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K - 고영훈 작가의 본격 소녀 액션물
연진의 어머니는 생선가게를 하신다. 권투 부 주장은 그녀에게 권투 부에 들어올 것을 권유하지만 주인공은 우아하지 못하다며 거절. 이에 열받은 유도부는 요즘 게임에서 부모님 안부를 묻는 것이 동방예의지국 한국 게이머들의 도리인 것처럼, 엄마까지 들먹이며 연진의 심기를 건드려놓게 되고, 연진은 남자들을 상대로 시원한 한방을 날린다.
학교 육성회장 아드님의 얼굴을 저 지경으로 해놓았으니, 여주가 아무리 진실을 말해줘도 모든 것이 다 거짓이 되어버린다. 퇴학 안 당하고 싶으면 얌전히 학교생활하라는 교장의 말에 그래도 현실적으로 타협하고 굽히고 들어갈 줄 알았던 연진이 육성회장 아들놈의 얼굴에 마무리 일격으로 니킥을 꽂으며 시원하게 교복 상의를 뜯는다.
당신 눈에 내가 학생인 적이 있었나 아까부터 가슴만 보던데.. 하며 “학생 같지도 않은 내가 선생 같지도 않은 선생들 밑에서 뭘 배우겠냐. 나 간다. 우아하지 못한 것들아..”라며 학교를 떠나는 모습은 여성 독자들이 봐도 반할만한 강렬한 시작이었다.
조직으로 끌려간 엄마를 구하기 위해 그 안으로 뛰어든 연진. 순순히 그들이 원하는 물건을 넘겨주었지만, 결국 엄마는 연진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순간 엄마와 함께 한 수많은 순간들, 엄마에게 눈 한번 마주쳐주지 않고 엄마를 피하기만 했던 자신의 과거가 생각난다.
엄마는 죽는 순간까지도 딸에게 미안하다며 눈을 감았다. 연진도 곧이어 총을 맞고 나란히 엄마 옆에 쓰러진다. 하지만 그녀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조직.. 그들은 지금 죽을 것인지 우리를 위해 일할 것인지 결정하라 한다. 살아있다면 엄마를 죽인 장세욱을 죽일 수 있다.. 보통 살아남은 주인공은 나중에 조직을 뒤엎게 된다는 설정이 많으니, 이건 그들의 실수였다 생각한다. 연진에게 국가를 위한 일을 하는 거라는 민지영.
10년이 걸릴 트레이닝을 2년 만에 배우는 연진은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장세욱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며 더더욱 연습에 매진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을 위해 일해주는 대가로 엄마를 죽인 장세욱을 찾아주겠다는 민 실장. 하지만 그녀는 고의적으로 장세욱을 연진으로부터 숨기고 있다.
작품 내 등장하는 허당 이미지가 강한 강력반 최태영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형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매번 눈앞에서 범인을 놓치고, 두려운 상황에서는 나서지 못하고 목숨 부지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매번 중요한 순간마다 훼방을 놓는데 일등 공신이어서 연진과 유성호에게 얻어터지고 조용히 기절한다.
연진은 김소연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육성회장 딸이라는 타이틀로 떠났던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게 된다. 그녀가 처음에 치를 떨었던 육성회장 아들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이 같은 설정을 다시 갖게 된 것이 모순적이면서 인상적. 뭣 같은 체제와 사람이 역겨워서 떠났던 그녀가 결국 그 체제 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아이러니하다.
학교 내에서 아이들이 건드릴 수 없는 포지션이 되어도, 연진은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아이들을 괴롭히는 짓을 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났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지만, 그녀는 그녀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2011년 채널 CGV에서 3부작 드라마로 방영된 바 있는 소녀 K. K는 Killer의 약자이다. 트레이스로 이미 증명된 고영훈 작가의 액션신은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스크롤을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프링글스 같은 매력이 있다. 고영훈 작가가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듯한 주제 - 생체실험 - 이 작품에서는 인체실험을 통한 줄기세포 연구가 또 한번 등장한다. 트레이스 거지 편에서 주인공의 가족이 끌려가 실험실에서 실험을 당한 것과 비슷한 설정의 느낌을 주는데 있어서, 작가는 인간성이 결여된 생체실험이 많은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 한들, 줄기세포를 배양한다 한들 그들이 살아 숨 쉬고 의지가 있는 인간인 이상 의미가 없다고 은연중에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보통 이런 설정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주인공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 전형적인 고영훈 작가의 연출법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 단편이지만 장편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독자들로 하여금 고영훈이라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열광케 하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