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두 팔로 나를 꼭 끌어안았다, 『혼자를 기르는 법』
『혼자를 기르는 법』
김정연, 다음 만화속 세상 금요웹툰
언어로 달래는 처방전은 위약으로나마 효과를 다했습니다. 누워버린 말에게는 질책도 들지 않습니다. 청년들의 정신이 그 어느 시대보다 가난하므로, 사라진 것은 헝그리 정신이 아닙니다. … 청년들은 결혼하지 않습니다. 누구와 살지 결정하는 것으로는 어디서 살지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출근길 차창 바깥으로 보이는 빽빽한 주택들이 다 누구의 것인지 청년들은 신기해합니다. 누군가 벌써 세상을 남김없이 소유했기에, 집을 갖는 게 왕국을 갖는 것이나 다름없어진 걸까요?
– 소설가 손아람, 인터넷판 『경향신문』 1월 1일자 특별 기고문 “망국 선언문” 중에서
모든 사람들이 존경해서 존대하는 큰 존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딸에게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성씨 ‘이’씨까지 합쳐 ‘이시다’였다. 담대한 의미가 깃든 이 이름이 후에 직장에서, 학교에서 신나게 부려 먹히는데 묘하게 어울릴 이름(시다 : 일본어로 ‘아래下(시타)’라는 의미의 단어로, 한국에서도 널리 쓰인다)이라는 걸 아버지는 아마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딸은 아직 존경받는 존재는 되지 못했다. 대신 끊임없이 사유하며 낯선 대도시에서 스스로를 기르며 살아간다. 인구 천만 명 분량의 외로움이 대기를 가득 메워, 낮에도 밤에도 시야가 희뿌연 곳, 서울에서.
김정연의 『혼자를 기르는 법』은 2015년 말에 연재를 시작했다.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발 빠른 독자들은 이 작품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무한한 우주 속에 튕겨진 코딱지 속 병균만한 지구. 그 속에 조그맣게 아주 조그맣게 누운 ‘이시다’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에 쓸쓸한 웃음이 났고, 이거 내 얘긴데 싶어 눈여겨보게 된다. 아마도 이십대의 끝자락 혹은 삼십대 초반일 시다의 일상은 이미 무수히 산적한 ‘생활툰’ ‘일상툰’이 보여주는 예쁘게 착색된 삶과는 조금, 아니 꽤 많은 부분이 다르다.
『혼자를 기르는 법』 , ‘인류 가장 첫 번째 시다’ 편 중에서
서두에 인용한 손아람의 “망국 선언문”의 전문에는 언젠가 출판사의 기획으로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각기 다른 청년 몇 명을 찾아 그들의 생각과 생활을 취재했던 이야기가 들어있다. 작가는 최근 다시 그들에게 연락했다. 전태일들의 상황이 5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달라졌나를 듣기 위해서였다. 가진 것 없지만 열심히 일하며 공부했고, 지금의 어려움이 밝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거란 확신을 가졌던 전국의 전태일들의 삶은,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두 명은 결국 대학을 그만두었고, 한 명은 노동현장에서 몸을 다쳤으며 다수는 빚을 갚지 못했다. “그 어느 시대보다 가난한 정신을 가진 청년들”이 사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준 망국선언문은, 『혼자를 기르는 법』과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서 정시출근-야근퇴근을 반복하며 가마우지 낚시에 월급노예인 자기 처지를 이입하고,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서서히 스스로를 죽이고 있는 자신의 생활패턴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시다. 곁에 있어 더 아무렇지 않게 상처 주는 가족에게서 홀로선 생활은, 혼자든 아니든 가질 수밖에 없는 고민과 상념을 더욱 명징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외로움이라는 정서는 한밤중 작은 화장실에 오도카니 앉아 벽 속을 수없이 오가는 파이프 너머에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들고, 매일의 일을 내일의 나에게 미루다 생의 마지막 날 모든 일을 끌어안고 홀로 자폭하는 삶을 상상하게 한다. 고시원에서 시작해 작은 원룸으로 주거지의 발전을 제 손으로 일구어 낸 그녀지만, 자신이 치트키를 쓴다 해도 결코 손에 쥘 수 없는 넓고 아름다운 집을 상상해 희비를 동시에 불러들이며, 자신이 버는 돈으로는 ‘쓸데없이 시간을 들여 이상한 세공을 넣은’ 싸구려를 사 모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화가 난다.
『혼자를 기르는 법』, ‘파이프가 시작되는 곳’ 편 중에서
청년들은 공감할 거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모아도 부모의 도움 없이는 평생 주택을 구입할 수 없을 거라는 것,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도 원하는 일을 제값을 받으며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란 것,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아니라 개천에서 용이 나면 발목 잡혀 개천으로 끌려 들어갈 거라는 것을 말이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지극히 한 개인에 대한 사소한 기쁨과 사유와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근간에는 ‘N포세대’라 자조하는 청년세대의 정서가 두텁게 깔려있다. 그러니 기성세대의 핀트 어긋난 충고나 섣부른 힐링타령은 뒤로 하자. 『혼자를 기르는 법』을 읽으며 킥킥킥, 씁쓸하고 우스워서 웃자. 그렇게 우리를 위로하자.
<출처: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34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