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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키스』, 우리는 꿈을 향해 달렸나

관리자 | 2017-10-11 12:50

『파라다이스 키스』, 우리는 꿈을 향해 달렸나


『파라다이스 키스』, 우리는 꿈을 향해 달렸나

『파라다이스 키스』 야자와 아이 지음, 쇼덴샤/시공사 펴냄, 5권 완결

 


‘자라서 무엇이 될까’라는 질문


어릴 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은, 커서 생각해보면 대개 터무니없이 스케일 크거나 어린아이만이 내놓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빠랑 결혼할 거야’ 같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짝이 없는 대답부터 대통령이나 노벨상 받는 과학자,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영화감독 슈퍼모델이나 전설적인 배우까지. 꿈은 클수록 좋다고들 하지만 별 맥락도 없이 그때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좋아하고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걸 답하며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을 어린 시절. 이후 곧장 제도교육의 레일을 따라 끝까지 가면 수험과 대학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탐색하는 대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수시입학과 수능시험에 목숨을 걸고 운 좋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면…? 그리고…?


『파라다이스 키스』는 만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패션 디자이너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을 거라고 말한 작가의 작품답게, 먼저 화려한 패션이 눈을 현혹한다. 그리고 독자의 눈을 현혹하는 모든 것은 작품 속에서 움직이는 주인공들이 꿈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 달려가는 과정의 산물이다. 야자 패션학교, 보통의 수험생들에게는 ‘똥통 학교’지만 패션을 업으로 삼고자 꿈을 가진 소년 소녀들에겐 지방에서 부모의 반대를 뿌리치고 혈혈단신 상경해 잠 잘 시간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다녀야만 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야자에는 부잣집 도련님부터 지방에서 올라온 고학생, 패션업계 종사자 가족에게 경도되어 같은 길을 선택한 이 등 여러 종류의 학생들이 있지만, 공통점이라면 일반 고등학교의 수험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혹독한 배움의 지옥(?)에 발 푹 담그고 있다는 것. 모두 학교에 대해, 이 학교에서 교육받고 있는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학교를 졸업하고 수 백 개의 자소서를 쓰면서 ‘이것이 과연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일까’를 고민하는 것조차 사치인 요즘 ‘n포세대’를 떠올린다면, 야자 복장학교의 학생들은 은근히 얄미운 구석마저 있다.


 


『파라다이스 키스』, 우리는 꿈을 향해 달렸나

특이하게도 만화잡지가 아닌 패션잡지 『지퍼Zipper』에서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연재했으며, 작가의 전작인 『내 남자친구 이야기』의 속편 격인 『파라다이스 키스』.

 


길 밖에도 삶은 있다는 깨달음


『파라다이스 키스』의 히로인은 패션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오로지 공부와 수험, 엄마의 허영심에 떠밀려 그저 명문대학 말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고교생, 유카리. 명문사립고인 ‘세에이’에 다니고 있지만 무리한 진학이었는지 지망하는 대학에 맞는 성적과 멀어지고 있는 상황. 밖을 다닐 때 명문고 교복을 입을 수 있다는 것만이 그녀의 떨어진 자존심을 지켜주는 유일한 방패다.


야자 학교에는 매년 학생들끼리 팀을 이뤄 의상을 디자인하고 제작해 모델을 섭외하고 패션 경연대회를 개최한다. 1등의 특전은 해외 유학. 매사가 삐딱하지만 모델 같은 외모와 부잣집 도련님이란 프리미엄(?)을 달고 있는 ‘죠지’는 패션쇼를 위해 그를 중심으로 미와코, 아라시, 이자벨라를 팀원으로 하는 ‘팀 파라다이스 키스’를 결성했다. 길을 지나다 횡단보도에 서있는 유카리를 발견한 그들은 긴 팔다리와 건방진 눈매가 “딱 우리들이 찾던 이미지”라며 다짜고짜 우리 옷의 모델이 되어보지 않겠냐고 스카우트 제의를 한다. 유카리는 그들이 다니는 학교의 평판-‘똥통’ 학교-를 떠올리며 “수험이 장난인 줄 아느냐”고 비아냥거리는 걸로 거절을 대신했지만, 뒤이어 나타난 죠지의 제안에 호기심이 생기며 그들과 함께 쇼에 서기로 결심한다.


이제껏 쳇바퀴 돌 듯 학교-집-도서관을 오갔던 유카리에게, 그들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대부분 자기가 만든 옷을 입고 등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거나, 패션 디자이너 뿐 아니라 헤어 메이크업 등 패션에는 여러 가지 결이 있다는 것. 잠 잘 시간도 부족하게 디자인을 하고 원단을 고르고 패턴을 뜨고 재봉을 하고… 무엇보다 그들은 너무나도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당연하게도 치열하게 매일매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어두운 터널 끝에는 하얗게 출구만이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고, 그 다음은 상상해본 일도 없이 지금 이 상황에서 탈출하는 것이 목표였던 그녀. 그들을 만나며 처음으로 ‘나에게 맞는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파라다이스 키스』, 우리는 꿈을 향해 달렸나

죠지의 패션쇼에 선 유카리가 성공적으로 런웨이를 돌고 왔다.

 


사랑이야기, 그 전에 꿈이 있었다


『파라다이스 키스』는 유카리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그 중심에 있는 생애 첫 남자친구 죠지와의 관계에 집중한다.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실은 모델이었던 엄마가 아버지와 불륜을 맺고 태어난 ‘법적으로 인지도 받지 못한 자식’인 죠지는 경제적으론 풍족하지만, “너만 낳지 않았어도 모델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었는데”라고 태연히 지껄이는 엄마 덕분에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갖게 됐다. 유카리의 첫사랑이 하필 여자친구를 제멋대로 지배하려 드는 나쁜 남자라니. 줄줄이 쓰라린 경험에 마음을 다친다. 그가 그녀를 애지중지 할 때는 예쁘게 디자인 한 옷을 입고 모델 일을 할 때 뿐이다. 죠지는 유카리를 자신의 ‘뮤즈’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말과는 달랐다. 둘 사이가 잘 되지 않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랑의 끝과 함께 팀 ‘파라다이스 키스’도 졸업과 동시에 해산해 각자의 길을 향해 일보 전진한다. 『파라다이스 키스』의 결말은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와는 거리가 멀다. 틴에이저들의 사랑과 꿈 이야기는 그들의 졸업과 함께 엄혹하지만 두근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며 끝난다.


우리는 그 시절, 무엇을 꿈꾸었나. 간절히 바랐던 것은 지금 내 손안에 있나. 아직도 요원할 뿐인가. 『파라다이스 키스』는 지금이라도 모든 걸 버리고 꿈을 취하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꿈을 꾸었던 기억까지는 잊지 말자. 언제든 꺼내어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출처: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31193
윤태호 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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