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채널, 새로운 소재로 흥미를 더한 웰메이드 성인 웹툰
'그녀의 채널'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성인 웹툰입니다. 시공간적 배경은 서사 매체의 소재와 갈등 구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죠. 가끔씩 말로만 조선시대, 무협·판타지 세계, SF를 표방할 뿐 속내용은 현대물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그런 유감스러운 작품들도 있는데, 이 웹툰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SF는 아니고 - 소프트한 SF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아요 - 인터넷 방송, 그중에서도 노골적인 19금 여캠과 바짝 다가온 미래의 기술들을 적절히 섞어 재미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핵심 주인공은 두 명이에요. 많은 서사 매체가 그렇듯 히어로(남주인공) 히로인(여주인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자에 해당되는 인물은 증강현실(AR) 기술자 '차진수'입니다. 그런 진수의 최첨단 기술(?)을 탐내며 그를 찾아오는 이가 후자의 인물, '솔미'고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듯 솔미는 여캠 BJ입니다. 그것도 상당히 잘 나가는 인기 BJ에요.
나름대로 실력은 있는 것 같지만 운이 없는지 아니면 세일즈 능력이 부족한지 진수는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던 도중, 어디서 그에 관한 정보를 접했는지 덜컥 찾아온 솔미가 거액의 계약금을 건네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솔미의 의도란 아주 명료한데 진수의 기술력을 활용해 보다 새롭고 자극적인 방송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함이에요.
AR 기술과 성인방송의 결합은 현재를 살아가는 제가 보기에도 꽤나 흥미롭습니다. 작품에서 직접 등장하는 경우로 예를 들자면, 솔미가 옷을 홀딱 벗고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를 걷는데 그들의 눈에는 솔미가 평범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여요. 반면에 방송을 통해 솔미를 보는 시청자들은 사실대로 솔미의 알몸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습니다. 혹은 후원을 한 시청자들에 한해 솔미의 몸에 직접적인 자극을 가할 수도 있고요. VR처럼 생긴 기기를 뒤집어 쓰면 솔미를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는 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성인 웹툰으로서 '그녀의 채널'이 주는 흥미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방송 그 자체에요. 근미래의 한국은 인식 차원에서든 법적인 규제든 성적으로 제법 개방적인 나라가 된 모양입니다.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자위를 하거나 아예 섹스를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덕분에 19금 여캠 방송에 수위 제한 따위는 없습니다. 작품 속 시청자들이 누리는 시청각적 자극을 현실의 독자들 또한 비슷하게 공유할 수 있는 셈이지요.
다른 하나는 AR 엔지니어로 고용됐지만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한 - 혹은 그렇게 변해가는 - 주인공 '진수'와 여러 여캠 BJ들의 관계입니다. 이런 만화에서 거의 대부분 그렇듯 진수는 어디까지나 AR 기술자이지만 절륜한 정력의 소유자이며, 외모나 성격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명목이야 어쨌든 진수는 웹툰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솔미와 이런저런 야릇한 장난을 포함해서 성관계를 맺기도 하고, 솔미가 소속되어 있는 크루의 다른 여자 BJ들과 비슷한 일들을 하게 됩니다. 솔미의 언급에 따르면 방송 집단의 높으신 분들이 그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가장 먼저 등장하는 솔미를 비롯해 BJ들은 꽤나 민감한 체질입니다. 사실 현실에서는 직업적 한계 때문이라도 방송에서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실제로 흥분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지만, 이건 만화니까요. 아니면 그런 성향이 있는 여자들만 뽑았는지도. 어쨌든 성인 방송을 업으로 삼는 여자들은 프로의식 그 이상으로 적극적이며, 매력적이며 능력있는 - 적어도 그렇게 인식되는 - 주인공 진수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건강한 성인 남성인 진수도 얼굴과 몸이 경쟁력인 미인들의 대쉬를 싫은 척하면서도 마다하는 법이 없고요.
그런 이야기입니다. 모범적이고 안정적인 구조에요. 장르적인 허용을 넘어서고 나면 이야기의 흐름도 부드럽고 개연성도 모나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작화는 레진 상위권의 성인물답게 매우 준수한 수준이고요. 여기까지는 뻔한 얘기인데 리뷰어 개인적으로는 소재에 대해 더 칭찬하고 싶습니다. 미래의 기술과 성인 방송의 조합. 여기에 기술 지원으로 자연스레 끼어들어 굿도 보고 떡도 먹는 남자 주인공에 이르기까지. 신선한 소재와 탄탄한 기본기가 더해진 웰메이드한 작품이에요. 장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면 크게 호불호가 갈리지도 않을 테고, 대다수의 독자들이 재밌게 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