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질란테, 사적 제재의 다크히어로
비질란테는 '자경단'을 의미합니다. 자경단이란 국가기관에 생명과 자산의 안전을 위탁하는 대신, 시민들이 스스로 이를 지키고자 나섰을 때 만들어지는 조직이죠. 정작 '비질란테'에 등장하는 건 자경단보다는 사적제재(Lynch)에 가깝지만,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습니다.
주인공 김지용은 경찰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유도·복싱·레슬링을 프로 수준으로 잘하는 데다 이론 수업까지 빠삭한,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죠. 지용은 아마도 아픈 과거로 경찰을 지원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 과거란 어렸을 때 동네 건달이 그의 어머니를 구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입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흔한 경찰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처럼 보일 수도 있겠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용은 만화가 시작하기 무섭게 이 건달을 찾아가 반쯤 죽여놓거든요.(정말 죽었는지 아니면 죽을 만큼만 때렸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습니다)
이 건달은 지용의 어머니를 죽였음에도 그의 생각에 - 그리고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법 감정에 - 예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고, 지용은 직접 그를 응징하지요. 이 과정에서 정의에 대한 깨달음과 감정적인 희열을 느낀 지용은 이제 비슷한 전과자들을 찾아다니며 사적제재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단죄의 기준은 크게 1)저지른 죄에 비해 터무니 없이 약한 처벌을 받았고 2)그럼에도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것.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리뷰글을 쓰는 시점에서 웹툰은 이제 겨우 10화 남짓한 분량이 쌓였을 뿐이지만, 장르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는 충분히 훌륭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단 소재부터가 대다수 대중이 열광하기 딱 좋은 영리한 선택의 산물이지요. 김규삼 작가의 작화는, 사실 아직까지도 제 머릿속에 김규삼이라고 하면 정글고라는 작품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만 <하이브 시리즈>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는 시리어스한 작품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노련한 만화가입니다. 게다가 도입부가 비슷했던 <데스노트>가 초중반이 조금 지나고 나면 L과의 두뇌싸움이 메인이 되었듯 <비질란테>도 단순히 주인공이 범죄자를 찾아가서 족치는 내용이 전부가 아니라는 떡밥들이 여럿 뿌려져 있습니다. 지용을 추격하는 특종에 혈안이 된 기자라든지, 그의 은사인 형사, 정의를 구현한다면서 가학적인 쾌감을 느끼는 듯한 지용이 어떻게 변화할지 등등. 이야기가 뻗어나갈 가지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지요. 검증된 그림작가에 비해 글작가는 조금 생경한 이름이라 앞으로의 전개가 순탄하게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작품의 주제 의식이에요. 그냥 이대로 공권력과 사적 제재라는 갈등 구조 속에서 장르적 재미만을 추구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 이상의 깊이있는 주제 의식을 담아내고자 할지도 궁금해 집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없다고 보는 입장이긴 합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작품의 방향성에 관한 선택의 문제니까요.
- 2018 / 07 /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