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이렇게나 험한 직업
웹툰 '택배기사'에는 제목처럼 택배기사가 다수 등장하고,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직업의 본질은 2018년 대한민국의 택배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고객의 물건을 원하는 장소로 배달하는 거죠. 문제는, '택배기사'의 세계는 21세기의 초입과 달리 완연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러니까 멸망 이후의 세계입니다. 방독면을 쓰지 않으면 실외로 나갈 수 없고, 사람들은 일종의 가상현실에 접속하여 일을 하죠. 게다가 모든 국민들은 '시민권'을 가지고 보편적인 권리를 향유하는 일반 시민들과, 그렇지 못한 난민들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택배기사의 역할이란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거리를 가로질러 물건을 배달하는 겁니다. 주요 위험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난민들이죠. 이들의 (거의 유일한)생존법이란 배송되는 택배의 물자를 탈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택배기사들은 이러한 위협을 떨칠 만한 무술 실력을 필요로 합니다.
'슬아'와 '시월' 자매는 각각 일반 시민과 난민 출신입니다. 언니인 슬아는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시월을 동생으로 삼아, 그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죠.(물론 불법적인 수단입니다) 오랜 노력 끝에 브로커들을 통해 시월이 시민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이건 더 큰 음모를 숨기기 위한 속임수일 뿐이었고, 슬아는 납치당하며 시월은 죽을 위기 끝에 간신히 살아남습니다. 이제 혈혈단신이 되어버린 시월은 사라진 언니를 되찾기 위해 '택배기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온갖 역경과 고난을 헤쳐나가게 되죠.
줄거리의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물론 이들 자매가 전부는 아니에요. 그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죠. 택배회사 내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지만, 난민 출신인 청년, 은퇴한 택배원 출신인 지부장님, 도시 바깥에서 살아가는 난민 무리의 귀신같은 칼잡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젊은 여자들을 납치하고 있는 괴한들 등등.
세계는 단순히 시민과 난민으로 나뉘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음모를 품고 있고, 시월의 언니는 분명히 그 음모의 희생양이겠죠. 세계의 밑바닥에서 이제 막 기어오르기 시작한 시월은 그 음모에 맞서 싸울 운명입니다.
훌륭한 퀄리티의 전투씬, 각자의 자리에서 모순된 현실에 고뇌하는 인물들, 세계의 비밀, 장르적 클리셰를 일부 차용하면서 재미를 확보하는 영리함까지, 여러 가지로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단순히 주인공이 성장하며(강해지며) 나쁜놈들을 때려부수는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또한 빼놓을 수 없고요. 부담없이 추천할 수 있는 수작입니다.
- 2018 / 06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