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해도 괜찮아] #09 불편하고 행복하게
『불편하고 행복하게』, 홍연식
2012(단행본/ 재미주의 펴냄, 전 2권) ~2014(웹버젼/ 28화 연재 중, 레진코믹스)
늦여름, 한 부부가 이사를 결심한다. 시끄러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작품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근교를 찾는 부부. 만화와 그림책을 집필하는 창작 부부인만큼 굳이 서울살이를 감내할 필요가 없거니와 그럴 여력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도 포천 죽엽산 산자락에 위치한 외딴 집에 세를 얻어 시골살이를 시작한 부부는 불필요한 세간을 불태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두 손을 꼭 맞잡으며.
전원생활은 가을 단풍처럼 낭만적으로 시작한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리틀 포레스트』가 홀홀 단신의 단조롭고 차분한 일상이라면, 홍연식 작가의 『불편하게 행복하게』는 부부가 주고받는 정다운 소꿉놀이 같은 일상이다. 귀농만화니 농촌만화니 이러쿵저러쿵 해도 결국은 둘 다 외딴 곳에서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는 자립만화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출발한다.
이야기는 사계를 마디마디로 전개된다. 정점은 ‘겨울’. 무려 13개 에피소드를 할당하고 있는 겨울 편은 작품 제목의 ‘불편하고’가 죄다 모여 있다. 춥고 배고픈데 성가신 등산객의 발길마저 끊겨 무섭기까지 하다. 학교와 시내를 오가는 교통편도 여간 길고 고단한 게 아니다. 연탄 난로의 낭만으로 살짝 온기가 감도는 듯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먹고사니즘 앞에 남편 지훈의 멘탈이 급격히 무너져 내린다. 자립을 노래하던 호기는 고립으로 격하되고, 참았던 눈물을 보이며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죠?” 말하는 아내 앞에서 산속 생활에 대한 무력감을 넘어 분노마저 느끼게 된다.
분노는 몰아치듯 솟아오르고, 모두 태워버릴 듯 거센 불길이 인 뒤, 한 줌의 재로 후두둑 낙하한다. 감정의 격류를 따라가는 것이 ‘겨울’ 에피소드의 백미이고 출판만화가 아닌 웹툰 『불편하고 행복하게』의 호흡으로 느낄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어느 보험사의 광고처럼, 무력함에 남편 지훈이 어른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다시 아이로 회귀하며 감정을 폭주시키는 장면은 압권이다. 못나도 그렇게 못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끝에 조용히 터져 나오는 “내가 졌다.”는 흐느낌은 숭고함마저 풍긴다.
겨울 이후는 죽엽산 생활도 ‘행복하게’ 살랑이는 나날의 연속이다. 흑백 만화지만 근경과 원경을 오가며 밀고 당기고, 자라나는 작물과 한여름의 느긋한 물놀이를 통해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텃밭에는 야채뿐만 아니라 닭들이 새롭게 합류하며 점차 영역을 넓혀간다. 이웃도 주인도 오가며 부부의 자급자족 생활을 응원한다.
하지만 두 번째 가을, 텃밭이 사라진다. 집 주인 가족이 어머니 휴양을 위해 텃밭을 밀고 그 자리에 조경 수목을 심는다는 것. 일 년간 땀 흘려 일구어 온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은 부부는 망연자실해 한다.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셋방살이란 주인의 변죽에 따라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약자의 처지인 셈이다.
부부는 또 다시 ‘이사’를 결심한다. 늦여름 죽엽산을 찾았던 것처럼. 그 때와는 다르게 좀 더 단단하고 구체적인 각오로 임한다. 아직은 유료 결제로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미 작품은 두 권의 단행본으로 완성되어 있지만, 웹툰 버전의 다음 내용을 좀더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도 좋다.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꽤 긴장되기 때문이다.
텃밭은 잃었지만 부부는 작품을 남긴다. 그것도 그림책 공모전에서 당당하게 대상을 수상한 순수 창작물을. 작품은 단순히 텃밭을 통한 자급자족 생활만을 조명하진 않는다. 오히려 텃밭을 통해 한 자리에 머물며 삶을 바라보고 소박한 삶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힘을 조명한다. 텃밭을 잃으면 어떻고, 또 쫒겨 나면 어떠하리. 이미 내 삶의 중심을 차지한 사람들은 쫄지 않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다. 『불편하고 행복하게』 명랑 아내의 명대사로 작품의 클로징과 2015년의 봄을 즐겁게 기다린다.
“하지만 우린 우리니까! 우린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필진 소개
출처 : 에이코믹스 주소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22795
윤태호 작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