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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 무심한 일상 속, 나를 쏙 빼닮은 이성을 만나다

누자비어스 | 2016-09-20 08:33

 

 

 

 

이야기 속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완전히 별개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분량, 비슷한 시기 동안 연재된 창작물이라도 시간의 흐름은 천차만별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 속 세계가 - 소위 '사자에상 시공‘ - 있는가 하면, 단지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몇 달에 걸쳐 풀어놓기도 한다. 이런 차이는 작품의 성격이나 주제 의식, 작가의 의도에 따른 방법론의 차이일 뿐 장점이나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웹툰 ‘페퍼민트’는 단 하루의 시간 동안 주인공 ‘체은’이 겪는, 이채로우면서도 담백한 일상을 담아내고 있다. 어쩌면 일상이 아니라 비일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의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다소 독특했던 하루는 아직까지 일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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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체은’은 창작물에 등장하는 여고생들이 보통 그러하듯 매우 민감한 감성의 학생으로, 대단히 큰 문제가 될 정도로 반사회적이거나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지만, 소소한 즐거움에서 삶의 재미를 찾아나가는 모범적인 현대인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존재들에게 크고 작은 불만을 느끼는, 다소 부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이다.

 

가장 먼저 지독하게 덥고 습기찬 여름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제일 치명적인 것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생리의 고통이다. 사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계속되는 통증만큼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가족 관계도 사춘기 소녀들이 흔히 겪는 것처럼 썩 원만하지 못하다. 철없는 남동생 체성은 갖은 망나니질로 체은의 신경을 긁어놓고, 어머니는 엄격한 남아 선호 사상에 입각해 그런 남동생을 싸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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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던, 유이(有二)한 친구인 ‘민영’과 ‘초민’과의 우정도 삐걱거린다. 예전부터 언제나 한 발 체은을 앞서 가던 얄미운 친구 민영. 민영은 그녀에게 있어 콤플렉스와 같다. 키, 생리, 남자친구까지 민영은 뭐든지 체은보다 먼저 ‘성장’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리고 이야기의 전부인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체은은 그저 우울하다. 어른으로서의 관문과도 같았던, 어린 아이가 고대하던 생리는 지독한 불쾌감과 고통만을 안겨줄 뿐이다. 날씨는 최악이고, 가족들은 신경을 긁고, 설상가상으로 방학식 날 만난 민영과 그간 쌓였던 응어리를 토해내며 대판 붙어버린다. 다행히도 극단적인 수준으로 몰려있지는 않은 듯 체은은 방학식을 쌩까고 집에 돌아가지 않은 채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 ‘체성’과 기묘한 만남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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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30회에 걸쳐 24시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그리고 있다는 점인데, 대부분의 분량은 체은의 심리 묘사를 밀도 있게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체은이 처한 상황은 극단적이거나 고도의 전문적인 분석이 필요한 수준은 아니라서, 하루 동안 기분이 푹 가라앉은 내성적인 여고생의 속마음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풀어놓는 행위는, 그런 심리 상태가 된 이유를 설명하는 (지루할 수 있는)과거사와 다수의 반복적 표현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댓글창의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반응들은 여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댓글란의 부정 일색의 반응은 호불호의 영역을 객관적 수준의 문제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은 ‘사람에게서 얻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 풀 수밖에 없다’는 답안을 독자들에게 내놓는데, 비록 고전적이지만 그 답에 이르는 과정은 매우 섬세하고, 부드러운 비유적 묘사에 포장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감정의 과잉이나 극단적인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 절제미와 담백함을 갖추고 있다. 순정만화풍의 그림체나 물 흐르는 듯한 고요한 전개를 싫어하는 취향만 아니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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