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나의 여왕, 완성도 높은 성인웹툰
주인공 채준은 부잣집의 아들이지만 골치아픈 지병을 앓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일종의 불면증인데, 특이하게도 여자와 섹스를 하고 나면 자들 수 있는 그런 병입니다. 당연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생긴 것은 아니고, 채준의 지병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겪은 트라우마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대략 짐작할 수 있듯 채준의 집안은 화목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고, 그러던 어느 날 경제권을 쥐고 있는 - 또한 트라우마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 아버지와의 불화로 인해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무일푼에 일신의 능력도 변변치 않은 채준은 금수저에서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은 신세가 되어버렸지요.
작중에서 '여왕'이라고 불리는 또다른 인물이 있습니다. 그녀는 만화가, 그것도 성인 만화가인데 식구가 여럿 달린 화실을 책임지는 능력자이기도 해요. 여러 가지로 매력이 넘치는 여성인 그녀는 작중에서 묘사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한 열정과 과감성을 지닌 프로페셔널입니다. 여왕과 채준은 우연한 계기에 야밤의 놀이터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여왕은 채준이 모래바닥에 낙서하는 모습을 보고 그림에 대한 재능을 눈치채고 그를 화실로 이끌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채준의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여왕은 이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고요.
물론 채준은 처음에 여왕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당장 잠을 잘 곳도, 밥을 먹을 돈도 잃어버린 채준은 집에서 쫓겨난 다음 어쩔 수 없이 그녀의 화실을 찾게 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지요.
그 다음의 내용을 리뷰에서 줄줄이 읊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겠죠. 이 글을 읽고있는 독자들께는 그냥 한 번 가서 직접 확인하시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대단히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소재나 줄거리는 아니지만, 제가 봤던 성인 웹툰들 중에서 아마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안정적이고 유장한 전개, 그리고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호불호가 거의 갈리지 않을 만한 뛰어난 작화와 우수한 19씬 묘사는 기본이고, 핵심 주조연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풍부하고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수작이에요. 주인공 채준이 가진 과거와 지병, 여왕의 사정과 화실 사람들을 포함해 그녀와 연관된 또다른 인물들. 캐릭터 하나하나가 잘 살아있고 이들이 부딪히고 충돌하며 벌어지는 갈등을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히로인인 '여왕'의 매력도 빼놓을 수가 없겠지요. 주인공은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반대로 히로인은 성인 웹툰의 히로인으로서 갖춰야 될 것들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유의 개성과 매력까지 뽐내고 있는, 모범생 같은 캐릭터입니다. 길게 얘기할 것도 없이, 초반 5편 정도만 살펴보시면 금세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을 겁니다.
- 2018 / 06 /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