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랍 『미래의 아랍인』
『미래의 아랍인』
리아드 사투프Riad Sattouf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만 5000원
2015년, 세계는 온통 ‘난민’ 이야기로 들끓었다. 한 중동 국가가 쏟아낸 난민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세계가 주목했고 대응 방식에 따라 유럽, 중동, 바티칸의 리더십이 심판대에 올랐다. 난민 최대 수출국의 정체는 시리아. 유엔난민기구는 2015년 9월 현재 시리아 난민이 4백만을 넘겨 단일 분쟁 최고 난민 규모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아랍연맹 맹주의 하나였지만 우리에겐 난민으로 각인된 시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마침 작년 국내에도 소개됐다. 시리아 출신 프랑스 만화가 리아드 사투프(Riad Sattouf)의 자전적 경험을 집필한 『미래의 아랍인』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멀고 복잡한 아랍의 국가들과 무슬림 세계를 천진난만한 아이의 눈으로 그려내고 있다.
매력덩어리 주인공, 금발 혼혈 아랍인 ‘리아드’
“언젠간, 아빠도 쿠데타를 일으킬 거야……”
시리아 아버지와 프랑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금발의 혼혈 아랍인 ‘리아드’. 그는 화려한 머리 색깔 덕분에 어디에 가나 인기 만점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비행기까지 만이다. 중동 국가에서 금발은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한다. 심지어 아버지의 고향 시리아에서는 ‘유태인’으로 취급 받으며 아이들 사이에서 증오의 표적이 되어버리고 만다. 리아드는 한 쪽에서는 매력의 대상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경멸의 대상으로 취급받으며 6살까지 프랑스와 중동의 국가들을 오간다.
어린 리아드의 눈에 가장 크게 비춰지는 것은 부모의 삶이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아버지 ‘압둘라작’은 졸업과 함께 영국 옥스퍼드 전임강사 자리를 제안 받는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근무지는 리비아 트리폴리 대학교. 시리아 지식인으로서 아랍의 변화를 갈망한 그는 그의 지식이 아랍 청년들을 위해 쓰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록스타 같은 외모로 호감을 얻었던 독재자 카다피의 리비아는 점점 사회주의 그림자가 짙어진다. 집 소유는 고사하고 국가의 결정에 따라 농부와 교사가 일자리를 바꾸는 혼돈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큰 욕심 없는 어머니 ‘클레망틴’는 남편의 결정을 존중해 리비아로 향하지만 무슬림 사회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로 없다. 리비아 라디오 방송국에서 아나운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카다피 체제를 불어로 선전하다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대형 방송 사고를 내고 만다. 그런데, 시리아에서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시리아 여성은 남성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어야 할 정도이니 말이다.
독재 필요성을 공감하는 지식인 아버지 ‘압둘라작’
해변의 프랑스, 태양의 리비아, 적토의 시리아
국경을 넘을 때마다 리아드의 눈에 비치는 나라의 빛깔도 함께 바뀐다. 프랑스는 파랑색, 리비아는 노랑색, 시리아는 분홍색으로. 《뉴스위크》인터뷰에서 작가는 프랑스의 파랑은 외가가 위치한 프랑스 브르타뉴(Brittany) 해변, 리비아의 노랑은 태양이 내려 쬔 사막의 도시, 시리아의 분홍은 시리아의 적토에서 각각 빌려왔다고 밝혔다. 작가의 남다른 색감 덕분에 낯선 타국이지만 좀 더 생생하고 친근하게 느껴지고, 같은 중동이여도 리비아와 시리아가 헛갈리지 않게 도와준다.
국가 풍경을 특정 색상으로 처리한 만큼 다른 색의 침입을 목격하는 것도 『미래의 아랍인』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다. 아버지의 라디오(빨강색), 리아드의 텔레비전(녹색), 외할아버지의 사진(빨강색), 리비아의 카다피(녹색), 시라아의 아사드(빨강색) 등의 등장은 현실 풍경색과 대비되어 묘한 위화감을 제시한다. 그 가운데 리비아는 카다피 그린 북의 녹색이, 시리아는 핏빛의 빨강색이 점점 스며들기 시작한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된 『미래의 아랍인』 1권은 리아드가 중동과 프랑스를 떠돌다 결국 시리아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출국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금발이라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위협받았던 그 땅으로 돌아가는 거다. 아버지는 리아드가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랍의 전통과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이 프랑스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음에도 똑같은 종교의 굴레가 반복되는 것이다. 영리한 리아드는 무슬림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게 될까? 교육으로 아랍을 변화시키겠다던 아버지는 무엇을 목격하게 될까? 시리아 분홍으로 물든 공항의 하늘은 마치 유년시절이 끝났다는 듯 우울하게 번진다.
태양의 리비아, 적토의 시리아
‘미래의 아랍인’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
작가 자전적 이야기임에 비추어 본다면 시리아에서의 모든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독재자, 군인, 시민, 지식인 모두가 각자의 혁명을 꿈꾸었던 대륙. 모든 것의 충돌에서 결국은 종교의 굴레에 번번이 발목 잡힌 시대의 인물들. 작품 중간 중간 설명하듯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이 이슬람 주류 세력인 수니파가 아닌 소수 시아파라는 사실은 시리아의 미래가 더 열악할 수밖에 없음을 예고한다.
모든 게 절망적임에도 『미래의 아랍인』은 기다릴 가치가 있다. 작가가 보통 괴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리아 출신 프랑스 만화가 리아드 사투프는 자신의 국적을 ‘만화가’라고 말한다. 무슬림 비판에 거리낌 없는 《샤를리엡도(Charlie Hebdo)》에서 2004년부터 10년간 만평을 그렸으며, 『나의 사춘기』라는 영화로 신인감독상도 수상했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최고 작품상을 두 차례나 수상해 이미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과 앨런 무어(Alan Moore)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을 듣는다. 올해 초에는 43회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수상작 후보리스트에 여성 작가가 없다는 이유로 동료 만화가들과 함께 후보작 선정을 보이콧하는 활동가의 면모도 드러냈다.
‘미래의 아랍인’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 작품 내내 동전의 양면처럼 마르잔 사트라피(Marjane Satrapi)의 『페르세폴리스』가 생각났다. 이란 혁명과 이라크 전쟁 한복판에서 이란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무슬림 여성의 삶을 알렸던 『페르세폴리스』. 마르잔의 이야기는 후반부로 가면서 여성주의로 성장해 나갔다. 마르잔처럼 금발의 리아드 역시 언젠가는 시리아를 떠날 테다. 다만 청년이 된 리아드가 어떤 아랍 시민의 얼굴을 하고 있을지는 자못 궁금하다. 두 작품의 출간 간격이 10년 이상인 만큼 주변의 관심과 기대도 결코 적지 않을 것 같다. 끝으로 복잡한 중동만큼이나 한 ‘복잡’하는 동북아시아에도 이 같은 굵직한 자전적 만화가 탄생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동북아 주민으로서 ‘미래의 아시아인’은 더더욱 궁금하기 때문이다.
2015 6월, 2권이 출간됐다. 곧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출처: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35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