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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죄, 스릴러가 가미된 여성향 로맨스

박성원 | 2018-03-02 09:01

[웹툰 리뷰]순결한 죄 - 오계


밤 11시, 야근을 끝내고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나연은 홀로 자위행위를 즐기는 은밀한 취미가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끄러운 쾌감에 흥분하던 그녀에게 한 잘생긴 청년이 접근합니다. 그는 나연에게 몹쓸 짓을 하거나 신고하는 대신 명함을 한 장 건네는데요. '당신에게 꼭 어울리는 곳'이라는 말과 함께입니다. 명함을 들고 나연이 찾아간 곳의 이름은 'peach puff'. 일종의 회원제 비밀 클럽으로, 성인들이 모여서 규칙을 정한 다음 바깥 사회보다 자유롭게 성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다만 삽입 행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표면적으로 난교 클럽은 아니고요. 몹시 친밀한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야한 장난의 수위를 대폭 올렸다고 보면 좋을까, 그 외에도 나름대로 명시적인 규칙과 암묵적인 관례가 자리잡고 있는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웹툰 리뷰]순결한 죄 - 오계

나연은 peach puff에 가서 그녀를 초대한 청년 '노아'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가 사귀는 인연이란 주로 (잘 생긴)남자들이에요. 작품의 초중반은 나연이 피치 퍼프에서 적응하는 과정,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새 회원으로 겪는 온갖 야한 일들을 다루고 있고, 그 와중에 나연에게 매력을 느낀 남자 인물들이 다가오기도 하지만, 정작 나연은 노아에게 푹 빠져 있습니다. 노아는 척 보기에도 무척이나 잘 생겼고 젠틀한 성격이라서, 나연 뿐만 아니라 퍼프의 여자들에게 가장 많은 총애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인트로만 보면 수위가 높은 여성향 역하렘 정도로 보이겠지만, 내용이 진전될수록 peach puff라는 곳의 성격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납니다. 그때부터는 나름대로 본격적인 스릴러에요. 작품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지죠. 잘 생기고 미스터리한 매력을 뽐냈던 노아는 모든 문제의 핵심에 속한 인물로, 생각도 못했던 아픔을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기도 합니다. 노아에게 빠진 나연이나 그녀가 사귄 주변 인물들 또한 이러한 문제에 점차 휘말리게 됩니다. 이 문제라는 건 단순한 사랑 싸움 따위가 아니라 불법이 판치고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그런 심각한 사안이에요.


[웹툰 리뷰]순결한 죄 - 오계


'순결한 죄'는 레진코믹스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TOP 100에서 5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를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확실히, 인기를 납득할 수 있는 짜임새 있는 수작입니다. 기본적인 인물 간의 구도나 전개 방식이 크게 특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이나 긴장의 완급조절이 무척이나 뛰어나고, 장르적으로도 여성향·역하렘·스릴러에 이르기까지 뭐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습니다. 노아와 다른 남자들과의 달달한 로맨스, 노아를 둘러싼 위험천만한 미스터리, 여기에 심심치 않게 나와주는 수위 높은 성애 장면까지. 균형이 잘 잡힌 인물들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적당히 속물적이면서도 선을 지킬 줄 알며, 올곧은 심성의 주인공 나연, 노소(老小)를 가리지 않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노아, 그가 아쉬운 독자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전혀 다른 매력의 서브 남자 조연들까지.


비유하자면 모범생 같은 작품입니다. 스릴러적 요소가 없었다면 저로서는 조금 아쉬울 수 있었을 테지만, 새로운 요소를 과감히 그러나 훌륭하게 조화시킴으로써 기존의 여성향 로맨스 팬들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장르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을 낮추는데 성공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부담없이 추천할 만한 그런 웹툰입니다.


- 2018 / 03 / 02 

P.S.

대부분의 인물들은 형형색색의 눈과 머리색을 뽐내고 있습니다만 작품의 배경은 어디 유럽이나 북미가 아니라 한국입니다. 만화적 허용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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