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사랑해 - 진정한 사랑 이야기
우리에게 트레이스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는 네스티 캣. 고영훈 작가의 심금을 울리는 로맨스물. 최근 엄청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네이버에서 연재를 마친 Ho! 역시 청각 장애인에 대한 스토리로서,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인식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이런 작품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사람들의 인식은 점차 조금씩 바뀌어 갈 것이다. 탤런트 홍석천 씨가 예능에 나와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고 외치며 하루아침에 사회에서 매장당하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 외치는듯한 이 작품은, 후천적 장애인과 선천적 장애인의 사랑을 다루며, 핸디캡이라는 것은 이 사랑이라는 주제를 더 애틋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는 눈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음악 하는 사람에게는 귀가 제일 중요할 것이다. 계속되는 밤샘 작업으로 눈에 무리가 와 시력을 잃게 된 남자 주인공 근수는 치매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잘 나가는 웹툰 작가이며 그의 작품은 영화화까지 진행 중이다. 그는 마감에 쫓기면서도 계속 놀아달라는 어머니 때문에 힘들 텐데도 힘든 내색 한번 않고 어머니 병수발과 집안일까지 하며 빠듯한 생활을 한다.
만화가의 직업적인 특성상 일이 들어올 때 바짝 벌어야 된다는 사실은 이미 이쪽 분야가 직업인, 혹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일이다. 언제 나를 다시 찾아줄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 그는 연재 중인 작품 외에도 무리하면서까지 외주까지 도맡아 한다. 근수는 어느 순간 눈이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의사에게 실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계속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어머니가 다쳤는데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신체의 일부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평소같이 쓰일 수 없는데서 오는 공포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슬프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고영훈 작가는 그만의 개그 요소를 군데군데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또 그런 그의 만화를 보는 것을 사랑하는 청각장애가 있는 벙어리의 그녀.. ‘소리'. 장기 휴재에 들어간 근수의 응원을 하려 집에 들른 것이 인연이 되어 부부의 연까지 맺었다. 이들 부부가 소통하는 방식은 좀 독특하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손가락이 기억하는 감각으로 타자를 치는 그와 그런 모니터의 글자를 읽는 그녀.. 그녀는 그의 팔에 한자 한자 정성 들여 글씨를 쓴다. 푹 잤어요라고. 귀로 듣는 모든 것은 남자가 여자의 주의를 끌어 상황을 보여주고, 그녀가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그의 입과 귀가 대신해준다. 그런데도 이들은 불편한 것이 하나 없어 보인다.
누구보다 밝고 긍정적인 소리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울컥하면서 올라오는 슬픔이 있다. 그 누구보다도 더 삶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다. 오히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하루하루 감사함을 모르고 사는 느낌이고, 그들은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해 더 많이 느끼고, 감사하며 사는.. 보고 있기만 해도 부끄러움에 나 자신까지도 경건하게 만드는 그녀..
작가의 연출에 정말 놀란 장면은 8화에서 집으로 찾아온 예전 근수의 어시스트였던 연정이 집으로 찾아와, 그에게 연출을 맡아 달라는 신이었다. 이렇게 둘이 일에 대한 얘기를 하는 동안 소리가 퇴근을 했고, 그녀는 우두커니 그녀의 남편과 연정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동안은 대사가 없다. 소리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이다. 눈이 몇 번 마주치고, 웃고 -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동안 소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사가 없는 그 짧은 몇 분을 답답해한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녀에겐 일상인 일들이.. 바로 옆에 있지만 한없이 작아지는 소리의 모습은 그녀가 겪고 있는 이런 심적인 고통을 시각적으로 잘 나타내 주는 장면이다. 우리가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장애인에 대한 생각, 그리고 정말 행복하게 사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작품이다. 매일매일을 타인의 시선과 싸우는 그들.. 부족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기에 한정적인 삶에 대한 소중함도 아는 그들..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고마운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