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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 악마를 보는 여고생, 중2병과 호러의 사이에서

박성원 | 2016-08-18 16:15

 

 

‘시계’라는 작품 속의 세계는 참 살벌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여자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전부 이 지경이라면, 3개월에 한 번씩 정밀한 정신검진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법을 당장 발안해야 될 지경이에요. 유쾌한 중2병은 싫어하지 않습니다만 커터 칼을 들고 설치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그로테스크한 만화이지만 동시에 묘하게 헛웃음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인물들이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너무 진지하게 늘어놓기 때문일까요. 초중반만 보면 완전 싸이코들이 망상에 빠져 날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작품 내 세계관에서만큼은 진짜입니다. 그야 어쨌든 여고생들만 잔뜩 나와서 무서운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게 취향에 맞는다면 재밌게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랬어요. 단, 그로테스크한 묘사에 질색하는 독자들이라면 주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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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등장하는 ‘정윤미’라는 소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어요. 이 아이는 안대를 쓰고 학교를 나옵니다. 그래요, 안대입니다. 중2병들의 must have 아이템이죠. 물론 미쳐버리고 안대를 썼다거나 안대를 써서 미쳤다거나 그런 유치한 얘기는 아니에요. 원래부터 미쳐 있었습니다.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지만 만화가 시작하기 이전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가위를 빌려가겠다는 반 친구의 손목을 가위로 못 박고 얼마간 정학 당한(이런 솜방망이 처벌이라니!) 윤미는 이제 안대까지 쓰고 당당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성지영’은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중2병이 하나 추가됐군’ 정도의 인물이라고 여겨지지만, 그 이후로 워낙 이상한 애들이 많이 튀어나와서 작품이 진행될수록 지영이가 얼마나 상식적이고 모범적인 여고생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강력한 멘탈과 이성, 그리고 인간적인 측은지심을 가진 지영은 고전적으로 비유하자면 악惡을 무찌르는 용사입니다. 각종 사악하고 기이하며 잔인한 일에 휘말리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나아간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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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윤미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중2병을 커밍아웃하면서 시작됩니다. 그 대상은 물론 지영이에요. 그럭저럭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상식인들에게 꼭 이런 미친년놈들이 꼬이는 게 이야기의 법칙이죠. 지영이는 처음에 윤미가 단순히 훽 돌아버린, 그래서 가까이하면 위험한 정신병자 정도로 여기지만 그녀를 관찰할수록 범상치 않은 상황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와중에 ‘지혜린’이라는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는데, 이 아이는 정말로 빼도 박도 못할 정도의 순수한 중2병입니다. 이 만화에서는 그냥 평범한 수준이겠습니다만, 하여튼 지영의 쿨시크한 매력에 빠져 우정 미만 사랑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고, 이야기의 또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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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의 증상이 단순한 정신병을 넘어 (매우 위험한)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이 곧 밝혀지고, 이제 유혈과 내장이 난무하는 일대 모험이 펼쳐집니다.

 

다시 한 번 주의 드리고 싶은 것은 만화의 장르입니다. 글쎄, 그림 자체는 그렇게까지 역겨운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작가가 의도한 만큼 충분히 그로테스크하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이런 장르에 질색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테니까, 돈 낭비 시간 낭비하며 정신 건강을 해치지는 않는 게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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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취향이 맞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장르적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초창부터 대책 없이 막 나가지만 그게 또 나름의 매력일까요. 정신병과 중2병, 악마적 횡포와 영웅적 행보 사이를 넘나드는 싸이코 활극. 이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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