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가능하세요?>, 밝고 가볍다
'일상생활 가능하냐'는 물음은 인터넷 유행어 내지는 은어의 일종이죠. 기본적으로 유행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이를 서사 매체의 제목으로 삼는 것은 그리 영리한 선택이 못 되지만, 일상의 어휘나 표현에서 파생된 경우에는 유행이 지나도 본래의 의미가 남아있으니 괜찮습니다. 이 웹툰은 꽤나 본격적인 19금의 성인물인 만큼 일상생활이 가능하냐는 물음도 다분히 성적인 맥락을 품고 있고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니는 물음도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긴 합니다.
'세영'은 '진우'가 다니던 회사에 새로 들어온 신입입니다. 진우가 세영의 직속 사수가 되었고요. 둘의 첫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는데, 진우 혼자 쓰던 사택(社宅)에 세영이 들어오면서 하필이면 층수를 착각, 진우가 자위행위에 열중하는 모습을 정면으로 목격하게 됩니다. 사적으로 있었던 유감스러운 일들과는 별개로 둘은 공적으로 엮인 관계, 바로 다음날부터 얼굴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어쩌면 트라우마로 남았을 법한 그런 과격한 만남에도 세영과 진우는 빠르게 가까워지는 데요. 이는 히로인인 세영의 독특한 개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제목에서 일상생활이 가능하냐고 묻는 대상이 바로 그녀인데, 스스로가 인정할 정도로 세영은 성욕이 왕성하고 시도때도 없이 야한 상상을 떠올리며, 출근길에 화장실에 들러 자위를 하는 게 일상인 그런 여성입니다. 반면에 진우는 한창 때의 남자답게 야한 동영상을 보며 자위를 하거나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 후배에게 관심을 가질지언정 일상 생활을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고요.
그 다음에는, 특별히 짚고 넘어갈 정도로 중요한 스토리는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런 내용이 필요할 만한 웹툰도 아니고, 독자들도 딱히 바라지 않을 테고요. 진우와 세영의 만남 이후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세영의 망상이 그려내는 살색 가득한 19금의 장면들이고, 이 리뷰글을 쓰는 시점에서 최신화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 현실이 되기도 했습니다.
독자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좋을 -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충분히 만족할 - 작화 부분을 차치하고, 인상적인 특장점이 있다면 두 인물이 가까워지는 과정입니다. 장르를 생각했을 때 후딱 넘어가도 좋았을 테지만 제법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고 할까요. 젊은 두 남녀가 좋은 직장 동료 이상으로 친밀해지고 육체적으로 관계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려는 티가 많이 납니다. 진우와 세영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시간을 독자들에게 보다 와닿을 수 있도록 묘사하면,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한 몰입감도 분명 높아질 테니까요. 게다가 세영의 성적 망상이라는 편리한 방식으로 그동안의 지루함까지 덜어주는 배려까지. 밝고, 유쾌하고, 야한 데다, 아기자기한 인물들이 귀여운 그런 웹툰입니다.
- 2018 / 03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