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해도 괜찮아] #10 『달이 속삭이는 이야기』
.김달 지음, 허니앤파이, 프롤로그 포함 25화 연재중(단편선), 회차 당 1꿀잼(2화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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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갔다 와서 / 너무 피곤해서 / 자려고 누웠는데
달이 / 속삭이기 시작했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 달의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김달의 데뷔작 『달이 속삭이는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은 일과 후의 한 때를 운율 있는 문장으로 환기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김)달이 앞으로 독자에게 속삭일 이야기는 ‘따듯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때로는 조금 잔인하기도 한’ 길어봤자 두 화 정도, 보통은 한 편에서 완결되는 자그마한 것들이다.
첫 화 ‘여덟 번째 사랑’부터 이야기는 심상치 않다. 친구의 죽음에 오열하며 시신을 매장한 다음, 다시 땅을 파고 친구를 꺼내는 사내의 이야기다. 섬뜩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분위기는 신비스러운 쪽에 가깝다. 눈물을 흘리며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던 이가 해가 지면 묻어버린 친구의 주검을 파내는 이유는 친구 ‘잭’의 환생을 위해서다. 그가 사랑했던 잭은 높은 곳을 싫어했고, 다시 태어난 잭은 사과를 좋아했다. 일곱 번째로 다시 태어난 잭은 높은 곳을 좋아했다. 잭은 어디까지나 잭이지만 또 명확히 하자면 잭이 아니기도 했다. 친구의 죽음에 흘리던 그의 눈물도, 무덤을 파고 새로 태어난 ‘잭이 아닌 잭’을 보며 짓는 미소도 모두 진짜였다.
이게 무슨 이야기지? 싶기도 하다. 무언가 시사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특별한 의미 없는 작은 이야기인 것도 같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이야기는 『달이 속삭이는 이야기』의 테마를 가장 명확하게 나타내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유의미와 무의미 사이, 감정의 능선과 골짜기 사이, 흑과 백의 사이… 이어지는 이야기들 역시 각자가 가진 사고방식과 감정에 따라 해석의 갈래가 나뉘는, 혹은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힘을 빼고 단순하게, 평면적으로 그린 그림체까지 곁들여지며 ‘출제자의 의도’나 ‘작가의 의도’를 굳이 생각하지 말고 본 대로만 느끼고 간직하고 있으라 말하는 듯하다.
각각 이야기의 얼개 역시 여지를 열어두지만 필요한 만큼만 조밀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하면(‘기계 이야기 – 시간과 함께’ 편에서 고다 요시이에의 『기계 장치의 사랑』이 연상되듯),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의 제목만 가지고 와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던가(‘빨간 두건’ 편), 전래동화나 민담 따위에서 캐치한 재미있는 소재로 이야기를 꾸린다(‘도넛과 도깨비’ 편). 이야기는 거창하게 뻗어가지 않고, 조곤조곤한 속삭임에 그야말로 걸맞은 아기자기한 사이즈로 인류의 역사나 미래의 안드로이드, 요정이나 외계인, 인생과 환상을 말한다.
.수없이 많은 만화를 들여다보면 이 작품은 이것과 비슷하고, 저 작품은 어떤 작품과 세계관이 맞닿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달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김달은 여러 작가의 면면이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누구와도 닮지 않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꾸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김달은 여느 사사롭고 지나쳐도 충분한 것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끄집어 내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작가다. 독자를 옥죄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건 거대한 이야기에서 욕심을 덜고 사심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잔잔한 달빛처럼 스며들어 몇 번이고 다시 꺼내보고 싶은 이 이야기들을 놓쳐 흘려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결제해도 괜찮다.
필진 소개
출처 : 에이코믹스 주소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23963
윤태호 작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