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악의적인 <대작> [스포있음]
등장인물들의 행동 원리가 이해되지 않고 캐릭터 개성도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이 싸이코패스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하는 건 변명에 가깝다. 정도라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인데 등장인물들이 죄다 정신 교정을 받아야할 정도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만 일삼고 있으니 도가 지나치단 느낌만 작품에 가득하다.
작품은 [로망]이라는 끝내주는 소설을 쓴 작가를 출판사 직원이 차로 치어 버리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사고 전후 상황부터 이해가 안되는데,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데다 사람들도 잘 안다니는 골목길을 다니던 차가 사람을 치었는 데 사람이 거의 10미터는 붕 떠올라서 바닥에 처박히며 차는 시속 80km로 달린듯한 흔적을 남기며 멈춰선다. 이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 출판사 직원은 골목길에서 무지막지한 속도로 가속을 하며 한눈을 팔았다는 건데 약속 장소가 코 앞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설정된 이 구도는 상당히 작위적이다. 다른 작품의 비슷한 상황으로, 예전에 대학만화최강자전 만화 중에 학생 커플이 길거리를 걸어가며 이야기하던 중에 여자가 뜬금없이 도로로 튀어나가 한 바퀴 턴을 하며 고백한 뒤에 트럭에 치여 죽는 작품을 본 적 있었다. 그런 느낌이었다.
이 작위적인 구도는 이 한 군데에서만 튀어나오지 않는다. 누가봐도 '나는 방금 사람을 쳐서 장례식장 수입에 일조했다.'고 쓰여진 차량을 기어코 시내 한복판에 있을 출판사까지 시체를 담고 끌고온 출판사 직원 때문에 시체가 들통나고 여기서 대작이 시작된다. 즉 1화부터 여기까지의 모든 장면은 무명 작가가 시체를 발견하기 위해 짜여진 구도인 셈인데 이 구도가 매우 작위적이다. 목적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수단이 엉성해졌다. 수단이 엉성하다 보니 작품 스타트가 부실해졌다.
시작의 부실함과 약간의 작위적인 구도는 후반의 전개로 만회할 수 있는 요소다. 작품은 중반부까지 자기 욕심이 지나친 인간 군상들을 늘어놓으며 작품의 몰입을 돕는다. 하지만 이 인간 군상들의 충돌이 어떻게 해결되는 지 보자면 작품의 마무리는 시원치 않다. 뜬금없이 등장한 회장님이 하나의 예시인데, 이 작품을 본 기억에 이전에 이 회장님이란 인물이 따로 등장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회장님은 특정 캐릭터의 마지막 히든 카드로 활용된다. 이 캐릭터가 대작 사건에 가담한 동기가 돈인데, 감옥에서 빼줄 수 있을 만큼 회장님과 친한 사이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도가 나쁜 작품은 아니었다. 악의에 찬 인간 군상들이 뒤엉키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아내려한 노력이 엿보인다. 컷을 통한 상황 복선이나 내용 전개도 참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다만 초반의 작위적인 설정과 뒤로 갈수록 힘빠지는 스토리가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