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판타지 세계에서 사는 법>, 가장 훌륭한 판타지 웹툰 중 하나
'그 판타지 세계에서 사는 법'이란 작품은 네이버 웹툰을 꾸준히 찾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기억 한 편에는 남아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물가물한 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연재 초기에는 상당한 인기작이었고 네이버에서도 제법 밀어줬던 것 같아요. 지금부터 리뷰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한국 웹툰계에서 쉽게 찾기 힘든 하이 판타지(High Fantasy) 장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판타지로서는 독특하게도 현실 지향적인 특장점이 있어서 적잖은 고정 팬층을 확보한 작품이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장기 연중과 다소 대중적이지 못한 재미로 인해 다시 연재가 시작되고 1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는 화요 웹툰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지만요. 덧붙이자면 열정적인 팬들은 이 부분을 많이 안타까워하는 듯한데, 장르의 한계와 연중 및 연재 일자를 고려하면 충분히 선방하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이 판타지는 줄거리 소개가 의미가 쓸모없는 장르 중 하나이죠. 예를 들어 해리포터에 대한 리뷰를 쓰는데 해리가 호그와트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을 줄줄이 늘어놓아 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판세'도 비슷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소개를 하자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작중에서 '아크메이지'와 '검성'이라고 불리는 두 남자입니다. 판타지를 좀 보셨다 싶은 분들은 바로 아시겠지만 이건 이름이 아니라 각각 뛰어난 마법사와 검사를 의미하는 일종의 호칭이죠. 아크메이지, 주로 '법사님'이라고 불리는 이는 세계관 속에서도 손꼽히는 대마법사로 할아버지 라고 불리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나이지만 마법을 통해 젊은 모습을 유지합니다. 한편 '검성이'라고 불리며 - 본명이 절대 나오지 않는 - 또다른 주인공은 마찬가지로 대단히 뛰어난 검사로 아크메이지를 따라다니며 길드의 정식 길드원, 그러니까 현대식으로 비유하면 정규직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죠.
그판세의 줄거리를 거칠게 요약하면 아내가 실종된 법사님이 방황하는 검성이와 함께 이런저런 모험과 사건에 휘말리며 아내를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이건 요약일 뿐입니다. '해리 라는 소년이 마법사가 되어 사악한 악당이자 부모의 원수인 볼드모트를 무찌르는 이야기'와 비슷한 의미죠.
그러니까 재미도 의미도 없는 줄거리 소개는 그만하고, 여기부터는 '그판세'의 재미와 특장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입체적인 인물이라든지 훌륭한 검술 고증에 기반한 전투씬 등 그판세의 장점은 여럿 있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싶은 건 '현실성'이에요. 여기서 현실성이란 서사 매체의 내적 개연성이 뛰어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상 세계와 반대되는 의미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그러니까 마법과 몬스터, 이능력 없이 현존하는 인류가 살아가는 세계를 말합니다. 즉 그판세는 제목처럼 작가가 그려낸 하이 판타지적 배경을 설정했지만, 정작 독자들이 들여다 보는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이건 단순히 한두가지 요소가 덜 판타지적이라는 수준이 아니에요. 문자 그대로,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세계관 자체가 현실적입니다. 인물들이 사고하는 방식, 국가와 제도의 구성, 작중에서 발생하는 사건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방식까지. 유장하게 이어지는 웹툰을 보고 있노라면 오크와 마법이 등장하지만 마치 현대 정치 드라마와 시대극이 합쳐놓은 듯한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죠.
물론 '그판세'가 재밌는 건 단순히 모순적인 즐거움에서 비롯되는 건 아닙니다. 현실지향적 하이 판타지의 기반 위에서 더없이 훌륭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죠. 선과 악이 모호한 매력적인 인물들 간의 갈등, 왕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정치적 싸움, 화려하지는 않지만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강렬한 전투씬까지.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고, 그렇지 않다 해도 진지한 서사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뛰어난 작품이에요. 적지 않은 분량이 쌓였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는 분들, 한동안 잊고 있었다 다시 달리는 분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 2018 / 08 /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