캐릭터를 하나 두고, 딴죽을 넣어 웃기는 것을 만자이(まんざい)라고 부릅니다. 이는 일본식 꽁트 개그를 일컫는 말로 멍청한 행동을 하는 쪽을 보케, 이 행동에 딴죽을 넣는 쪽을 츳코미라고 하여 두 사람의 콤비 플레이로 이루어지는 개그입니다. 이런 방식의 개그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한정된 소품으로 개그를 이끌어 나갈 때는 좋지만 주제와 소품의 폭이 자유로운 만화에선 이 제한된 개그 방식은 오히려 답답함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첩보의 별을 예로 들어봅시다. 이 작품은 상식 밖의 행동과 언행을 통한 개그를 구사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작품의 목표는 분명히 하나로 정해져 있고 스토리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입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등장인물들이 얼도당토않은 행동을 하지만 캐릭터마다 행동의 방식이 다르고, 이 때문에 캐릭터와 유머 그리고 스토리가 전부 살아납니다.
[203호 저승사자]는 우선 작화 면에서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합니다. 코미디를 강조할만한 연출은 많으며 작화의 밀도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작품은 더 재밌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3호 저승사자]는 웃는 얼굴로 살짝 옆을 바라보거나 정면을 바라본 얼굴에 몸을 그려넣은 것마냥 어색한 동세만 작품에 차용하고 있습니다. 동세가 어색하니 연출의 박진감이 줄어들고, 연출의 박진감이 약하니 사용할 수 있는 개그 패턴은 만담 이상을 나가지 못합니다.
물론 만담 하나만으로도 작품은 끝내주게 재밌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은 특정 상황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만담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만담을 하기 위해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몰입도, 갈등에 대한 긴장감도 없습니다. 작품의 모든 상황은 그냥 넘어가는 식으로 적당적당히 설정을 뿌려놓았고, 이 때문에 스토리적인 재미를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어떤 떡밥을 부리든 독자들은 이 작품이 어차피 이 떡밥을 그냥 넘겨버릴 거란 사실을 알고 있는 셈입니다.
그림으로 인한 개그 방식의 제한과, 원패턴 개그로 인한 캐릭터 어필의 제한, 스토리를 없애버리면 서 생긴 갈등의 제한으로 인해 작품은 스스로 삼중고에 얽메였습니다. 물론 이 작품의 개그가 재밌을 수는 있습니다. 저도 [디워]의 개그 센스는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