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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의 소녀>, 천재를 구원한 범재

박성원 | 2018-03-09 11:31

[웹툰 리뷰]새장의 소녀 - koer


[웹툰 리뷰]새장의 소녀 - koer


'청은'은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입니다. 미술을 전공하고 있고,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에요. 시험 때 그녀를 시기한 다른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몰래 그림을 엉망으로 망가뜨려 놓아도, 얼마 남지 않은 사이에 금세 새로운 그림을 덧칠해 그려 뚝딱 완성시켜 버립니다. 게다가 그런 엄청난 일을 벌여도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걔라면 그럴 수 있지'라고 납득하게 되는, 소위 말하는 재능을 타고난 천재입니다.


[웹툰 리뷰]새장의 소녀 - koer

그런 청은은 몇 년째 그리워하며 꼭 만나고 싶은 상대가 있습니다. 청은이 사고를 당해 쓰러져 있을 때 - 구체적인 정황은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 모두의 방관 속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구해준 어떤 소녀인데요. 청은은 그 소녀의 인상만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 정확한 신원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2년이나 되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자신을 '구원'한 소녀를 상상하며 그녀의 몽타주를 그려왔을 뿐이죠.


정체불명의 소녀는 이야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등장합니다. 소녀의 이름은 '유미'였고, 청은과 같은 예술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죠. 둘의 만남도 딱히 드라마틱하지는 않아요. 과거의 은인과의 운명적인 만남보다는 그 이후에 집중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청은은 유미와 만나게 되고, 유미가 2년 전 자신을 구한 소녀라는 점을 확인했으며,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듭니다. 단순히 연애 감정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홀딱 빠져버려요. 


[웹툰 리뷰]새장의 소녀 - koer

여기서 잠깐. 제목에서 언급한 '천재'는 당연히 청은입니다. 그렇다면 범재는? 물론 이 만화에는 여러 명의 범재가 등장합니다만,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역시 유미겠죠. 짐작하신 대로 청은이 전형적인 타고난 재능의 천재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유미는 그 반대입니다. 그리고 유미는 청은의 재능과 천재성을 순수하고 긍정적으로 지켜보지만은 않아요. 청은이 무심코 자신의 재능과 위치를 인지하지 못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보여준 반응을 감안하면, 오히려 그 반대겠죠.


유미와 청은이 다니고 있는, 그리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고등학교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그리 유쾌한 학습공간은 아닙니다. 영재반과 일반 학급이 나뉘어져 있고, 매 학기마다 시험을 쳐서 학생들을 반으로 갈라놓는 것까지는 좋아요. 문제는 영재반과 일반 학생들은 입는 옷부터가 다르고(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미술 공부에 필요한 자재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은 영재반뿐이며, 공모전과 같은 업계의 정보에 대한 접근성마저 차별됩니다. 청은은 유미가 속으로 생각한 표현을 빌리자면 '꽃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환경을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것 같지만, '범재'로서 그 격차와 환경의 차이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유미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청은은 유미가 간을 내어달라고 하면 그대로 떼어줄 것처럼 과거의 은인에게 홀딱 빠져있고, 영재반인데다,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재능을 자랑하는 천재입니다. 그리고 미술계에는 인맥을 잘 타고나면 여러 가지로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나 봐요. 청은의 감정을 눈치챈 다음에도 처음에 유미는 청은을 그저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인식하고 밀어내려 할 뿐이었지만, 일반 학급의 범재로서 더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엿보이자, 금세 생각이 바뀌고 이는 곧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청은을 어떤 식으로든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거죠. 겉으로는 그녀에게 완전히 반해버린 청은에게 적당히 당근을 던져주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요. 앞으로 벌어질 둘의 관계를 작품의 제목이 잘 함축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새장의 소녀'. 새장에 갇혀있는 소녀와 밖에서 지켜보는 또다른 소녀.


물론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청은과 유미, 둘이 전부는 아니에요. 유미와 마찬가지로 범재이면서 청은을 이용하지 않고, 친구로서 든든하게 지켜보는 '선화'라든지(그녀는 유미를 몹시 경계합니다), 리뷰글을 쓰는 시점에서 마지막화에 등장한 사나운 눈매의 또다른 여학생이라든지. 절대로 순수해질 수 없는 환경에 던져진 소녀들의 관계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자못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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