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준의 불가항력 만화방 #02 우주형제
작가소개 | <지지지이>로 제14회 MANGA OPEN심사위원상(와타세세이조상) 수상함에 따라 만화가를 업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극단JET’S>로 제15회 MANGA OPEN대상을 수상했다. 2008년부터 <모닝>에 주간 연재를 시작한 <우주형제>는 2012년 4월부터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 방영되었으며, 같은 해 오구리 슌, 오카다 마사키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우주형제>는 ‘이 만화가 대단해! 2009’ 남자부문 2위, 2009년, 2010년 만화대상에서도 2년 연속 2위에 머물었지만, 마치 작품 속 주인공 난바 뭇타처럼 2010년 제56회 쇼가쿠칸만화상 일반부문, 2011년 제35회 코단샤만화상 일반부문을 수상하며 만년 2위에서 비로소 수상에 이른 저력을 보여줬다.
“옛날에 넌 그런 애였어. 뭐든 마구 도전하고, 어려운 일을 선택했지.”
“그, 그랬나요. 트럼펫을 고른 건 단순히 가장 번쩍거려서 그런 거 아닌가.”
“그렇다면 그걸로도 좋고. 지금 너한테서 가장 반짝거리는 건 뭐니? 자아, 트럼펫을 가져와서 소리내봐. 잘하지 못해도 좋고, 틀려도 좋아, 뭇타. 우선은 소리를 내봐. 소리를 못 내면, 음악은 시작되지 않아.”
– <우주형제> 1권, 샤론과 뭇타의 대화 중
한때 ‘루저(loser)’라는 단어를 너도나도 사용하던 때가 있었다. 덕분인지, 지금은 무엇으로부터의 패배인지도 잘 알 수 없는 ‘패배자’보다도 익숙하게 쓰는 말이 됐다. 언어가 행동을 지배하듯, 루저의 유행과 함께 ‘루저물’ 또한 군집을 이루는 듯했다. 찌질한 청춘들이 등장해 시종일관 자신들의 찌질함을 과시하거나, 헤어 나올 수 없을 현재로부터 발버둥 치다 결국 몰락하거나 안주하거나 하는 그런 이야기들. 과정은 다르지만 루저물이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였다. 이런 부정적 의미 때문인지 대부분은 루저에게도, 루저물에도 손사래부터 치고 본다. 근데 나는 루저물이, 루저들이 참 좋았다. 그들의 찌질함이 나를 안심하게 하는 건지, 아니면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런 무모한 도전을 동경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늘 매력적인 세계,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곤 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우주를 동경하던 난바 뭇타, 난바 히비토 형제 중 형 뭇타는 ‘루저’에 가까운 인물처럼 비친다. 동생 히비토는 어릴 적 형제의 약속대로 2025년 현재 우주비행사가 되어 일본인 최초 달표면 장기 체재 승무원으로 선발됐다. 그에 반해 31살 뭇타는 잘 다니던 자동차 회사에서 상사를 머리로 들이받고 단숨에 잘려 현재는 무직 상태. 본가로 돌아와 보니 부모님은 아들의 처연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처럼 명랑한 기운으로 넘실댄다. 덕분에 뭇타 또한 안심할 무렵, 매일 디저트로 나오는 딸기 개수도 어째 자기만 2개 적고, 조각 케이크의 각도도 유독 자기 것만 고작 22도에 불과해 포크로 건들면 툭 쓰러질 정도다. 자극을 받아 재입사를 위해 열심히 뛰어보지만 상사를 들이받았다는 소문은 이미 업계에 파다한 상태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주형제>는 한심한 청춘을 이야기하는 만화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뭇타가 JAXA(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의 신입 우주비행사 모집 서류 전형 합격통지서를 받아든 이후부터는 패배주의를 딛고 일어서는 도전과 성공의 드라마가 시종 뭉클하게 이어진다.
세계에서 몇 명 되지도 않을 직업인 우주비행사라는 직업에 비한다면, 분명 현재의 뭇타는 루저에 가까울지 모른다. 훗날 ‘너의 적은 누구냐’는 교관의 질문에 ‘언제나 나’였다고 대답할 만큼, 뭇타는 자신을 가리켜 태생부터 불운했다 여기며 늘 ‘나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생각과 우선 맞닥뜨리곤 한다. 1993년 10월 28일생인 뭇타는 우리에겐 도하의 기적, 일본인에게는 ‘도하의 비극’으로 일컬어지는 날 태어났다. 1994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마지막 순간 본선 진출팀이 뒤바뀐 순간, “일본 전체의 탄식과 함께 태어난 몸”이라는 얘기다. 말하자면 “그 시점에서 ‘승리 없는 탄식 인생’이라고 정해진 거야.”라는 게 뭇타의 패배주의의 근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 히비토는 뭇타가 태어난 지 3년 후에 태어난 1996년 9월 17일생. 즉, 노모 히데오가 메이저리그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영광의 날에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시작부터 불운과 강운으로 선을 그은 건 단순히 형제의 일방적인 추락과 상승을 암시하기 위함이 아니다. 앞서 꿈을 이룬 동생의 뒤를 좇아 우주비행사의 꿈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뭇타에겐 히비토와는 전혀 다른 매력과 능력이 잠재해 있다. 뽀글거리는 곱슬머리에 얼핏 멍청한 얼굴을 한 뭇타는 보통의 사람들과 같다. 그는 우주비행사가 된 동생을 염려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뿐만 아니라 때때로 질투하기도 하고, 질투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는 등 보통 사람들의 섬세한 감정을 그대로 대변한다. 반면 히비토는 뭇타의 표현처럼 평소에는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꿈을 확신하고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돌진하는 능력 또한 탁월한 천재형 인간이다. 여기에 강운까지 따른다. 천재형 인간인 동생과는 달리 뭇타는 늘 세심하고 신중해 고민에 빠지기 쉬운 성격인지라 쓸데없는 걱정 또한 많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지만 늘 이런 저런 자격지심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그만의 선행 과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덕분에 그는 실패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또 상상력도 뛰어나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툭툭 내놓기도 한다. 비극에 익숙하다는 자신의 말과는 달리 지나친 좌절 또한 금물임을 잘 알고 있다. 트럼펫으로 다져진 폐활량이나 ‘공중 주판’으로 대변되는 암산력,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능숙히 처리하는 멀티태스킹 등은 뭇타가 가진 능력 중 가장 소소한 것들에 불과하다. 뭇타는 살면서 저절로 다져진 이러한 능력들을 계속되는 시험과 평가, 수행을 통해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자신의 꿈에 안착하는 데 조금씩 동원할 따름이다. 그의 중요한 능력은 뭇타라는 매력적인 캐릭터 그 자체에 전부 담겨 있다. 뭇타의 캐릭터는 <우주형제>를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다.
그러나 동생인 히비토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뭇타의 캐릭터도 성립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어딘지 좀 모자라 보였던 히비토는 자라면서 점점 형을 능가해 간다. 형으로서 언제나 동생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뭇타는 공부엔 젬병이었던 히비토에게 공부를 가르칠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불행히도) 히비토의 성적이 더 좋아졌다. 어렸을 적 뭇타는 히비토를 향해 “(너는) 옛날부터 ‘꼭꼭’이라고 가볍~게 말해버리지만, 세상엔 ‘꼭’이란 없는 게 아닐까.”라고 핀잔을 준다. 이에 히비토는 말한다. “그런가. 세상에는 ‘꼭’은 없을지도. 그치만 괜찮아. 내 안에 있으니까.” 히비토는 그 말처럼 ‘꼭’ 우주비행사가 됐다. 형으로서 동생에게 ‘네 꿈은 이뤄질 거야, 포기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해줬어야 하지만, 현실은 동생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는, 조금은 모자란 형이다. 그러나 히비토는 형 뭇타가 반드시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을 거라 마음속 깊이 확신하고 그를 응원한다. 뭇타는 그런 히비토를 바라보며 안주하고 싶을 때마다 동생과 함께 달에 서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때때로 그런 형이 자신보다 앞서 가는 동생의 등을 미는 것처럼 보인다. 생김새도 성격도 전혀 다르지만 같은 꿈을 가진 형제는 늘 형제애를 잊지 않은 채 라이벌이자 동료로서 우주로 향하는 각자의 길을 놓는다.
<우주형제>의 또 다른 원동력은 뭇타를 비롯해 우주비행사 지원자들에게 주어진 흥미로운 과제들에 있다. 히비토의 난관이 달에서의 임무 수행 중 벌어진 사고로 구현된다면, 뭇타의 향상심은 JAXA 시험을 통해 드러나며 극을 주도한다. 각종 신체 능력 테스트로 구성된 1차 시험이 끝나고, 2차 면접 시험부터 면접자들은 의식하지 못한 사이 자신의 모든 것을 면접관들에게 낱낱이 고해바치게 된다. 면접 시 면접자가 착석한 의자의 나사를 조금 풀어놓고 이에 반응하는 정도를 가지고 성향을 판단하는 건 약과 중의 약과다. 창이 가려진 버스를 타고 알 수 없는 장소로 이동하면서 시작되는 3차 시험은 5명이 한 팀이 되어 폐쇄 공간에서 2주 동안 생활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공간 내 모든 규칙은 팀원들끼리 결정하고, 밖에서는 이들의 행동을 철저히 관찰한다. 때때로 일부 참가자들에게 ‘그린카드’라는 비밀 지령을 내려 일부러 참가자들의 결속을 해치기도 하고, 온통 흰색으로 이루어진 퍼즐을 맞추거나 러닝머신에서 뛰면서 암산을 해야 하는 과제들을 시시때때로 쥐어주며 자연스레 팀 내 경쟁을 부추긴다. 게다가 마지막 날엔 참가자들 스스로 정한 방법에 따라 2명의 합격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 3차 시험의 골자이기도 하다.
과연 다양한 과제를 통해 JAXA가 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뛰어난 리더십이기도 하고,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보고 싶었던 건 바로 우주비행사로서 동료에게 의지하는 마음임을 자연스레 유추할 수 있다. 때문에 다른 팀이 투표 등으로 두 명의 최종 합격자를 선출한 데에 반해, 뭇타의 팀은 함께 생활한 결과 5명 중 누가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어도 납득할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한 바, 뭇타의 제안에 응해 가위바위보로 최종 2명을 결정하기도 한다. 물론 그 결과 또한 예측불허. 뒤이은 최종 시험은 평범한 면접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절묘하다. 최종 면접까지 마치고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면접자들을 위해 마련한 술자리에서 선배 우주비행사들은 후보생 한 명 한 명을 면밀히 관찰한 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로 삼을 만한 사람을 최종 선정한다. 어떤 서바이벌 오디션도 이만큼 흥미롭진 못할 것이다.
자연히 <우주형제>는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가진 사연을 면밀히 조명한다. 언제나 직설적인 말투와 도전적인 행동으로 상대를 곤란하게 하는 후루야가 작은 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어떻게 우주비행사를 꿈꾸게 되었는지. 뭇타가 연정을 품은 미녀 여의사 세리카가 어떤 이유로 우주비행사를 꿈꾸게 되었는지. 50대의 나이로 지원한 후쿠다가 꿈꾼 우주의 꿈은 무엇인지. 비단 우주비행사 지원자뿐만이 아니다. 난바 형제가 어릴 때부터 교류하던 천체학자 샤론, JAXA와 NASA 소속 교관 등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가진 우주에의 꿈은 때론 담백하게, 때론 뜨겁게 극의 구석구석을 탄탄하게 메운다.
<우주형제>의 마지막 원동력은 여기에 있다. 뭇타라는 중심 캐릭터를 포함해 캐릭터 하나하나, 과제 하나하나를 엮어 한 편의 드라마로 완성하는 것이야말로 <우주형제>를 이끄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자 결정적 매력이다. 그것은 뭇타가 회사에서 잘려 좌절하고 있을 무렵 동생에게 받은 메일로 어렸을 적 형제의 약속을 들추고 그로 인해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첫화부터 시작해 늘 그렇다. 특히 난바 형제의 어릴 적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인 샤론 박사와의 여러 추억은 더욱더 그렇다. “고민될 땐 말야, ‘어떤 게 올바른지’ 따윈 생각하면 안 돼. 그러다가 해 진다. 머리로 생각 안 하면 돼. 답은 더 아래. 자, 뭇타! 아래로, 아래로. 너에 대해서라면 네 가슴이 알고 있는 법이야. ‘어떤 게 즐거운지’로 결정해.”와 같은 옛 기억에서 뭇타는 현재의 해답을 얻는다. 일본인 최초로 달에 서는 동생 히비토를 바라보며 뭇타는 기쁘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시샘하는 감정이 공존하는 불편한 마음을 느낀다. 그렇다면 히비토가 달에 착륙했을 때 뭇타의 얼굴은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뭇타의 얼굴을 보여주진 않지만, 뭇타가 말하길 그것은 “둘 다다.” 우주비행사 후보생이 되어서도 늘 최악의 교관과 맞닥뜨리지만 그들의 진심을 이끌어내는 뭇타, 이를 통해 완성되는 교관들과의 우정 또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우주형제>는 언제나 일정한 온도를 품은 갖가지 드라마들을 직조함으로써 ‘꿈의 드라마’라는 큰 줄기를 완성한다.
우주비행사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무대에조차 서지 못한 배우”인 뭇타가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고멀었다. 그러나 뭇타는 스스로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길로 항하면서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변화시키는 기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제 그는 “최하위든 뭐든 상관없다. 꼭 결승점까지 걸어간다. 1위와 최하위의 차이 따위 별 거 아니야. 결승점까지 들어가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의 차이에 비한다면.”이라 외치며 묵묵히 나아간다.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를 통해 바라본 불가능의 영역이란 이토록 살갑다. 작품에 등장하는 기관이나 장치, 기계, 시스템 등은 모두 실재하거나 이를 기반으로 창작된 만큼 주도면밀한 취재에 의해 완성된 <우주형제>는 근미래라는 시간적 배경을 결코 자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엄청난 리얼리티는 단지 리얼리티로 머물 뿐이다. <우주형제>는 단 한 순간도 인물과 배경의 주객전도 없이 뭇타를, 사람을 통해 우주를 향한 꿈을 그린다. 멋진 만화, 훌륭한 만화를 넘어 참으로 가슴 벅찬 만화다.
필진 소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신문방송학과 졸업. DVD2.0, FILM2.0, iMBC, BRUT 등의 매체에서 줄곧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며 먹고 살았다. 『위대한 망가』를 썼고, 『매거진 컬처』『젊은 목수들』을 공저했으며,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을 번역했고, 『좀비사전』『탐정사전』을 기획, 편집했다. 현재는 프리랜스 라이터 겸 프리랜스 편집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출처 :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1576
윤태호 작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