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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 부당한 위기가 찾아왔을 때

박성원 | 2016-08-05 05:49

 

 

짧은 분량 안에 - 작가가 완결하고 나니까 주변에서 ‘벌써 끝이 났냐’고 하더래요 - 충실한 내용을 담은 웹툰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많은 작품을 보다 보면 아무래도 좀 지치기 마련이고,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가 꼬리가 길어지면 의미없는 내용이 얼마만큼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짧고 굵은 이야기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셈이죠.

웹툰 ‘표류’가 바로 그런 경우인 것 같습니다. 짧은 분량, 그러나 성급하지 않은 훌륭한 완급조절, 그 안의 명확한 테마까지. 단지 횟수가 얼마 없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넘겨 버린다면 큰 실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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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작품은 표류당한, 정확히는 배가 침몰하며 무인도(?)에 조난당한 두 젊은 남녀 ‘희돈’과 ‘주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섬에 갇히는 종류의 창작물은 많지만, 먼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썸네일을 보면 두 주인공이 횃불을 들고 무슨 고대의 던전 같은 곳을 모험하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그런 내용은 아니에요. 섬에는 괴물도 없고 고대의 신비도 없고 시공간이 뒤틀리지도 않습니다. 그럭저럭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 되도록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만 - 섬이에요.

 

 

졸지에 문명 세계에서 대자연에 던져진 두 남녀는 생존을 모색합니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희돈이나 주연이나 현대인을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이성적이고 침착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에요. 배가 침몰해서 바다에 뛰어들어 정신을 잃고 눈을 떴더니 암흑천지의 인기척도 없는 해변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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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한국인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져 미쳐버리지 않을까 싶지만, 희돈이나 주연은 대신에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생존을 위한 우선순위를 정해서 움직입니다. 대한민국 육군 만기 제대와 섬에서 자랐다는 출신 배경이 이 정도의 능력에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꺅꺅 울다가 무력하게 굶어 죽는 주인공 같은 건 별로 보기 좋지 않으니까요.

 

 

그럭저럭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필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한 희돈과 주연에게는 새로운 기회 혹은 위기가 닥쳐옵니다. 정확히는 둘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것인데, 어떻게 보나 수상하기 짝이 없는 또 다른 섬의 ‘존재’를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독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그럴 겁니다. 사막을 헤매다 목이 말라 죽기 직전에 오아시스를 만난 사람들 중에, 물을 마시기 전에 수질검사까지 해보는 경우는 얼마 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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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법칙에 따라 기회는 위기로 드러나지만, 우리의 두 주인공은 역시나 침착합니다. 이 위기라는 것은 꽤나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극적이며 주인공들 입장에서는 아주 심각한 것이기도 합니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웹툰이니까 위기의 세부적인 내용을 늘어놓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작품의 특징에 대해 - 혹은 장점일 수도 있습니다 -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싶은데, 주인공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합니다. 일단 현실의 선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 그럴 수도 있어요.

 

 

하여튼 위기는 닥쳐왔고, 둘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 작품의 의의는 그런 것 같습니다. 작가는 후기에 꽤 사회적으로 깊이 있는, 혹은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만화의 의도를 언급했습니다(솔직히 별로 성공한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표류’의 재미는,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중대한 위협을 이성으로 해쳐나가는 주인공들을 응원하는 재미와, 그리고 무엇보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옛 교훈을 한 편의 웹툰으로 몸소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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